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 2차 고소
가봉을 다녀와서는 항고 기간이 지나 벌금을 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억울함과 분노, 적의를 참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통영 구치소에서 7일 형을 살았다. 벌금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간 거였다.
서울로 올라가 2차로 쌍방 폭행으로 재 고소했다. 욕을 하고 쌍방으로 1회씩 따귀를 때렸으며 나를 자극했다는 사실을 진술했음에도 나에게만 벌금이 내려진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분노와 살기만 쌓여갔다. 이건 정의가 아니라는 확신이 섰고 이윽고 2차 폭행이나 그보다 더 심한 범죄를 일으키게 방조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적의에 차 있었다.
서울 노원 경찰서에서 새로운 형사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2차 진술서를 꾸몄다. 1차로 조서를 꾸몄던 형사를 보고 그때 왜 쌍방으로 고소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 형사는 ‘사건이 원체 많아서’라고 말하곤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쌍방이었기 때문에 꼭 같은 불이익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 한 번에 해결하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이런 민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말했으나, 진술서에 기록되지 않으면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진술서를 작성하고 했던 말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하며 지장을 찍을 땐, 아무런 이상 없던 내용들에 정작 쌍방 폭행이 있다 하더라도 형사가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진술서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처음 검찰 구형이 떨어지기 전에 조정 위원회라는 곳에서 김 성한을 불러 합의금 30만 원을 요구했을 때도 주지 않고 재판을 받겠다고 말할 때, 나를 바라보던 조정 위원들의 한심한 듯한, 경멸인지, 어리석은 결정이란 듯한 경계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검찰은 이번엔 고양지청으로 소환했다. 1차엔 세 번에 거쳐 거제에서 서울까지 올라갔고 이번엔 고양 지검으로 대질조사를 위해 담당 검사를 찾아갔다. 김 성한을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참으며 대질 조사를 했다. 그는 비아냥거리고 자신은 때린 적이 없으며 ‘형 왜 이래, 이러면서 밀었다’고 진술하며 말을 바꾸었다. 도저히 살이 떨려 들어줄 수 없는 거짓말에, 모든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조사관에게 어필하면서 진술 내용들을 가져간 노트에 적었지만 나중에 진술서 다 보게 되니 진술에 집중하라는 말에 진술에 집중했다.
“검찰이나 경찰에는 자신의 방어권을 위해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단지, 법원의 판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위증이 됩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러나 법률 지식이 없었던 탓에, 그의 욕설과 일상적으로 있었던 툭툭 치는 것도 폭행이라면 그것은 왜 포함시키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증거가 없으면 진술해도 죄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 증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 경찰들의 의무 아닙니까?”
“그것 또한 당사자가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따라서 진술서엔 어떠한 시나리오를 꾸며 상대를 음해해도 괜찮은 것이고 증거가 없으면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 검찰과 경찰 진술서라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세상이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검찰 조서가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
“얘가 욕을 해서 때렸다고 했는데 욕했다는 부분이 없네요. 그리고 밀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데 민 것과 따귀를 때린 것이 어떻게 같습니까?”
“민 것도 폭행에 포함됩니다!”
검사는 둘 모두에게 각기 다른 벌금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있었던 다른 사건이, 왜 이전에 같이 해결되지 않고 두 번이나 진술서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들의 노련한 수사 방식에 의해 깔끔하게 잊혔다.
*** 재판 판사
고양 지방 법원은 검사인 친구가 근무했던 곳이라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근처에 비즈니스 파트너도 있어서 재판을 마치고 등산을 해서 넘어갈 예정이었다.
나보다 먼저 온 사건 당사자들은 판사가 호명하는 대로 증인석에 착석해 혐의 내용을 듣고 본인 확인을 했다. 벌금의 차이는 천차만별이었고 진행자들 중에는 중국인들로 보이는 보이스피싱 인출 책, 사기단, 폭행 등의 순서가 차례로 이어졌다. 너무 잘 생겨서 배우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판사는 의자를 좌우로 돌려가며 볼펜 놀이를 하다가 피의자 발언 시간에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 잘랐다.
“그래서 피의자는 지금, 자신이 행한 죄에 대해 뉘우치지 않고 벌금이 과하고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곤 입을 벌리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피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과 피의자 최후 진술에서 말을 막고 자신의 질문을 던지는 판사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이윽고 차량 운전을 하다가 상대를 폭행했다는 육중한 외형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증언석의 남자와 마주했다. 남자는 무죄를 주장했고 검사는 폭행이 있어 벌금을 과하지 않다는 조서 내용을 보면서 검찰 쪽에서 제출한 영상을 보았다. 큰 화면의 영상엔 두 대의 차량이 멈춰서 있고 한 남자가 나와 피의자 쪽으로 다가가 위협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손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 운전자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자신들에게 다가와 위협적으로 얼굴을 들이미는데, 그럼, 당연히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밀어내는 것이 본능인데, 그걸 밀어냈다고 폭행으로 벌금을 먹입니까? 제 아내도 옆에 있었고 그런 상황들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저는 무죄입니다!”
