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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Aug 01. 2020

폭풍우 몰아치는 북한산

북한산 종주 도전



 시청역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불광동 역에 정차한 시간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였다.


 아침 일찍 출발해 북한산 종주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오래됐지만 실제로 시행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넉넉한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막상 떠날 때면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도봉산이나 수락산을 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산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북한산을 올랐을 때, 그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감흥을 천박한 도시 서울에서 느끼리라곤 상상을 못 했다.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하는 도시의 거리는 환락의 네온사인으로 밤을 채웠고 무미건조한 아파트식 건축물 속의 회사 사무실은 외관으로 보이는 무미건조함만큼이나 인테리어의 차이일 뿐, 획일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 사이로 하늘을 가리는 전선줄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찬란한 간판들로 불야성을 밝히는 서울이란 도시는 천박하게 화장을 한 여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수천년 고귀한 역사를 가진 한국이, 파괴된 서울에 새 집을 지으면서 미래 천년의 까칠하고 도도한 우리의 미를 설계하지 않고 천박한 콘크리트 도시를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천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 파리의 건축물들을 보며, 천년의 도시를 꿈꿔온 파리에서 20년을 생활하며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래되어 낡았으나 세월의 때가 역사와 함께 묻어있는 파리 곳곳의 건축물들이 르네상스풍이니, 고딕 양식이니, 바로크와 로코코 풍의 건축물들 사이로 오래전에 구성된 정원과 역사적인 인물들이 조각된 공원 벤치의 다양함은 물론, 길거리 카페에 앉아 햇빛에 젖어 바라보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기꺼이 가까워질 수 있는 분위기 또한 파리지앙으로서의 즐거움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거기에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데 전선줄이 방해가 되지 않는 사소함도 포함됐다.


 파리에서의 거주 생활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회 시스템이 작용됐다. 먼저 내가 파티를 집에서 연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서 양해를 구하고 층간 소음이 사회문제가 된 한국에 비해 양탄자를 깔고 실내화를 신는 것은 물론, 조용하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적인 이기주의의 나라 프랑스와 달리, 자본의 이익이 더 배려된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몰상식이 대비되어도 소매치기가 넘쳐나는 파리 사람들에겐 한국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언어와 미소가 넘쳤다.


 그럼에도 파리가 서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주변에 산이 없다는 이유였다. 아기자기한 기암과 고찰들이 곳곳에 숨은 그림 찾듯 들어앉아 생활에 찌든 마음을 위로하기에 루브르 박물관만큼이나,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황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북한산행이 마음먹은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지만 이번 2박 3일간의 서울 일정에 마음을 힐링할 겸 포함시켰다.


불광역 9번 출구에서 대호 아파트를 찾아 올라가면 북한산 종주를 알리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산을 타려면 비옷을 사거나 우산을 사야 했다. 물과 약간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슈퍼에 들렀다가 등산용품점을 찾아 한참을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빗줄기만 거세어질 뿐, 비옷을 살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긴 산길에 우산이 어울리지 않았고 역에서 보았던 등산용품 전문점까지 돌아가려 해도 꽤 멀었다. 또한 등산용품 업체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 선뜻 큰돈 주고 사기에 눈탱이를 당할까 두렵기도 해서 결국, 북한산 입구까지 도착했을 땐, 배낭을 제외하곤 비가 오는 산행을 위한 준비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맑은 날 산을 오르는 즐거움에 비해 산에서 만나는 빗줄기 또한 특별한 맛이 있었다. 지리산과 설악산에서 경험했던 빗줄기 속의 산행이 기억에 많이 남았던 탓에 언젠가 때가 되면 폭풍우 몰아치는 산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어쩌면 오늘일 수도 있는 거지! 산을 오르는 두 갈래 길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는 전망대 방향이 아닌 족두리봉을 향하는 등산객 출입구로 들어섰다.


 북한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이전에 하산할 수 있는 종주코스를 구글링을 통해 확인한 결과 dixonpark63님이 올려놓은 코스를 활용하기로 했다. 총길이 16.4km, 11시간 30분가량 소요되는 길이었다.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16875/315902 오늘은 출발이 늦었으니 4시 즘 하산할 예정이었다. 일기예보엔 지속적인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다. 이러다 그치기도 하겠지......


