아프리카 알제리 2부, 5월 8일 광장

세티프 아인 알 푸아라 분수대와 5월 8일 광장

by Massoud Jun



*** 알제리 5대 도시 세티프(Sétif)



김 도화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세티프 시내의 유명한 가족 공원이 있는 곳에 위치한 신축 호텔이어서인지 거리는 항상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로 넘쳐났고 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호텔 직원들은 친절하고 밝게 손님들을 대했기 때문에 유럽의 대도시 못지 않게 프로페셔널 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켄즈 호텔엔 자리가 없었다. 나는 시내 중심지인 푸아라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을 바라볼 수 있는 푸아라 호텔을 예약했다. 켄즈 호텔과는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거리 였다.


인구 25만의 1,100미터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세티프는 1945년 5월 8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다 6천명에서 2만여명에 달하는 학살을 당한 곳으로 유명해서 공항 이름도 그 날을 기념해서 지은 곳이었다. 프랑스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 알제리를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알제리 젊은이들을 프랑스 독립을 위한 총알받이로 쓰고 전쟁이 끝나자,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학살을 자행하면서 알제리 독립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곳이었다(프랑스 영화 '영광의 날들(indigènes) 첫 장면에 세티프의 독립요구하는 시민들을 프랑스 군대가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마와 비잔틴, 아랍 식민지를 거쳐 프랑스 식민지를 132년 동안 거치면서도 알제리 전역에 폐허가 되어 남아 있는 유적지뿐만 아니라 식민시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한 분수대에는 프랑스의 조각가 프란시스가 만든 조각상이 여전히 시민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근처엔 오래 된 모스크가 있었지만 이슬람 율법이 프랑스 식민지배에 의해 많이 무너졌다 해도, 민망한 누드의 조각상은 수많은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복원되어, 한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오래 산 내 앞에서 식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더욱이 세티프의 학살로 인해 외인 부대원의 인식이 아주 나빴으므로 외인 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라고 소장이 말한 적이 있기도 했거니와 프랑스에서 만났던 북아프리카 출신들의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제리 사람들은 내 출신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어서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었다.


5월 8일 광장의 아인 알 푸아라 분수대


독실한 무슬림으로부터 파괴당하는 누드 조각상


후아라 호텔은 분수대가 잘 내려다보였다. 큰 창가에서 내려다 보는 광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저녁이 다가오는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퇴근을 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한적하던 거리는 금방 사람들로 넘쳐났다. 몇몇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눈을 찢더니 ‘니야오’라 말하곤 옆을 스쳐 지나쳤다. 한마디 말로 인간성의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북아프리카인들을 혐오한지 오래였다.


많은 이들이 국적을 모르고 인사하는 것이었지만 저런 류는 명백하게 모욕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낯선 나라, 대도시에서 밖에 나오자마자 잡쳐버린 기분은 오래 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놈 얼굴 앞에 대고 ‘바보천치 같은 놈! 원숭이 같은 새끼!’라고 살기를 띠고 욕을 퍼부어주었다. 실제로 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대부분이 내게 ‘니 하오’라고 인사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내 국적은 언제나 중국인으로 오해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김 차장이 저녁을 먹자고 연락이 와 오래지 않아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와 같이 있는 것은 고역이 었다. 언제나 웃는 모습이었지만 그 뒷면에 숨겨진 뭔가가 웃음 속에 묻어나 역겨웠고 또 고졸 출신이라고 놀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호텔 근처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혼자 토목 준비를 하고 있던 그가 나와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반색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내 앞으로 후우~ 담배연기를 품고 ‘하지 말라’고 하자 씨익 웃으면서 옆으로 피우더니 다시 내게로 내 품었다. 음식이 나오고 자신이 생각하던 식의 요리가 아니자 예의 그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비웃듯 웃었다.


김도화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차장이란 직급이 그런 용기를 주는 모양이었다. 부장들에게 굽실거리며 심각한 표정과 예의를 갖추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렇게 그는 직급이 낮은 직원들에게 간을 보고 있었다. 앞날이 깜깜했다. 빌어먹을!


잠자리가 바뀐 호텔에서 중간에 깼다. 화장실을 가려 일어나자 이불에서 정전기가 파랗게 일었다. 잠을 설치고 운전수와 함께 나타난 그의 차를 타고 현장으로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영어로 떠들었다. 영어를 배우려는 목적이 뚜렷해 보이는 그와 함께 운전수도 말은 느렸지만 쉬지 않고 말했다.


아인 아르낫에 위치한 1945, 5월 8일 공항 앞의 택시 운전수들. 겨울이라 춥고 비가 와서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현장까진 30여분이 걸렸다. 세티프(Sétif) 공항이 있는 아이 아르낫(Ain Arnat)을 지나고 엘 마디아(El Mahdia) 마을을 지나 현장이 있는 아인 자다(Ain Zada) 마을이 나타났다. 들어가는 입구엔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임을 알리는 큰 표지판과 함께 밀 밭을 가로질러 터를 닦아놓은 현장 출구를 올라가는 언덕에, 소장이 지시한 자리에 어느새 컨테이너 사무실이 설치되어 있었고 현장 입구 마을에서 고용한 경비원 세 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이 어린 두 명이 잡부로 고용되어 현장 바운드리 설치 작업을 하고 있어서 현장에 도착하자 마자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했다. 3주 전에 왔을 때에 비해 토목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있었고 지오테크의 현장 파견 직원들과 토목공사 중인 업체의 관리자들과도 인사를 하고 곧장 업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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