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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Aug 18. 2020

불암산 릿지

불암산 영신암


때는 바야흐로 계곡의 언 얼음이 녹고 산천의 푸르름이 가득한 계절의 여왕 오월이었으니 산천의 푸르름이 요정들의 깊은 숨결과 함께 내 폐부 깊숙이 짜릿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아침이렸다.


 옅은 안개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계역이 불암산으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것을 몰랐던 한 때, 새벽에 일어나 불암산 정상을 비몽사몽간에 올랐던 때도 있었지만 릿지 산행이 뭔지 모른 채, 전문 등산화를 신을까 고민하다 간편한 산행이겠다 싶어 가벼운 등산화를 신었다. 서초역에서 선배들을 만나 미래에 대한 플랜을 공유하고 자정이 넘어 도착한 노원 역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직 옅은 피곤함이 남아 있던 아침이기도 했다.


 때마침 같이 산행하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이 오고 1번 출구에 와보니 우람한 장딴지를 드러낸 친구들이 배시시 므흣한 미소를 짓는데, 옆에 있는 아저씨들이...... 아무래도 내가 저 나이는 아니지...... 암! 아닐 거야~! 동네 아저씨들인가?! 빨리 인사를 끝내고 주변에 주차를 하고 합류한다. 음...... 아무래도 내가 저 나이는 아니지~! 불룩한 배를 안고 포만감에 젖어 인사를 해버렸다. 아! 정녕 내가 저 아재들이랑 갑장이란 말인가!


한적한 산 길을 오르다 느닷없이 바위를 타기 시작하면서 릿지가 뭔지 알았다.



 한낮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겨울의 스산함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몸은, 간편하긴 해도 추운 것 같아, 열심히 땀을 빼보겠다고 옷을 겹쳐 입었는데, 까짓 거 고작 500미터 뒷동산 오르는 길 뭐 별거 있겠지 싶었거든! 숲이 우거진 길에 간간히 햇빛이 스며들어 르느와르의 춤추는 햇살처럼, 바람에 일렁이는 길을 따라 요정들의 숨결을 깊이 들이키며 설레는 발걸음이 가뿐하게 춤을 추듯 했어. 뱃속에 30kg 무장을 했지만 까짓 거 두려움이 없었어!


 이윽고, 숲을 벗어나 암벽을 맞이하더니 이 길인가, 저 길인가 잠시 헤매던 친구들이 갑자기 벼릉빡에 달라붙어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거야! 멋도 모르고 달라붙어 보니 미끄러지지 않고 올라가는 거 있지! 아! 이게 릿지구나하고 깨닫기도 전에, 셋이나 꼭 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일반 등산화가 아닌 릿지 등산화라는 사실을 알았지! 블랑에 갔다가 죽을 뻔하면 뭐해! 이런 것도 몰랐다니!, 뭐,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만 벼릉빡을 기어오르는 등산도 있다니 레저스포츠는 종류도 다양하구나 생각하면서도 등산은 금방 끝나겠다 싶었어.


 릿지를 타기 전에, 친구에게 물어봤더랬지! 릿지가 뭔지 모른 채,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데 하르네와 등반 장비를 다 착용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또한 암벽을 타지 못하게 공원 관리자들이 지키는 거 아니냐고! 역시 경험을 해보기 전엔 상상만으론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기 마련이었어! 엉덩이를 길게 내빼고 휘리릭 앞질러 올라가는 꽁무니를 따라 올라가니 자꾸 뒤처지네. 쓰는 근육이 달라, 장딴지가 엄청 땡기더라고! 한 번 기어올라 가보니 균형도 잡히고 등산화 용도도 알게 되었는데, 올라라, 왜케들 빨라!


 금방 끝날 것 같던 릿지 산행은 방향을 틀더니 또 나오고 계속 암벽만 타고 오르게끔 루트가 있어, 고작 30여 미터 정도밖에 안될 것에 실망한 것은 정말 기우였어! 처음의 낯섦이 두 번째부터는 익숙해졌지.


암벽을 걸어오를만큼 난이도가 A, B, C로 나뉘어 있는데, 산을 여러 번 다녔는데 한 번도 못 본 풍경이라 암벽을 기어가는 게 신났다.


 이것 봐! 아직도 빵빵한 친구들의 엉덩이와 장딴지 근육은 일반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어! 그런데, 키도 작고 뱃살도 아담한 꼬마 여사친은 왜 저렇게 잘 올라간대! 아...... 쪽 팔려! 그 뒤에서 낑낑거리면서 올라가는 내 모습이 초라했다는 건 몽블랑을 두 번이나 죽을 둥 말똥 올랐던 나으 수치였어! 먼저들 올라가서 뒤쳐진 날 기다리던 여유 있는 모습에 오기가 솟더랬지~ 그러나 산행은 빈둥거리듯, 나풀거리듯 길 잃은 어린양을 만나 인연을 쌓는 것 아니겠어?