쪽두리봉을 오르는 길의 절경. 비바람이 거셌다!
쪽두리봉 정상. 고요한 도시에 비해 산엔 폭풍우가 몰아쳤다.



뒷동산 산책길 같던 산길은 아기자기한 암릉을 만나면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점점 도시를 멀리하고 숲 깊숙이 들어가는 듯 나무가 우거졌다.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길 저편으로 조그만 봉우리들이 암벽을 드러내곤 산을 찾은 나에게 그 아기자기함으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빗줄기가 계속 쏟아져 흐르는 땀은 금방 씻겼고 옷도 금방 젖었다. 비바람 거친 산길은 힘들어도 정상을 탈환하자 힘겹든 등산길은 오솔길처럼 정감이 갔다. 산정에 도착하면 엉덩이를 붙이고 물이라도 한 모금 하려던 여유를 부릴 수 없을 만큼 비바람이 강했다. 역시, 비바람 쏟아지는 산행은 무리였던 것일까? 점점 대책 없이 머리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몇몇 등산객이 스쳤다. 우산을 쓰기도 했고 비옷을 입기도 했는데 배낭 커버만 씌운 채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나를 염려한다. 산에 오르면 고독을 좋아하는 나의 쑥스러운 미소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비 오는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흔적은 그래도 반갑다. 그만그만한 거리에 소담스럽게 자리 잡은 조그만 봉우리들을 지나면서 남들이 뭐라든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 지리산을 여행할 때였다.

그때도 이맘때처럼 장마가 지리산 가득, 구름과 함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깊은 숲 속의 음산한 기운이 대원사로 향하던 아주 멀고 고독한 길이었다. 비 옷을 입고 터벅터벅 혼자 산길을 걷는데 저만치 앞에서 역시 혼자 걷고 있는 남자 한 명을 보고 기쁜 마음에 뛰어가 어깨를 툭툭 쳤는데, 그 남자는 혼비백산해서 눈 깜짝할 사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아무리 뒤따라가도 그 사람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틀림없이 공포에 빠졌을 그의 행동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빨리, 순식간에 산을 뛰어내려 간 그를 떠올릴 때면 분명히 인간이 위기에 처하면 슈퍼맨과 같은 괴력을 발휘할 것이란 걸 그를 통해 배웠으니까!


 산에 가면, 산 깊숙한 자락에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풍경을 끼고 세워진 절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는데 유명산 속에 자리한 유명한 고찰들은 등산로를 끼고 있어 입장료를 받는 것은 땡중들이 삥을 뜯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를 지키는 자들의 언행도 험악할 뿐만 아니라 마치 어느 깡패 집단을 연상할 만큼 충분히 혐오스러웠으므로 권력을 추구했던 정치적이고 부패한 자승 같은 땡중들이 도박비용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불신이 들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산속에 곱게 깃든 그 아름답고 소박한 한옥의 고운 자태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도 마음에 평온을 주었다. 가만히 들리는 풍경소리, 바람과 새들의 합창에 고즈넉한 산 사에 울려 퍼지는 풍경은 언제나 평화스러웠다. 사모바위를 지나 승가봉에 다다랐을 때, 바로 아래 승가사라는 절이 있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긴 산행에 미리 인지하지 못한 장소가 주변에 있어도 되돌아 가 찾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가야 할 길 때문에 산에 오른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안갯속에 숨어 있는 예쁜 절을 멀리하고 갈 길을 간다.


사모바위 분기점에 정답게 산불 감시인 초소가 있다. 이 바위가 김신조가 숨어들었던 곳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다.
사모바위 뒤로 비봉이 있고 그 아래 승가사가 예쁘게 앉았다.



 [승가사는 이번에 인연이 아니었다 부다]


 아쉬운 마음에 미련을 뒤로 두고 한참을 가니 문수봉 기점에 다다랐다. 처음 와본 길이다. 빗줄기는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더욱 거셌다. 앞장선 나이 든 여자는 혼자 예쁜 노란색 우산을 썼고 안개가 자욱한 산길은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도 않았다. 온몸은 젖어 서서히 한기가 느껴지는데 머리로 곧장 떨어지는 빗방울이 계속 거슬렸다. 더 이상 산행은 어려울 것 같았다. 시청으로 5시까지 가야 했고 6시엔 강남에서 약속이 있었다. 내려가서 사우나에 들렀다가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려면 이 언저리 어디에선가 하산해야 했다.


