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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May 11. 2020

비탐 시장 탐방

조 부장



*** 비탐 시장 탐방


 조 부장이 차를 타고 가까운 시장으로 향했다. 오전의 더위가 벌써부터 기승을 부리면서 더위에 익숙한 조 부장의 표정이 흐뭇하게 햇빛에 취하며 행동도 느릿했다. 더위는 심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땀이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찜질방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숨이 가빴다. 살갗이 서서히 익어가는 것처럼 후덥지근하게 천천히 익히는 기분에 금방이라도 까맣게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았다. 햇빛은 모든 에너지를 앗아갔다. 게다가 바람도 거의 없었다. 조금 전에 담배를 피웠는데 잊어 먹고 또 피웠음에도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한 번씩 비가 올 때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쏟아졌고 강한 바람을 동반했음에도 오래 내리지 않았다. 내린 비는 개울에 범람했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가 땅은 또 금방 말랐다. 비는 항상 강한 바람을 동반했다. 가랑비처럼 끈질기거나 낭만을 찾을 여유 있는 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빨리 몸을 피해야 했다.


“벌써 가봉 사람 다 됐네요”


“가봉 온 지 한 달 반 됐는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변하네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미소를 지은 조 부장이 느릿하게 효준을 바라보며 더위가 자신을 변화시킨 느림의 미학을 미소로 답했다. 부드러운 인상의 여느 관리처럼, 자신의 업무에 철두철미한 성격인 조 부장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뛰어났다. 밤늦도록 관리 업무를 끝내고 나면 자정이 넘어가기 일쑤였음에도 불만 없이, 부족한 것에도 익숙하게 업무에 충실했다. 그러다, 자신의 노력도 몰라주고 민수가 싫은 소리를 하자 둘은 잠깐의 냉각기를 갖기도 했던 것과 급여일이 계속 며칠씩 늦어지는 문제를 제외하면 관리 업무는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서류철도 준비되지 않은 사무 비품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던 민수에게, 조 부장처럼 기본적인 양식을 갖추자고 말해주던 효준이 고마웠다. 그나마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해결해 주는 동지가 나타난 것 같아 지원군처럼 든든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빠져 있는 듯한 태도에 사무실에서 가봉 직원들과 웃으며 얘기하는 효준에게 ‘근엄함을 지키자’고 말했던 것도 위계질서를 위한 것이었지만 효준은 ‘활기찬 사무실이 일하기에도 좋다’면서 즐겁게 일하는 게 업무 효율이 더 좋을 것이라고 답변하는 태도는 놀라웠다.


 한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을뿐더러, 실제로 대화를 나눌 때 즐거워하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좋았지만 업무를 지시하거나 처리하는 것을 보면 가봉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것이다. 일부러 큰소리를 치지도 근엄함을 유지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협력과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는 것은 한국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시장에 있는 꽤 큰 슈퍼에서 필요한 비품을 사고 천천히 시장을 걸었다. 한국 시골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비와 햇빛을 피할 천막을 치고 채소와 생필품을 팔았다. 특이한 것은, 영화에서나 보던 원숭이를 잡아 팔거나 전 세계 밀매 1위라는 멸종위기의 천산갑을 잡아 시장에 내다 놓고 팔았다. 이 동물들은 덫에 걸린 흔적이 목에 역력했고 식용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시장 사람들은 더러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지만 아프리카 경험이 많은 효준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거리의 자연스러운 먼지와 30도를 넘는 더위를 제외하면 위생 문제도 없어 보였다.


원숭이는 물론, 천산갑까지 팔고 있는 시장. 저걸 먹는단 말이지.... 음...

시장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온갖 야채와 채소, 과일은 먹거리가 충분하다는 것을 상징했지만 소득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들에게 담배와 술은 사치품이었다. 현장 인부들은 하루 일당이 점심 값을 포함해서 겨우 만원이 넘었고 담배 한 갑이 2천 원이었다. 맥주와 음료는 한 병에 천 원 정도 했으므로 물가가 터무니없이 높았다. 큰 슈퍼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어서 바가지를 염려하지 않았지만 택시 기사들은 마을 사람들보다 더블로 받는 것을 제외하면 시장의 채소와 과일 값은 비싸지 않았다. 언제나 먹을 것을 요구하는 인부들에 비해, 먹을 것을 달라거나 요란스럽게 달려들어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어 이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순박했고 순박한 만큼 착했다. 가난함에도 교육 수준이 높아 보이는 언행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보이는 천성적인 여유와 제스처에 효준의 마음이 즐거웠다.