 우리는 두어 개 더 올라 발아래 도시를 두고, 아직 안개에 갇혀 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김밥, 오이, 막걸리와 김치를 먹었어. 역시 산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이것저것 먹을 걸 챙기는데, 남자들이 준비하는 간단 음식에 비해 살림꾼이란 느낌이 확 오게 싸오더라고! 더욱이, 산에서 만나는 여자들이 보호가 필요할 만큼 약해 보이는 건 착각이었어. 여자는 진리야. 술을 마시는 사이, 릿지의 첫 경험이 신선했지만 더러 위험할 것 같았던 그 길을 정말 많은 여자들도 쉽게 오르는 게 놀라웠어. 이것도 맛 들이면 평범한 산행은 재미없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거의 정상에 다다랐다.

릿지 산행이 짧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우일 정도로. 코스가 많았고 코스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 익숙해지면 재밌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김밥을 먹고 가볍게 다시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무릎에 쥐가 나기 시작했어. 웬 낯선 사람이 따라붙어 예정된 코스를 벗어나 불암 산장으로 가서 막걸리를 마시자는데, 쥐가 나서 따라갈 수가 없었어. 친구가 내려왔는데, 처음엔 무릎에서 시작된 근육 경련이 서서히 장딴지로 내려가더라고...... 아! 이런 수치가!


 친구들은 정상을 오르는 계단 오른쪽 암벽을 타기 시작했는데 잠깐 괜찮던 무릎이 암벽 위에 서니까 다시 쥐가 나기 시작하더라고! 이번엔 사타구니 쪽으로 올라와서 수줍은 색시 같은 목소리로 그냥 계단 타야겠다고 말했지. 홍일점 여사친은 힘든 내색 없이 어쩜 그렇게 잘 다니는지, 대단하더라고! 난 가만히 계단을 걸었어. 쥐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사타구니까지 올라와 근육이란 근육은 다 훑어대더라고!


천천히 걸었지~


동네에 산책하기 좋은 산이 많은 건 행운이다. 아이들과 같이 오는 부모들을 보면 대견한 생각이 든다.



아빠 따라온 애기들이 힘든 내색 없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소곤 거리는 소리가 산에 가득하더라. 연인끼리 온 사람들, 장년의 커플들은 부럽지 않은데, 아이들 데리고 온 부모의 모습을 보면 부럽더라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어!


"이야, 울 애기 웃으니까 천사 같다~, 세상에 천사가 내려왔는 줄 알겠네~"


 주변 사람들이 막 웃더라~

그러는 사이, 쥐 난 게 좀 나아졌어. 정상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아무도 안 보이는 거야! 사방으로 찾아도 안보이길래, 혼자 투덜투덜 내려오는 길이었어. 웬 아이 울음소리가 우렁차길래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온 손녀가 바위에 발이 긁혔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거였어! 가방에서 주섬주섬 밴드를 꺼내 붙여주니 새근새근 미소를 짓는 꼬맹이 눈에 닭똥 같던 눈물이 미소로 변한 거야!


[올 초에도 지리산 설악산을 다녔는데 벌써 이렇게 체력이 소멸했다니! 운동해야겠다.]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나보지 못했지.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없다고 늘 생각해왔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설 수 없다면 사람 만나는 게 두려운 거거든!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같은 나이의 친구를 직장에서 만나, 산악회 활동에 가입해서 만나도 뭐, 별거 있겠나 싶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풀이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서울에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코 베간다는 무서운 곳, 어디 정 둘 데 없이 삭막한 계산적인 이기주의가 가득한 곳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들을 보니 아직 청년들의 순박함이 가득해서 너무 좋았던 거지.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고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을 앞마당처럼 다녔음에도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내가, 한국의 노동현장에서 신뢰와 존중 없는 갑질과 감시, 통제에 몸서리치는 혐오스러움만 경험했었지! 나와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한국에 돌아오니 상부상조와 협동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사라진 것 같았어. 그런데, 친구 덕분에 경험한 영신암 릿지와 다른 세상에 살았던 친구들을 만나 달콤했던 첫 키스의 기억처럼 행복한 하루였어~


릿지 산행은 근육 쓰는게 장난 아니더라. 릿지화의 밀착이 대단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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