 최소 네댓 번 북한산을 넘나들었어도 백운산이 목적이었으므로 그 주변을 아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오롯이 알지도 못했다. 북한 산성길이나, 둘레길,  숱한 사찰을 목적으로 산행을 해도 하루 만에 끝내지 못할 것 같은 광범위함에 북한산의 존재가 더 대단해 보였다. 우거진 숲 속, 쏟아지는 비와 안개, 어둠이 질 듯한 음산한 빗줄기에 휴대폰을 꺼내 위치 확인을 하려니 말을 듣지 않았다. 방수가 되는 블루투스 이어폰도 성능이 왔다 갔다 불편함을 감수하기에 과대광고란 생각이 들 정도로 불편했다.


 방수가 된다는 휴대폰도 빗줄기에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으니 방수가 된다는 것뿐, 정상 작동을 바란다는 게 무리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긴 산행, 음악보다 팟빵에서 들리는 시사방송을 들으며 가니 심심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데, 빗줄기에 노출된 지 벌써 4시간인데도 아직 끊기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 이전에 사용하던 휴대폰 연결 이어폰은 물기가 조금만 들어가도 들을 수 없을 정도였고 재사용이 불가했었는데, 이미 이 빗줄기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어도 괄목한 발전임이 분명했다.


 음산한 분위기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자 대남문이 나타났다. 앞서 우산을 쓰고 혼자 걷던 여자에게 인사를 하니 깜짝 놀란다. 적막한 산길에 비도 오는데 다 헤진 우산을 쓰고 도착해서 쉬는 와중에 누군가의 인사가 반가울 줄 알았는데, 놀래켰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타났더라면 또 기적을 볼 수 있었을까? 괜히 혼자 웃었다. 수건을 가져왔나 확인해보니 빼먹었다. 장비 한 두 개 빼먹고 고생하는 것이 산행에 더 기억이 남는 법이지! 그러나, 이렇게 한 두 개씩 빼먹고 철저하지 못한 계획을 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단점이 아니었던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백운대까지 아직 갈 길이 먼데, 지금쯤 내려가야 한다. 아주머니는 산에 익숙한지 대성문 이름을 대며 그쪽이 제일 가깝다고 말해주었지만 지도상으로 파악하기는 혼란스러웠다. 대성문에 도착하여 여분의 옷으로 머리를 말리고 물과 간단한 음식을 먹자 한기가 스며들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산엔 분기점인지 몇몇 사람들이 가장 빠른 하산길을 안내해주었다. 바로 100미터 지점의 문수사도 시간이 넉넉지 않아 곧장 구기분소를 향해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빨리 따뜻한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덥히고 싶었다.


 잠깐 마른 옷에 말린 휴대폰과 이어폰은 정상 작동했다.

아무런 걱정 없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30여분이 걸린다고 했지만 구기분소에 도착하니 16시 30분, 버스를 타고 시청으로 가려다 우선 공동화장실을 찾아 윗 옷을 갈아입었다. 시간이 모호해서 택시를 탔다. 빗줄기는 더욱 거셌다. 차는 친구가 근무하는 시청 근처 호텔에 세워두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사우나에 들어갔다.

포만감 가득한 북한산행.


 5시간가량 맞았던 비에 의해 머리는 물론 몸살이 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호텔의 깨끗하고 따뜻한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덥히니 산행을 했던 일은 까마득하게 잊히는 것처럼 피곤함이 물러갔다. 약속까진 거리에 비해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개운하게 사우나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자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산속의 비가 그나마 애교로 보일 정도의 비가 신사역 주변에 쏟아졌다. 퇴근을 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선술집들에 가득 찼다. 주차할 걱정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침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에서 빠져나가는 자리에 긴급히 주차를 하고 휘리릭 우산을 펼쳐 든다. 가만 생각하니 차 안에 비싼 고어텍스도 우산도 있었다. 계획된 산행에 정신을 어디다 두었던 걸까!


아기자기한 산 정상을 걷다 보면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종주를 하고 또 때가 되면 둘레길을 걷고, 북한산의 절을 탐방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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