 그러나, 거리엔 커피라도 마실 수 있는 커피숍이 없어서 둘은 시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서아프리카 가봉 깊숙한 조그만 국경 도시 비탐은 부족한 것 없이, 깨끗하게 정돈되지 않았고 편의 시설이 없었지만 우리나라 여느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각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장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자연에서 따 온 바나나는 한국에서 보아 온 바나나에 비해 크고 딱딱하면서도 쓴 맛이 났다. 날파리나 벌레가 많을 것 같은 예상은 의외의 청결함에 놀랐고 강에서 잡아온 생선은 곧장 냉동고에 보관되어 큰 마트에서 팔았지만 노점상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경작지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마늘과 고추, 오이를 비롯한 채소들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는데 상추나 배추 같은 채소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 줌을 사서 맛을 보았다. 제법 큰 씨앗들이 과일의 본 맛을 방해했지만 덜 익은 것인지 맛을 느낄 만한 게 없었다. 효준은 마늘을 몇 백 원어치 샀다. 슈퍼에서 산 프렌치 쏘씨송과 같이 먹기 위해서였다. 와인을 사서 마시고 싶었지만 맥주에 저녁 삼아 먹겠다는 생각에, 사무실 식당에서 남은 국에 밥 말아먹거나 찬물에 밥 말아 설거지 누가 하나, 누가 밥 짓나 눈치 보며 먹는 것에 비하면 훨씬 경제적이었다.


 밥 생각을 하니 갑자기 화가 났다. 전문 요리사도 없이 직원들 보고 알아서 밥을 챙겨 먹게 하거나, 나이 많은 관리 부장이 챙겨주는 밥을 어린 사람들이 챙겨 먹는 것도 어색해서, 막내 홍 차장이 일 마치고 돌아오면 밥을 지었다. 저녁에 물이 나오지 않으면 뒷날 마담 이렌느가 와서 대부분 모두 깨끗하게 치웠지만 가끔씩 스스로 치워야 할 때도 있었다. 민수는 일만 시키고 숙식은 만들어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돌아갈 생각에 어물쩡 넘어갈 작정이었다.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거리가 거의 없는 비탐에는, 카메룬과 적도 기니, 카메룬이나 중앙아프리카를 건너 챠드에서 온 사람들과 콩고, 심지어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택시 기사들은 거의 반이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사람들이었으므로 택시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택시는 손잡이도 없고 창문도 고장 난 차들이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았지만 운용차량이 모자랐던 회사 사정상, 효준은 택시 타는 것을 즐겼던 터였다.


자연산 옥수수와 가봉 특산물 마뇩은 우리나라의 고구마 같이 생겼지만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날 것 그대로 잡은 동물을 어떻게 요리해 먹고 어떤 맛일까?



 시장은 공사가 진행 중인 거리에서 두 블록 벗어난 곳에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시장 풍경이 단조로웠던 탓에 둘은 시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발소에 들렀다. 비좁은 이발소 옆에는 여성용이 따로 있었고 언뜻 보기에도 미성년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여자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여성용엔 남자가 이발을 할 수 없었다. 이발사는 얌전했다. 라디오에선 기독교 방송이 흘러나왔고 벽엔 헤어스타일 외에도 목동을 거느린 예수 그림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일부러 영어를 썼다. 이발사는 섬세하고 친절하게 머리를 깎았지만 아프리카식 민머리에 익숙한 탓인지 한국식 커트머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머리를 만지작거리자 이만하면 됐다고 조 부장 머리를 맡겼다. 조 부장의 긴 머리가 산뜻하게 더벅머리 총각처럼 깎여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덜거리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발사가 인당 2천 원을 요구했다.


“예수가 너 지켜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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