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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May 13. 2020

여자 필요하지 않아?

가봉 멘탈과 시스템



 이발사가 순박하게 이를 드러내 함박 미소를 지으면서 5백 원을 깎아주었다.


 둘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사람들 중엔 한 두 명씩 ‘니 홍’이라고 인사했다. 중국인으로 알고 하는 악의 없는 인사였다. 한국 사람들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소문이 난 탓도 있었지만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같은 민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그렇게 놀리듯이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정정해주면 두 번 다시 그러지 않을 만큼 그들의 문화의식은 높았다.


 다른 아프리카에 비하면 아주 높은 교육열이 눈에 보였다. 그들은 심지어 과격한 용어나 저속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난이 아니라면 웬만한 선진국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효준은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중국인들이 대도시 오옘에 축구장을 짓는다고 오래 일했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인을 구분 못하는 게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알제리에서 만났던 숱한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비하면 천사들이었다.


 둘은 70여 키로 미터 떨어진 대도시 오옘으로 향했다. 비탐에서 살 수 없는 태양광 전기와 사무실 용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오옘은 오옘 시내 공사 준비를 위해, 시장 면담과 민병대, 경찰 등 지역 관리들을 만나 사전협의를 위해 모인 회의에 효준은 참석한 적이 있었다. 비탐에 비해 오옘도 큰 도시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가봉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자체 공항과 돔 양식의 국제 축구 경기장도 보유하고 있었다.

둘은 시청과 독립광장을 가로질러 문구점과 사무용품이 즐비한 곳에 멈추어 물건을 사고 차량 렌트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큰 도시인 오옘에도 렌터카 회사가 없었다. 효준은 여러 개인을 합쳐 한 명의 대표를 만들고 바뀐 계약서로 계약을 하되, 차량 고장으로 빈자리는 즉시 다른 차량으로 교체한다는 항목과 필수 오일 교체 외에는 모든 유지 비용은 임대인이 지불해야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둘은 포클레인 장비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소화기를 사기 위해 들른 세차장에서 정보를 구했다. 젊은 사장인 보리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인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안면은 있었지만 원체 말이 없어 조용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좋아, 보리스, 내일 아침에 차량 주인들과 얘기할 수 있겠지? 차량과 필수 서류를 가지고 와서 우리 눈으로 확인해야 해. 소화기도 내일까지 확보할 수 있는 거야?”


“염려 마, 윤! 내 전문이야. 내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보자고”


효준이 재차 확인하고 둘은 다시 예전에 들렀던 마그리타 호텔에 들러 호텔 사장을 만나 차량을 이러한 조건으로 렌트할 수 있을 역량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내일 시간차를 두고 만나기로 하고 비탐 숙소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려 있었다.



*** 가봉 멘탈과 가봉 시스템



 숙소엔 리브르빌에서 예정에도 없이 팀장과 지난주에 떠났던 박호준이 돌아와 졸지에 자리가 없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가능한 한 빨리 숙소를 겸한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던 효준에겐 좋은 기회였다. 한 번씩 박호준 부장이 돌아와 있을 때면 에어컨이 있는 그의 방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면 뒷 날이 말끔했지만 말도 안 되는 갑질을 자주 하던 터였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리브르빌에서 내려올 때면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오면 ‘피엠 앞에서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치던 그였다. 피엠이든 사장이든 그곳이 숙소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업무상 위계를 지키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프랑스 같았으면 자유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되돌아올 문화의 차이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 숙소에 들어갈 생각이 없던 효준과 같은 방을 쓰던 이 부장이 쫓겨가듯 아몰랑과 감리들이 사용하는 호텔에 늦게야 도착했다. 월, 25만 원에 계약했다. 아몰랑의 화려한 방에는 고급 테이블과 의자, 손님 용 탁자까지 있을 정도에 비하면, 바로 옆자리임에도 허름한 풍경의 소담스러운 방엔 귀여운 새끼 도롱뇽이 먼저 진을 치고 있었다. 쥐 한 마리가 후다닥 새 주인의 등장을 알고 도망갔다. 배게엔 시커멓게 떼가 끼었고 에어컨엔 먼지가 수북했다. 백열전등이 진부한 소리를 냈지만 충분히 밝지 않았고 수돗물은 자주 끊겼다. 그래도 에어컨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방을 무단으로 독차지하던 애기 도마뱀이 손님이 나타나자 줄행랑을 쳤다.



