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자는 내 얘기는 관심 없는지, 혼자 민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데, 코로나 때문에 구류도 살 수 없고 카드기는 영업 종료라 결재를 할 수도 없으니 하루를 그냥 날리는 것이 마냥 아까웠다. 잠만 자도 이틀 치 벌금이 감소되어 월요일은 가뿐하게 출근할 수 있을 거라던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가자 난감했다. 곧 은행 결재 일이 다가와 검찰이 막아놓은 계좌를 풀어놔야 했기 때문에, 이번에 풀지 못하면 영락없이 여러 곳에서 독촉전화가 올 것이 뻔한 데다, 개인적으로도 신용에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결정한 날짜가 오늘이었다.
그런데 의경에게 수모를 당하고 검찰청에 와서는 결재를 할 수 없고 코로나로 인해 구류를 살 수 없다 하니, 어이가 없었다. 당직자는 주 중에 다시 와 해결하기를 요청했으나 일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오늘을 넘겨 버리면 아무 의미 없으므로 다음 주말에 다시 오거나 다른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민원에 대해 들어줄 의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시간 후에 돌아오라는 말에 시계를 보니 23시 37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나가려 했다. 그런데, 조용하던 당직자가 종이 한 장을 데스크 위에 올려놓으며 사인을 하고 약간의 현금이라도 예치하라는 말을 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그가 내민 한 장의 서류의 내용을 꼼꼼히 여러 차례 읽어보고 5만 원을 건넨 뒤, 사인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을 위해, 평택에 처음 올라와 만났던 동갑인 친구들을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모두들 힘겹게 사는 친구들이라 하루라도 쉬거나 예정에 없던 돈이 나가는 것이 두려울 터울 친구들은 단지 같은 나이라서 좋았다기 보다는, 모난 것 없이 서로 사람사는 정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순박한 마음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어 흔쾌히 구치소 수감 기념으로 저녁을 사며 파티처럼 같이 먹었던 것이다.
우리는 평택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각자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서로의 인생 사를 논할 필요도 없이 만나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모두가 싫어했던 남자 김동현에 대한 고소 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놈이 아직 평택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고소 건은 무혐의 종결 처리되어 내 화를 북돋웠다. 김동현을 다시 보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변엔 흥겨운 일상의 평화를 깨트리는 악당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설 날이 되었을 때도 5일 구류를 살기 위해 일부러 통영까지 내려갔었다. 설악산 설산을 구경하고 구치소에서 책이나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리산에서 내려 오던 날, 마침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났던 비즈니스 파트너가 설을 보내기 위해 통영에 와 있어서 연락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근사한 카페는 통영 구치소 바로 위에 있어, 아래 쪽을 보면 예전에 1주일간 구류를 살았던 구치소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는 온 장모와 아들, 카페 매니저와 게스트하우스 책임자, 그리고 나의 프랑스 친구와 함께 값비싼 회꺼리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찬거리를 일부러 내 놓으며 나의 구치소 입성을 축하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사법부의 구치소 행정과 감시와 개선을 위해 자유를 박탈당한 범죄자들을 교화 시키겠다며 구치소에 들어간다는 나의 너스레에 매일 옥바라지를 하겠다고 아무런 염려와 걱정 없이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11시가 넘어 찾아 간 통영 경찰서에서 당직을 서던 형사들은 아직 수배가 내려지지 않아 구류를 살 수 없다는 말로써 나를 돌려 보낸 뒤 벌써 4월을 맞이했다.
통영 구치소가 뒷편으로 보이는 비즈니스 파트너의 카페
소음이 가득한 현장에서 한 참 일하고 있는 와중에 평택 검찰청이라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어제 저희 청에 방문하셔서 오늘 벌금 해결하려 오시기로 했다면서요? 오늘 몇 시 즘에 오실 건가요?"
"네에? 내가 오늘 검찰청에 가기로 했다구요?"
여직원은 어제 나오면서 작성한 각서에 오늘 찾아가서 벌금을 해결하겠다는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현장의 소음과 그녀의 말에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고 다시 주저리주저리 상황 설명을 했지만 통화 상태는 좋지 않았고 마침내 그녀는 고함을 꽥 질렀다.
"그러면 현장에서 체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 참 잘됐네요! 자수하러 갔더니 돌아가라더니 일하는데 체포하겠다고 하니 양아치 집단이 따로 없네요! 체포하소!"
전화를 끊으면서 '지랄하네' 하고 고함을 쳤다.
나는 검찰과 경찰에 대한 신뢰가 아예 없다.
칼을 들고 찾아와 협박한 약쟁이 깡패를 경찰에 신고해도 증거가 없다며 조사조차 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일어났던 명예훼손 건에도 조사하는 도중 짜증이나 내던 어린 수사관의 오만방자함에 대한 분노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일반 상식에 훨씬 벗어나 있는 우리의 이웃이어야 할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얼마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져, 모함하고 조작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들은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일에도 능했고 그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짜증과 호통으로 돌려보내는 일에도 능했다. 아마, 성과와 진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 명의 판사, 검사 친구들은 일반인들과 딴 세상에 살았다. 나에겐 고작 법과 상식을 다루어야 할 월급쟁이에 불과한 그들 중엔, 최근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윤석렬 사단의 일원이었다가 지방 고검장으로 간 친구도 있었고, 청치 검찰이 되어 세월호를 담당했던 후배도 있었다. 일반인들이 저잣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리 없는 그들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단지 온갖 거짓말로 경찰에 꾸민 조서 내용을 보고, 단 한가지 사실만으로 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면서도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매김해온 역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정의인냥, 기사를 써 내는 기자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가? 기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검사라도 되는 냥, 판사라도 되는 냥, 혹은 숱한 범죄혐의자로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주요 인물들에 빙의된냥, 언제든지 태세전환이 가능했다. 있는 사실마저도 교모하게 왜곡하여 모함하고 모욕을 주며, 죄를 감추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사법부와 한통속이 되어 세상의 주류로 살고 있으니, 이런 사회 불신과 부도덕한 세상을 만든 자들이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수요일이 되자, 이번에는 검거팀이라면서 연락이 왔다.
참 내, 가지가지하네! 잡아 가면 될 것을 왜 이리 압박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가 권력이 이럴수록 김성한에게 복수고야 말겠다는 다짐과 거짓과 위선으로 법을 농락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들이 지키는 김성한의 안전은 2차 피해 방지가 아니고, 2차 피해를 조장하는 행위였다.그들이 언론과 연계하여 어떤 악마로 만들든, 어떤 괴물의 탄생이라고 기사를 써대든 무엇이라도 해야했다. 김성한이 내게 당하면 울고불고 난리 날 가족들이나, 언론,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밝혀질 복수극을 통해,
[사회 부적응자의 악랄한 복수!]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말로 세상을 공포로 조장할 것도 분명했다.
상식과 교감하지 못하는 국가 권력의 오만한 권한에 치가 떨렸다. 그들의 절차와 행위는 정의가 아니었으며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벌써 세 번째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업체 빚독촉과 마찬가지여서 맨탈만 붕괴될 뿐, '내가 난데, 네 깟 놈이 어쩔 거야?', '쫄리면 뒈지든가!'라는 말로 해석됐다. 그들에 대한 어떠한 존중이나 업무의 효율성과도 무관한 국가 조폭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한심하고 어이 없어 검거팀이라는 사람에게 다시 경찰서를 찾아 자수하려 했고 검찰청에 찾아간 자초지종을 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