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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블루스 3

성추행

by Massoud Jun


오후 2시 40분,

3시 휴식보다 조금 일찍 일을 끝낸 김중천은 같이 있으면 사진을 찍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흩어졌다가 담배한대 피자고 알렸다. 같이 일하는 갓 서른이 된 윤한필은 종천과 같이 있었고 나는 화장실 갔다가 담배를 피우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종천은


“넌 아무데도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라고 명령했다. 그 어투에 잠시 멘탈이 붕괴되었다. 중천이 나를 콕 찍어 같이 일하겠다고 말한지 3일째 된 날이었다. 첫 날은 통영이 고향인 김상곤과 나를 붙여 일을 시켜 업무 거부를 했었다.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장에게 얘기했음에도 굳이 같이 일하겠다는 의도를 이미 파악했지만 무조건적인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김상곤은 일을 할 때 손발을 심하게 떨었다. 그래도 동향 동생이라고 말을 붙여 살갑게 굴고 싶었는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게 주어진 업무에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을 자신을 짜르겠다고 듣고는 오히려 화를 내는가 하면 내 약점을 잡아 동료들 앞에서 화를 내며 공격하기도 하는 놈이었다. 동생이라고 살갑게 대했다가 오히려 자신보다 일을 못한다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자신에게 말도 걸지 말라던 놈이었다. 이미 세번째 겪었던 일이라 반장을 찾아가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주의를 당부한지가 중천이 삼성에서 긴급하게 투입한 날과 비슷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반장이 나를 붙인 것은 뻔한 의도가 보였다.

중천은 상곤과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일관되게 명령했다.


“너는 내가 시키면 그냥 해!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나는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사소한 잘잘못을 잡아 갑질 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막내가 휴식하고 올라오며 심부름을 시켜놓곤 늦게 온다고 나무라는 위세가 대단했다. 내게도 심부름을 시켜놓고 샵장에 없어, 반장을 기다리는데 급하게 전화가 와서 올라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곤 허세가 대단했다. 그렇게 살아와서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고지식하고 자신의 삶이 과대하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상대를 깔볼 때 보일 수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용맹함에 기분을 맞추어 주던가, 왜 그 모양이냐고 따져 묻던가, 문제를 키워 회사 일로 끌고 가던가, 그도 아니면 그저 바보처럼 일을 즐기기로 했다. 한번 건들면 그들의 카르텔이 장난 아니었던 데다, 경찰서에 가면 온갖 불쌍하고 선한척은 다 했다. 경찰은 정의와 사회규범을 다루지 않았다. 딱 원고와 피고를 구분하고 폐륜적인 언행과 원인은 따지지 않았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건드려봤자 더렵혀질 뿐! 중천은 나이도 많은데다 조선업 30년이면, 자신이 최상의 기술자이며 모든 규정과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자부심에 굳을 대로 굳은 머리가 하는 얘기가 궁금했다.


“나이 많다고 존중해줬더니 애들 앞에서 어투가 그게 뭐요? 나를 콕 집어 같이 일하겠다는 의도도 그렇고?”
“그니까 결근을 왜 해?”
"일용직이 결근을 하든 말든 궁금하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 그것 때문에 나 한번 잡아보겠다고 자원하셨어요?”
“여기 일이 급하다고 요청해서 왔는데, 네가 결근하고 마음대로 한다길래 실력 한번 보여주려고 했지. 현장 일하면서 너처럼 마음대로 하는 애들은 현장에서 퇴출해야 돼!”
“그러니까, 조선소 일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형 같은 사람 만나 같이 일하면서 버틴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조선소 오면 미친놈들 많다면서 싫다고 떠나지 않겠어요?”
“무슨 소리야! 조선소에선 조선소의 법이 있어. 그 법에 어긋나는 놈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면 안 돼!”
“그런 고지식한 생각은 혼자, 스스로에게 적용해야지 타인에게 강요하면 씁니까?”
“뭐 이런 시건방진 놈이 있어? 야! 내가 조선소만 30년이야! 너 같이 기본을 안지키는 놈들을 얼마나 봤겠어? 조선소 물 흐리지 말어!”
“조선소 험하고 위험한데 인력난에 허덕이고, 외국 노동자들 우르르 들어와 난장판 만드는데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 안듭니까? 하루 우리가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봅니까?”
“하루 4시간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하는 척만 하는 거야!”
“그럼, 나머지 시간을 일일이 관리하려고 나름 조선소 물먹은 나한테 화장실 가라마라 명령을 내립니까?”
“당연하지! 내가 니 사수니 명령 내릴 권리 있어!”
“하하하. 그런 사고 방식이 조선소의 위험 작업보다 더 위험한 겁니다. 형님 같은 사람에겐 어떤 혜택이나 복지도 필요 없겠죠! 어떤 악조건에도 나만 견딜만하고 돈 벌면 그만이니까! 뭐 하나 물어봅시다. 한화 협력업체에서 다른 협력업체로 옮기려면 안전교육 받아야 하는데 무조건 받아야 되는 겁니까?”
“백프로!”
“안전 쪽에 물어보니 안전 교육 없이 곧장 업체 변경 가능하다던데요? 만원빵 합시다!”
“만원이 뭐야! 백만원 해!”
“만원 밖에 없어서요!”
“돈도 없는 놈이 내기는 왜 해?”


