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니즘의 본산
*** 샤모니 몽블랑 시내
그런 몽블랑을 이제 혼자 오르겠다고 결심했다.
4월이지만 눈이 남아 있을 것이었고 거기에 맞게끔 배낭을 꾸렸다. 눈에 빠지지 않게끔 설피와 아이젠을 구입하고 등산화도 고산지대용으로 구입했다. 프랑스 최대의 스포츠 용품점 데카트론에서 텐트와 버너, 식량, 장갑, 모자와 스틱까지, 낮은 온도를 지탱할 수 있는 침낭과 침낭 커버, 그리고 피켈과 로프까지 완전하게 꾸리고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배낭은 무거운 만큼 마음도 무거웠다.
파리에서 디종을 거쳐 샤모니 몽블랑에 이르기까지 6시간, 직행으로 운행하는 기차가 없어 대개는 디종과 리옹 등의 대도시를 거쳐 가야했다. 그렇게 도착한 샤모니는 깨끗하고 아담했다. 파리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런 건축에 층층이 아름드리 꽃을 키우는 화단을 놓았고 자연과 어울어진 건축물도 그저 넋놓고 '멋지다'는 감탄을 자아냈다. 감탄스러운 것은 건축뿐만이 아니었다. 조그만 도시인듯 한데, 꽤 큰 도시 곳곳이 등산용품과 지역 특산품을 파는 데도 주변의 카페, 아파트와의 조화로움이 그 멋스러움을 더했다. 화사한 4월의 햇살을 받은 광장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마시는 커피는 절로 맛났다.
첫 날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던 관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펜로즈(Alpenrose)'에 숙소를 구하지 못해 영국인이 운영하는 4인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여행 시즌이 아니라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는데 영어를 쓰는 젊은 친구들이 허접한 게스트하우스에 꽤 많았다. 젊은 여자들은 주변에 남자가 있든 없든 도미토리 특성상, 공용 샤워실에 너무도 당당하게 옷을 훌러덩 벗어던져 당황하게 했지만 남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온갖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샤모니 몽블랑 시내를 구경하며 곧장 산행에 나섰다.
일상에 찌든 한 중년의 모습은 살이 찌고 배도 나오고 다리는 힘이 없이 눈빛도 초췌했다. 이렇게 몽블랑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어쩜,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 올 수 있었던 이 길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랐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이 걸음도 상쾌하게 길게 늘어선 알프스 풍의 집들을 지나다보면, 집집마다 군더더기 없이 잘 가꿔놓은 조그만 정원에서 핀 꽃과 잔디, 허리보다 낮은 울타리가 이곳 사람들의 여유를 보는 듯했다.
이런 정원은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정원을 가진 마당을 가지는 것이 가치 있는 부동산으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의 의식과 달리, 아파트와 역세권을 가치로 두는 한국과의 장단점을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이런 집들을 밀고 들어가 커피 한잔을 요청하며 사소한 얘기를 나누어도 될만큼 열린 의식의 소유자들이며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색해하지 않는 여유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마침, 신선한 아침햇살 맞으며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봉쥬르? 봄의 여신같네요~!"
빨간 원피스에 꽃이 화사하게 핀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봉쥬르 므슈? 안전 산행하세요~!"
나누는 인사 속에 보여준 미소가 여신 같아 괜히 발걸음이 신났다.
저 멀리 4800미터의 몽블랑이 고상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지만 6월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누구나가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위험한 4월이었다. 더욱이 날씨가 너무 청명하고 태양빛이 좋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산의 눈들은 아래가 녹아가고 있었고 밤이면 잠깐 얼었다가 오후가 되면 폭포를 만들만큼 많은 눈들이 녹아 웅장한 물길을 쏟아냈다. 여름 성수기엔 눈이 녹은 몽블랑을 트레킹 하는 관광객들로 붐볐고 산장은 특수를 누렸다.
그런 산행은 흥미가 없었지만 몽블랑 트레킹을 관리하는 산악 관리자들에 의해 비부악은 금지되어 있기도 했고 들키면 막대한 벌금을 물기도 했다. 그러나, 산장의 자리는 모자랐고 투어 객은 넘쳐났기 때문에 산행이 금지되지 않은 트레킹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월엔 산행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막바지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로 샤모니는 또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산행이 금지되거나 오르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제약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최근에 영국인 3명이 눈사태로 고립되어 사망했다는 소식도 이곳에 와서야 접했던 터였다. 5월이 되어야 눈이 거의 녹아 4개월 동안, 짧게는 8박에서 12박까지 총 170KM 이르는 '투어 드 몽블랑(TMB)이 열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를 아우르는 그 화려한 빛과 산봉우리, 꽃의 향연을 꼭 해보고 싶은 트렉킹 코스지만 돈이 많이 드는 코스였다.
지도를 사고 산행 코스를 잡았다.
나는 샤모니 뒤 편의 운하의 바다를 타고 에귀드미디까지 올라가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몽블랑으로 향하는 루트를 잡았다. 샤모니에서 바라본 몽블랑 정상과 3842미터의 '에귀 드 미디'는 그 모습만으로는 금방이라도 올라갈만큼 가까워보였는데다 쉬워보여 만만해 보였다. 내일 오전 중으로 '에귀 드 미디'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도에는 대피소의 위치도 루트도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았고 이정표를 확인할 수 있는 곳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에귀드미디로 가는 첫번째 코스인 몽땅베르까지는 기차로 오를 수가 있었지만 나는 워밍 업으로 천천히 걷기로 했다. 미리 '산악회 사무실'로 가서 등산 코스에 문제가 없는지, 장비는 안전한지의 정보를 묻고 오르는 길이었다. 산악회 사무실에서는 등반 전문 가이드도 있으므로 자신 없으면 얼마간의 돈을 주고 등반 가이드를 동반해서 산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개인적인 산행을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알피니즘의 본산에 와서 몽블랑을 바라보며 가소롭게 여겼다.
겨울 산행은 내가 다닌 길이 곧 길이 되는 등반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길을 모르거나 각 장소에서 필요한 테크닉을 모르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었고 한국의 아기자기한 산과는 비교대상이 아니었음에도 하얗게 덮인, 손 내밀면 닿을듯한 몽블랑은 아주 만만해보였다.
또 얼음이 녹아 만든 크레바스는 곳곳에 위험으로 도사리고 있었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베르티칼 리미트'처럼...... 그런 곳이 이곳 몽블랑엔 곳곳에 존재했기 때문에 산을 좋아해서 지리산을 열심히 다녔고 외인부대원의 일원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군인과는 다른 나의 길, 이번엔 혼자였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지도 한 장 들고 산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만이 나의 유일한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