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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Aug 06. 2020

알프스 몽블랑 도전기 3,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

4자가 유독 많았던 4월



*** 몽땅베르(Le Montenvers) - 쁠랑 드 레귀이(Plan de l'Aiguille)


 쉬엄쉬엄 세 시간을 오르자 나타난 곳, '메르드글라스(Mer de glace:빙해)'였다. 이곳에 눈이 저만큼 녹았으면...... 계곡 가운데 뾰족하게 솟아 있는 곳이 4208미터의 ‘그랑 조라스’라는 곳이다. 그 옆에 '거인의 이빨'이라는 봉우리가 있지만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이 곳까진 누구나 올라올 수 있지만 여기서부턴 설피를 신어야 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눈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놀라운데, 북쪽 면이라 아직 눈이 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피를 신지 않으면 눈이 허리까지 빠져 옷은 금방 젖을 것이고 손도 시릴 것이므로, 여기까지 조깅으로 올라왔던 완전 마라톤 선수 같이 레깅스를 입은 근육질 소녀와 빵집 기술자라던 청년은 간단한 등산을 위해 여기까지가 목적이었던 듯 잠깐 쉬고 내려갔다. 프랑스인들과 대화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순수함 자체인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편하게 하는 얼굴과 미소를 가졌다고 생각들만큼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면, 저런 얼굴을 하고 식민지를 다스리는 제국주의 국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눈 앞에 보인다고 만만하게 봤던 둥글둥글하게 완만하던 곡선의 길은 뾰족하게 솟아, 들고 나는 길이 많은 한국의 산길에 비해 더 힘들고 가파르게 보였다. 아직 눈에 덮인 몽땅베르 북벽은 지도에도 등산로가 확실하지 않아 한참을 헤매고서야 어렵게 도착하니 스키를 타고 내려 온 사람들과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섞여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절경이 펼쳐졌다. 간간이 보이던 빙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넋을 놓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때까지 설악산을 경험해보지 못하다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간 곳이 설악산, 그리고 비선대라는 곳과 비교해보면 한국적인 산의 아기자기함이 알프스의 웅장함과 잘 비교되었다.


몽땅베르 전망대에서 바라본 메르드 글라스와 계곡 가운데 갈림길 왼쪽의 그늘 부분이 알프스 3대 북벽 중에 하나인 그랑 조라스다. 그 웅장함이 이렇게 왜소해 보인다.



 '얼음의 바다', 메르드글라스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왼쪽으로 가면 알프스 3대 북벽 중에 하나인 그랑 조라스가 있고 오른 쪽으로 총 17키로 미터로 에귀드미디까지 연결됐다. 그곳에선 스키어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몽땅베르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 샤모니까지 운행하는 마지막 기차 시간인 16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빙해에서 곤돌라 승강장에서 역까지 올라오지 못한다면 철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야 했다. 


 저 멀리 대자연의 황홀한 광경이 펼쳐진 곳에선 눈이 녹아 만들어 낸 얼음물이 폭포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흙과 돌로 이루어진 지층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돌이 떨어지는 굉음이 메아리를 만들어 산 속에서 울려 퍼졌다. 눈 앞에 탁 트인 그 웅장한 광경이 저 멀리 거대하게 병풍처럼 버티고 서서, 서서히 영화처럼 흘러 내리는 물줄기도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워보였다. 계곡에서 울리는 서라운드 입체 음향이 온 몸으로 와 닿아 전율을 일으키는 것처럼, 대자연 앞에 스스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겸허한 마음이 되는 듯 했다.


 여흥을 뒤로하고 다시 몽땅베르로 오르는 길, 눈 신발을 신는 것을 포기하고 거의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무렵에 먼저 지나간 발자국 위에 떨어진 과자 봉지하나를 발견했다. ㅋㅋ 웬 홍삼 캔디???

목적지에 거의 다 왔는데, 홍삼 캔디가 보여 반가웠다. 처음 본 쓰레기였다.

 살 좀 빼고 중년의 해이해진 마음도 다잡겠다는 포부도 있었으니 식량은 넉넉하게 준비하진 않았다. 군대 있을 때 동료들이 가지고 다니던 '쏘씨송(Saucisson: 순대, 살라미)'의 별미를 뒤늦게 터득해서 넉넉하게 가지고 왔고 커피가 전부였다. 짧게 올라온 길이었지만 목은 타 들어갔고 물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벌써 다리는 후들거리고 배는 고픈 듯도 했지만 식욕이 크게 나지는 않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이곳에서 홍삼 캔디를 보니 반가운 마음,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라니! 이곳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는 버리지 않는다. 모두 배낭에 싸가지고 내려간다. 통제도 감시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누가 뭘 조심하라느니 금연하라느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산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을 나는 더이상 오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감시와 통제 때문이었다. 통제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사고가 생기면 환자들에게 가하는 말들이 가관이었다. 물론, 산에서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자연을 훼손하는가 하면, 쓰레기를 얌체처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 비하면 감시인이 필요없을 정도로 깨끗한 알프스 방문객들의 마인드를 본 받아야 하겠지만 소원한 일이다. 