중천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마치 법인 것처럼 그 위세의 당당함뿐만 아니라, 자긍심의 절정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하찮은 보조공 하나 어찌하겠다는 의도는 쉽게 파악이 되었다. 그러나 인생을 그리 살았다고 해서 딱히 미워하거나 멀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둥글게 둥글게 살갑게 굴면 어찌 이리 오만해지는지…

그런 인생을 살아 꼰대가 되어버린 조선소의 고인물들이 어디 한 둘이겠던가!

중천은 자신의 자긍심을 같이 일하는 한필과 나에게 어필하기 위해 들을 필요가 없는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작업복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스복이라는 파란색 덧옷을 입고 있었다. 마침 옆으로 타 업체 모르는 여성이 같은 옷을 입고 지나가자 내가 불러 세웠다.

“두 분이 잘 어울리세요. 커플룩이세요?”
“뭐 이 새끼야? 커플룩? 너 지금 성희롱 한 거야! 알어?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그는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고 화를 내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손은 부들부들 떨었고 금방이라도 공격을 기세로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에 대해 어이없어 하면서도 [완전 미친놈이네!]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나간 여성을 붙잡아 내 말이 성추행으로 느껴졌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농담한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천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그저 우습기만 했다. 그의 오만한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너무 리얼했기 때문에 그의 분노 뒤에 숨은 분노를 파악하려 했다.

23년도에 같이 일하던 입 냄새 심한 동생에게 [입술을 쪽 빨아버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성추행으로 신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갑질을 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이자 하찮은 사람 하나 떼어내기 위한 멋지고 황홀한 연기였다고 생각한 이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농담이 불러온 결과였다. 처음엔 실수했다고 판단하고 사과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서로 아는 사이끼리 형동생 하다가 조공이 기술공인 동생에게 하는 소리에 실력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의 팀장은 내가 노동부에 근로기준법으로 신고하여 손해배상을 해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노동부를 방문하게 했던 삼성중공업에서 만났던 오주열 팀장,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그를 만나 둘이 짰느냐고 물었고 둘 사이엔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오가다 ‘형님이 동생 좋다고 그런거지, 니가 뭔 성추행이냐’고 만나서 한 소리했다며 일단락되었던 사건.

그 동생과 같이 볼품없게 생긴 정천이 자신의 고결한 정조를 지키기 위해 일으킨 성추행에 대한 분노의 의도를 금방 파악했다.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현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괴롭히며 왕따를 시킬 게 뻔했다.

“내가 조선소 일하면서 너 같은 놈들 얼마나 봤겠어? 엉?! 너 같은 놈 없어도 나는 우리 마누라랑 너 같은 놈 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아! 어디서 재수 없는 새끼가 나타나 기분 잡치고 있어!”
“농담한 건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면서도 세상 참 별일 다 있다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의 인내는 깊었다. 그의 의도는 상대의 약점을 잡아 우위에 점하겠다는 악랄한 의도로 해석됐다. 그것도 자신을 하찮은 조공이 더 하찮아 보이는 임금도 낮은 여자와 비교했다는 것 정도랄까!

일과를 마치고 야간 작업을 위해 모였을 때였다. 그는 나에게 존칭을 꼬박꼬박 쓰기로 했다며 반장에게 보고했다. 둘은 같이 10여년 같이 일해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