피고인의 목소리는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한 무죄를, 분노와 결의에 차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판사는 상대의 어투와 큰 목소리가 불쾌하다는 듯, 역시 진술인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물었고 피의자는 ‘저는 무죄입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판사는 저러한 상황을 경험해 보았을까?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저러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반응 중에, 상대의 위협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손이 나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판사가 어떤 직업이던가? 초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법전만 달달 외워, 세상의 경험 없이 들어간 사법부에서 우러러 받드는 판사로 살아온 사람이, 저잣거리의 숱한 사건사고를 알 리가 만무했고 짐작으로 안다 하더라도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래전, 잘 나가는 중앙 지방법원 판사인 고향 후배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과 장인, 장모를 모시고 파리 연수를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장모는 고향의 누나였고, 장인은 바로 위 형의 고등학교 담임이었다. 그들이 파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계약하기로 했던 아파트가 갑자기 계약 취소되어, 파리 외곽의 방이 8개나 되고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근사한 주택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내게로 급하게 연락이 왔던 것인데, 늦은 밤, 6인의 대가족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대가족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파리에서의 험난한 고행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산 차는 며칠 못 가 퍼져버렸고 대사관 직원 부인의 소개로 새롭게 구하려던 집은 이미 파리 부동산에 10%의 피를 지불해야 하는 데도 자기도 꼭 같이 10%를 요구해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후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부인은 ‘정 그렇다면 수수료는 받지 않을 테니,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나와 달라’는 조건을 걸어 더더욱 화가 난 후였다. 가볍게 두세 개의 집을 보고 에펠 탑 근처의 근사한 아파트를 얻고 이사를 해도 당최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는 후배는 장인, 장모와 처로부터 온갖 구박을 다 당하고 내가 가서야 무거운 이삿짐들을 옮기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참말로, 누야도! 박 서방이 이런 일을 해봤겠습니까! 나중에 나쁜 판사 안 되면 다행이죠!”
그로써, 이삿짐과 파리 살림살이가 안정이 된 후배는 내가 이탈리아를 다녀와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는데 제수씨(조카가 맞겠다)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삼촌, 박 서방이 어제 음주운전을 해서 경찰서에 끌려가서 하루를 지냈는데 좀 찾아가 봐주세요!”
전화를 받고 일어서려 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외인부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가서 해결하고 오라고 부탁하고 잠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데다, 언어마저 통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아무리 고등학교 때 배운 갱상도 불어로 연수 온 판사라고 설명해도,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언어가 정상적인 언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먼 이국 땅 파리의 자유를 만끽하다가 걸려 초라한 모습으로 갇혀 있을 생각을 하니 큭큭 웃음이 나왔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보니 친구가 후배를 데리고 나왔고 그날부터 당장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구박이란 구박은 다 하던 후배였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은커녕, 소박하고 열정적인 가족에 대한 헌신과 아무런 권위의식도 없이 프랑스의 사법 시스템을 공부하는 후배를 한국의 퇴행적이고 정권 친화적이며 부패한 권력의 정점이라고 비난을 퍼부으며 서로 신랄한 논쟁을 벌였다. 후배의 결혼식 주례가 양승태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판사가 직업을 물었다.
“선주사 물량 계약 컨설턴트입니다”
“…… 그게 뭐죠?”
“선주사, 왜, 토탈, 세브론, 스타토일, BP 같은 세계의 정유회사와 계약을 맺는 컨설턴트입니다”
판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펜대를 굴리며 의자를 좌우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마지막 발언을 시작하자, 그는 내 말을 잘랐다. 습관인 듯, 모든 사람들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궁금한 점이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질문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 말을 자르고,
“그래서 벌금이 과하다고 삭감을 요청하러 왔으면서 피고를 공격하는 것이 지금 하는 발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라고 말하곤 다시 입을 벌리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감기 몸살에 걸렸는 데다 3일 동안 금연 중이라 해롱해롱 한 상태보다 판사의 표정과 판결 과정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미소를 머금은 채,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고 그의 처분에 맡긴다는 말을 하고 나왔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감기 몸살에도 산을 타고 파주로 넘어가던 길에 파리의 그 판사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