 이 부장이 호텔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에 자신 있는 이 부장이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둘이 사용하던 숙소 생활에 비해 , 지저분해도 혼자 노트북을 켜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플랜을 구상하기에 호텔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방에는 테이블도 의자도 없었다. 아몰랑의 방에 비하면 누추한 마구간 같은 방이었지만 에어컨 때문에 방값이 비슷했고 내일은 책상과 의자를 요청한 상태였다. 가뿐한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시원한 에어컨에 곤한 잠결을 서성거리는 사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완벽한 S라인의 웬 젊은 여자가 요염하게 서 있었다. 의외의 상황에 눈이 둥그레진 효준이 웬일이냐고 물었다.


“혹시 초 없나요? 2층에 사는데 방에 불이 나가서……?”


 여자가 느릿하고 이상한 억양으로 물었다. 효준이 ‘없다’면서 문을 닫았지만 자정 즘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여자가 눈을 살짝 까 뒤집더니 괴상한 자세를 취하곤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했지만 바라보는 사람은 꽤 공포스러웠다. 그럼에도 여자는 젊고 완벽한 몸매였다. 효준이 눈을 멀뚱하게 뜨고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여자 필요하지 않아?”


여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제야 효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매춘 안 해. 다시 이러지 마”


“오케이, 네 동료는 불어 해?”


“영어 해!”


 문을 닫고 다시 잠을 청하니 이번에 여자가 이 부장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부장이 ‘이 뭐야!’면서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리자 효준이 재밌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잠에 들었다. 새벽녘에 다시 한번 복도에서 소란이 잠결로 들렸다. 그래도 숙소에서 땅바닥에 더위에 시달리며 자던 것에 비하면 마음이 편했다. 잠을 설쳐 늦게 출근하곤 조 부장과 곧장 오옘으로 향했다.


 보리스는 세차장에 비치해 두었던 6kg 소화기 세 개를 팔고 나머지는 사용허가 카드와 함께 이틀 후에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따져 묻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픽업트럭 소유주들을 기다리는 사이, 단 한 명만 차를 가져오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있다면서 몸만 왔다. 다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가져온 차도 년 식이 너무 오래된 데다 차량 검사와 보험 갱신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일일 8만 원을 요구했다. 터무니없는 요금이라 없던 일로 했다.


 둘은 다시 마그리타 호텔로 이동해서 호텔 사장이 소개해 준 보험회사 지점장과 만났다. 그의 차도 년 식이 오래되었고 20만 키로가 넘은 데다 차량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일일 8만 원을 요구했다. 연식과 키로 미터 수를 들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조건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보더니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오호호, 친구들!, 이런 계약서는 있을 수 없어. 국제적인 렌터카 계약이 이렇게 이뤄질지 몰라도 여기는 가봉이야, 우린 경제 발전을 원하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착취를 원하는 게 아냐! 이봐 친구, 난 보험회사 지사장이야! 이런 법규들을 잘 안다고! 네가 국제법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런 계약서로 여기서 계약할 수 없어”


 그가 효준의 얘기를 들을 생각도 없이 자기주장만 말하곤 머리를 끄떡거리면서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말할 때는 가소로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껏 혼자 말하고 일어나 가버렸다. 효준은 모욕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 부장을 바라보고 황당한 제스처를 취했다. 조 부장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뭐 저런 놈이 다 있습니까? 네가 뭘 알아? 라면서 가버리는 것 같네요!”


 둘은 아무런 소득 없이 몇 개의 작업 공구와 태양열 전지를 사고 비탐으로 돌아왔다. 비탐에는 가봉 사회보장국 담당 직원들이 찾아와 전 직원들의 계약서와 임금 지불 내역서를 준비하여 다음 주 월요일에 오옘 지국으로 찾아오라는 소환장을 사무실에 남기고 갔다고 다비 팔이 말했다.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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