 지리산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공단 직원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기분이 나빴다. 말이라도 걸어올까봐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지리산 언저리라도 가면, 관리공단 옷을 입은 사람들의 번득이는 감시의 눈초리가 싫어 이제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그들의 역할이 성공했다랄까? 한국에서 관리인이란 완장을 찬다는 것이 사람들의 안전과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며, 어길 경우 온갖 수모는 물론 과태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었다. 아름다운 산을 지키는 관리인들에 의해 기분을 상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완장 찬 그들의 무지몽매한 컨트롤이 한국식 관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는 더 이상 지리산을 오르지 않고 생각도 잊은지 오래되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불쾌해진다. 

빙해를 양쪽으로 둘러싼 기암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바위 떨어지는 소리가 깊고 웅장하다.



 이제 다 왔다. 

역 안은 문을 잠갔지만 옆으로 지붕 아래 침낭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천왕봉 높이인 1909미터 고지에 호텔과 카페테라스가 있고 빙해와 계곡의 장관을 보다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그 곳엔 이미 일과를 마무리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마지막 기차가 남아 있었고 나는 젖은 바지를 갈아입고 새로운 신발을 신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내일은 저 계곡을 가로질러 '에귀드미디' 바로 아래쪽으로 이동한 뒤, 다시 비부악을 설치하고 2박을 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기차가 정확하게 16시 30분에 떠나자 혼자 남았다. 모든 문이 닫히고 100미터 근처에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다. 역 바로 뒷 편에 있는 꽤 넓은 지붕 아래에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될 공간에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을 준비했다. 커피를 한잔 끓여 속을 따뜻하게 하고 가지고 간 와인에 쏘씨송으로 저녁을 먹었다. 너무나 웅장해서 두 손 겸손하게 쑥스러운 모습을 한 자신이 감격스럽게 석양을 바라보았다. 땀이 젖어 서늘해진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알프스 3대 북벽 중 하나인 '그랑 조라스'의 꼭대기는 눈으로 눈으로 덮여 있고 늦게 도착한 한 명의 스키어는 부랴부랴 도착하더니 쉬지도 않고 바쁜 걸음으로 기차길을 따라서 샤모니로 내려갔다. 

 늦을지도 모르는데 스키를 타겠다고 바삐 왔다가 가는 것일까? 거대한 자연 속에 레져를 즐기는 그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혼자 남은 몽땅베르의 고독 속에 나는 서울에서부터 온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장본인이었다. 


 나를 프랑스 지점장으로 만들고 일상에서의 수치를 감당케 하고 그것만이 마치 최선의 길인 냥 굴욕을 감당하게 한 장본인.... 파리의 유명한 베낭 여행사 지점장을 하고 있었고 친구가 뒤통수를 치고 가이드들이 반대해 물러났었다. 과정이 비겁했기 때문에 화가 난 상태였다. 거기에, 나로 인해 사장인 자신이 모처에 끌려가 내 이름을 대면서 추궁했는데 국정원 직원이리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새벽 네 시까지 자신을 끌고 간 양복 네 명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는 놀라운 말을 흥분한 상태에서 했다. 그 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투어를 하면서 프랑스 역사와 교회의 발전상을 빗대어 한국 교회를 비난하는 일들에 대한 심문이었다고, 나를 해고하라는 압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난을 받다니 내겐 참으로 영광이었지만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에겐 두려움이었었나 보았다. 그가 내게 물었다. 


"자존심 많이 상했어요?"


 그 기분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한테 할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가 좋은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자리와 돈 욕심이 크게 없었고 관리도 제대로 못했지만 하고 있던 일이 있음에도, 그의 요청에 의해 지점장이 되어 1년을 지내왔다. 결과적으로 지점장을 하고 있던 그의 친구에게 의도치 않은 큰 실수를 하게 되어 신망을 잃는 결과까지 초래했던 것인데, 당하고 보니 토사구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위해 해주고 싶은 진심을 알고 있었고 대안을 제시하고 뒤로 물러나도 상관없는 마음이었지만 그의 결론은 나를 배신한 내 친구를 중용한 것이었다.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마지막 기차도 떠나고 아무도 없는 산중에 혼자 남아 야영을 끝내고 어둠이 지는 빙해를 배경으로.



 바람도 없이 고요하던 산엔 바람이 불었다. 찬 바람이 어디선가 몰려와 깔아 놓은 매트와 침낭 위를 스산하게 훑었다. 바람막이로 역에 놓아둔 매트리스를 이용해서 막았다. 훨씬 편했다. 침낭이 깊은 산 속에서 유숙하기엔 부실하다 싶었지만 하루, 이틀 잔 침낭도 아닌데 견뎌 보기로 했다.


 산에서의 잠은 오랜 산행 이후에 오는 피곤함이 무기다. 아무리 불편하고 어지간한 소란에도 깊이 잠들었지만 중간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잠결에 저 멀리 절벽의 바위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거인의 걸음소리 처럼 들렸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계곡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한번씩 중간에 깨어 소변을 보러 갈 때면 휘영청 밝은 달이 어울리지 않는듯 쌓인 눈을 비추고 계곡의 스산한 분위기와 어울려 음산했다.


https://youtu.be/syHxUqGsCP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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