20250312_151919.jpg 한화오션 H안벽의 P79 FPSO와 LNGC


하이드로 테스트는 배관사의 재능과 무관한 것이라 이미 다른 업체로 면접도 보았던 상태였다. 대부분의 물량팀장들은 신규인력이나 경력직을 뽑으면서 준배관사 정도의 실력의 단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항상 보조공 단가로 일했던 터라 실력을 늘리려면 업무에 집중할 포지션을 맡고 단가도 18만원으로 요청해서 받아들여진 터였다. 중요한 것은, 한 번 받은 안전교육을 업체 변경할 때마다 계속 받아야 한다는 이해못할 번거로움과 그로인한 휴업기간이 일주일에 달했다. 같은 안전교육을 매번 받아야 하는 것은 곤혹스럽고 성가신 일이었다. 그 교육을 매번 받음으로 해서 글로벌 조선사가 얻고자 하는 이득은 뭘까? 새로운 교육자들의 안전의식 고취? 신규자들의 안전 전문화? 아이러니하게도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우리나라는 행정전산 능력이 세계 최고인 나라다. 협력업체 변경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단지, 신규 출퇴근 카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하루, 이틀이 소요될 뿐, 퇴사 처리를 위해 2, 3일, 새로운 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다시 그만한 시간을 소비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협력업체들이 자신의 업체에서 일하던 작업자들이 타 업체에 단가를 올려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고, 서로서로 당 작업자들의 정보를 공유하며 일주일의 시간을 잃게 하여 마음대로 업체 변경을 못하게 하려는 진짜 목적 외에 출입증을 위한 사번 교체는 IT 강국 한국에서 일도 아닐텐데도 조선소에서는 매번 안전교육을 받고 매번 꼭 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현장에서 처음 하는 연장 작업엔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위험 작업이므로 통로 입구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에서 출입을 통제하라는 것은 나를 배려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작업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부르겠다고 했으므로 나는 한적한 시간을 이용해 흡연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중천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구석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폈다. 두 대째 담배를 피고 있을 때 반장 김대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누구 지시로 어디에 있습니까?”

김대훈은 4살 어린 반장이었지만 업무 관련하여 상곤과 같이 일하지 않게 배려해달라는 말 외에 야간 작업을 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누구 지시로 갔느냐고 다그치는 큰 소리가 휴대폰 저편에서 들렸다. 나는 담배를 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누구 지시로 거기 갔느냐”고 계속 물었다. 나는 왜 성질을 내면서 얘기하냐고 되물었고 올만하니 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왜 전화했느냐고 물으니 밥먹으로 가게 모임 장소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모임 장소에 가서 왜 화를 내며 얘기했냐고 따져 물었다. 그 옆에 중천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아니, 왜 성질을 내고 그럽니까? 조용히 말로 하면 될 걸!”
“내가 언제 화를 냈습니까?”


상황을 보아하니, 좀 전에 담배를 피던 종천이 형동생하는 대훈에게 내가 담배 핀다고 고자질을 했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종천을 옆에 두고 내게 지랄을 한 거였다.


“아, 씨팔 짜증나네!”


순간 눈이 돌았다. 안전벨트를 벗으며 그렇게 말하며 대훈에게 돌아섰다. 공격은 짧고 강렬하게! 그동안의 경험으로, 어떻게 가장 적은 상처로 상대를 기절시키는지 잘 알지만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짜고 치니까 재밌냐며 몰아붙이자 대훈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우치가 미쳐 날뜁니다. 어떻게 합니까?!”


라고 보고했다. 전화를 끝난 그는


“집에 가!”


라고 말했다.


“뭐 임마? 집에 가? 다시 말해봐”
“B코드 해줄 테니까 집에 가라고 미친 새끼야!”
“왜 쫄려?”

둘은 웃었다.


나는 평정심을 찾았다. 저녁을 먹는 사이 처음으로 팀장 이 도예와 통화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는 카추샤 제대 후, 조선업에 뛰어들어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물량팀장으로 살아온 인생에 나처럼 자유롭게 결근하고 사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방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자랑스럽고 대견했기 때문에 그가 한화 오션에 파견 보낸 종천이 틀리지 않다고 판단하며 그들의 편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직장내 괴롭힘과 계약서 미작성, 부당해고에 대해 진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산 것이 자랑스럽겠지만 내가 인생을 좀 더 살고 여러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뭔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날 결근하고 퇴사절차를 밟았다. 사장실에서 대표 면담을 요청했다. 대표는 입사 때, 신입사원을 모두 모아서 이력서를 일일이 보며 사원의 이름을 부르며 그 경력에 대해 치하했었다. 그런 대표를 본 적이 있던가? 더듬어 보니 불어통역을 하러 알제리를 향했던 협력업체에서 면접을 했던 기억이 났다. 조선소에선 대흥이란 업체 대표가 인사를 했던 기억도 났다. 반도체 현장, 플랜트 현장의 아싸리 노가다판에선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이종현 대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고 넓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게 신입사원 면접을 실행해주고 개개인의 이름을 불러주며 살아온 이력에 대해 관심가지고 물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며 퇴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러지 말고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다른 팀에서 단가를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첫 출근을 하자 물량팀장 이도예가 전화를 했다. 누구의 지시로 팀을 옮겼는지, 왜 다른 팀으로 갔는지,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거였다. 저녁에 보자고 했다. 퇴근하는 버스에서 내리다 무릎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버스는 멈칫거리다 가버렸다. 엉금엉금 기어 폐건물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소방소에 전화를 걸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근처 대우병원 응급실로 가겠다고 하자, 금방 소방 긴급차량이 나타났다. 같이 일하던 한필이 부축을 도와 겨우 차에 탔다. 대우병원은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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