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ssoud Jun Aug 07. 2020

알프스 몽블랑 도전기 4, 사투

알피니즘의 탄생

https://youtu.be/syHxUqGsCP0



*** 사투


 아침 5시.

이른 잠자리 탓에 새벽에 몇 번 깨였다가 다시 뒤척이다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벌써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역 관리원과 호텔 직원이 틀림없을 터였지만 산행할 시간은 많으니 잠이라도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잘 요량이었지만 금방 일어나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역무원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호텔 쪽으로 느릿한 걸음을 옮겼다.


 4월의 아침인데도 침낭이 추위를 견디지 못한 탓에 추위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사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 소리가 서라운드 입체 음향처럼 옅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몸을 녹이고 아침 8시가 되자 몽땅베르 호텔과 역의 직원들을 실은 첫 기차가 올라와서 야영을 한 나를 보곤 무신경하게 인사를 건넸다.


호텔 몽땅베르의 모닝커피

 다행히 호텔 사람들도 와서 부산한 아침 청소를 했다.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곳에서 빵과 버터, 잼을 두른 간단한 아침과 함께 지상 최고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게으를 때는 맛난 커피도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직원은 이른 아침의 나를 보고 야영을 했느냐고 물었다.


“오늘 몽블랑 등반 첫 야영이야”


“혼자 올라간다고? 최소한 조난 신고를 하거나 사망하게 될 거야!”


“그래? 등반하고 와서 다시 커피 마시러 오지. 하하”


"그래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니 커피는 선물이야!"






  9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몽땅베르에서 300미터만 더 올라가면 기가 막힌 전망을 볼 수 있는 '시냘(Le Signal Forbes)가 있다고 했다. 호텔 커피숍의 피에르가 준 정보였다. 한 시간 거리이니 갔다가 내려와서 에귀 드 미디를 올라도 넉넉한 시간이었다. 어차피 잠들기 전까진 할 일이라곤 산행을 하며 장관을 구경하고 생활에 찌든 뱃살과 게으른 몸을 단련시키는 것뿐이니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빛이 작렬하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하늘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둘러보았다.


 한 마리 새처럼 푸른 창공을 나는 패러글라이딩..

나도 언젠가 패러글라이딩을 해볼 수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나는 저 기분은 어떻까. 저들은 패러글라이딩을 입고 가장 높은 산정까지 걸어 올라가 훨훨 하늘을 날았다. 한 발짝씩 눈길을 내딛는 초라한 내 발걸음에 비해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그들의 환호가 지상의 내게 전해왔다. 고공 낙하할 때도 짜릿한 기분은 범인이 누릴 수 없는 기분이지만 준비하는 시간에 비해 즐기는 시간이 짧다면 패러글라이딩은 안전하고 길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가파른 경사로를 걷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 

 산 길을 오르다 보면 내려보는 것에 인색한데 정처 없이 걷다 얼굴을 들어 보면 보이는 곳마다 장관이 펼쳐지고 들리는 소리라곤 거친 숨소리뿐인데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친구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내게 인사를 했다. 힘들게 걷고 있는 내 앞에 거대한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는 그들을 보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산에서 바다의 잠수가 느닷없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고공낙하를 하는 것도,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것도 사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거기에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여흥을 즐기지 못할 테니 순간을 즐겼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더미들이 수북이 쌓인 '시냘'을 만났다.

빙해와 에귀 드 미디, 샤모니가 한눈에 보이는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돌을 쌓아 만든 탑은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나도 돌 하나를 얹으며 여러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놀고 저렇게 놀다가 쏘씨송과 물 몇 모금으로 간단한 '아점'을 해결하고 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원래 목적지를 가느냐, 여기서 두 시간 거리인 '에귀드 쁠랑'으로 가느냐,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길, 곤돌라가 다니는 쁠랑으로 가서 1박을 하기로 경로를 변경했다.


 시냘에 도착해서 한참의 여유를 즐기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눈이 녹지 않은 길엔 여러 갈래의 길이 서로의 발자국을 따라오라는 듯 줄지어 나 있었다. 최근의 발자국이 없는 게 아쉽긴 했지만 목적지가 있으면 길은 만들면 되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내 인생 가장 위험한 시험에 들게 할 줄은 꿈에도 모른 ...... 극한의 모험 속으로 겁도 없이 내디뎠다.



시냘의 장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이란 이런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산정이 금방이었지만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진 길로 나 있는 지름길로 다닌 발자국을 쫓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발자국이 끊기고 낭떠러지를 만났는데 뒤돌아가려고 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싶게 험한 길을 왔던 것이다. 가만 보니 절벽에 붙어 있었다. 앞엔 눈이 가파르게 쌓여 있는데 발 디딜 엄두가 나지 않고 뒤돌아 가려니 암울한 생각에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밑으로 내려오니 오후 2시.. 눈이 허리까지 빠져 옷이 금방 젖어버렸다. 설피를 신으니 한결 움직이기가 편했다. 오래된 스키 자국이 있는 것으로 봐선 누군가도 길을 잘 못 들어 이쪽까지 왔었나 보다. 휴식하면서 스키 길을 따를지, 다른 방향으로 올라갈 길을 찾아보았지만 요원했다.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내려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산 중턱에서 로프가 없으면 내려갈 수 없는 또 다른 절벽 위에 도달해 있었다.


 암담한 심정으로 다시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았다. 지나고 보니 신기하게도 어떻게 저 길을 내려왔을지 싶은 절벽을 내려왔던 것인데 되돌아가기가 어려워 보여 계속 내려갔다. 길을 잃어 헤맬게 뻔해 시간을 아껴야 했다. 절벽이 다 끝났을 때, 판초를 깔고 눈을 타고 내려온 내 흔적을 신기하고 즐겁게 관망하면서도 이제 어떻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기에도 로프 없이는 어려웠고 그 높이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내려간다고 해도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낭패감에 다시 올라갈 것인지, 모르는 길을 내려갈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국 다시 올라가 돌아가기로 했다.


참... 별 짓을 다하는구나..ㅋㅋ,,


산양의 발자국을 쫒다가 길을 잃고 절벽에 매달렸다.



 헛웃음과 동시에 다시 올라가자고 마음을 굳히고 동선을 찾아보았다. 내려온 쪽이 훨씬 가팔랐는데 눈과 경사가 심했으니 포기를 하고 계곡의 산등성이로 뾰족하게 나온 부분에 세워진 나무들을 보면서 저 나무를 이용하자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10여 미터 간격으로 중간에 바위들도 보여서 가파르긴 해도 다른 곳보단 훨씬 쉬워 보였다. 그 눈만 올라가면 내려올 때와 같은 절벽을 타고 가장 가까운 길로 도달할 듯했으므로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초행길을 '할 수 있다'는 객기 하나로 올라온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물도 다 떨어지고 내 덩치도 장난이 아닌데 배낭도 무거워 움직임이 시원찮은 데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좁은 공간은 키만큼이나 쌓인 눈 때문에 이동이 장난이 아니었다. 눈이 덜 녹았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급경사라 설피가 푹푹 빠질 정도로 옅은 눈이다 보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조금씩 오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옷가지와 설신을 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기어오르며 온 몸이 나무와 돌 사이에 빠져가며 안전지대와의 거리가 20여 미터 즘 도착했다고 여겼을 때, 두 개의 난관만이 남아 있었다. 오르기엔 급경사가 너무 심했고 옆으로 빠져 가기엔 녹지 않은 눈이 절벽과 연결되어 너무 위험했다. 그곳을 건너야만 했기 때문에 발 디딜 틈도 부족한 절벽에 멈추어서 한동안 생각을 해야 했다.


 속으로는 조난 신고를 할 것인가? 조난신고를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네 시를 넘겨가면서 서서히 초조한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아직 지치지 않았고 공포로 절망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허허'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그 고난을 즐겼다. 길은 짧았지만 그늘진 곳엔 얼음이 얼어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지만 좁은 공간 때문에 아이젠을 꺼낼 수도, 신을 수도 없었다. 피켈을 사용하기에도 경사면이 너무 짧아 한번 미끄러지면 그대로 끝장이어서 실용적일 것 같지 않았다. 움직이기 힘든 상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꼼짝없이 그 짧은 길을 건너지 못했다.


 최후 결단을 내렸다. 배낭을 벗어 피켈로 얼음을 파서 발 디딜 틈을 만들고 20미터 거리 중간 즈음에 튀어나온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바위까지 가보기로 했다. 얼음을 깨고 한 발씩 나가는 것도 경사면이 너무 가팔라 여의치 않았지만 한 손은 피켈을 꽂고 한 손으론 발판을 마련하면서 한 발짝씩 조심스레 나갔다.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져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천만한 곳에서 사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조그만 바위가 올라온 곳까지 도착하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나머지 구간도 나가면 오전에 사진을 찍던 곳과 조우하게 되므로 이제 위기도 막바지였다. 마음먹기가 힘들었지 하고 나니 스릴 넘쳐 재밌었다.


 이제 마지막. 거의 빙벽처럼 눈이 얼음으로 변한 구간은 피켈을 여러 번 찍어야 겨우 발 디딜 공간을 만들어 쉽게 안전지대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안전장비를 다 갖추었고 외인부대에서 산악 전투 훈련도 받았는데 왜 이리 고생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실제 이런 위험에 처할 경우를 산정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모든 안전 장비가 마련된 곳에서, 안전한 루트의 교육장에서 상황을 가정한 장비를 모두 착용했기 때문에 교육이 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길을 잃지 않고 정상적인 루트를 갔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겠지! 무한 긍정의 마인드가 지나온 길을 말끔하게 잊게 했다. 어쩜, 오늘 이곳에서 조난당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날이었다.


혼자 신나서 내려와 보니 내려갈 길이 없다. 여길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경사가 심했다. 가운데 절벽으로 올라가 왼쪽으로 빠져야 정상 루트를 만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알프스 몽블랑 도전기 3,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