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블루스 4

호랑이 굴

by Massoud Jun


산재 준비


주 출퇴근 경로였던 북문으로 향하는 두모 고개에서 자전거로 작업장이 있던 서문 쪽으로 가려면 30여분 소요됐다. 물량팀장들은 배 아래서 아침 조회를 하지 않고, 꼭 배에 승선해서 작업장이 있는 곳에서 조회를 했다. 그 시간을 맞추려고 사소하게 출근 시간을 더 빨리해야 했다. 그 사소한 시간 착취가 이뤄지면 휴게시간, 퇴근 시간도 조금씩, 야금야금 착취했다. 같은 작업자의 모습을 하고 관리자로써 초록색 안전모를 쓴 그들이 같은 작업자들을 착취하는 모습은 모두 한결 같았다. 조선소에서는 이미, 인간적인 존중과 자유로운 인간관계는 포기해야 했다. 그런 관계는 오랫동안 조선소에서 일을 했거나, 각 조선소들을 옮겨 다니며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아니라면, 모든 신규자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직업적 계급에 평가를 받아야 했다. 조선소의 각종규제는 작업시간 준수, 시종시간 준수, 지급된 안전화 외 착용 금지, 사제 보안경 착용금지 등, 온갖 말도 안되는 규정과 규제를 법처럼 떠받들었다. 특히 심한 것이 휴게시간 외 흡연 금지였다. 인간으로서 정해진 시간외에 담배도 못 피우고 시간을 지키며 불만을 표출하면 비흡연자와의 형평성을 따졌다. 휴식할 곳도, 커피한잔 마실 곳도 없는 선상에서의 휴식은 인권유린에 가까웠다. 10여분 만에 하선해서 커피한잔 하고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혹여, 내려올까봐 관리자나 사장이 지켰다.


조선소에서 오래 일한 기술자들은 신참들이 들어와 자신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얼쩡거리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쉽게 냈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우리 이웃의 얼굴을 한, 형제 같은 사람들이, 살갑거나 다정한 상부상조는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조선소에서의 생존은 인간성의 밑바닥을 각오하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절대 지배자들의 목적이, 불법파견이나 하도급으로 노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짜내서, 찌꺼기 같은 돈을 착취하는 것에 굴욕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같은 노동자들은 서로의 은빛 찬란한 사슬을 자랑하려고 열심히 경쟁했다. 나보다 나으려고 약점을 고자질하고 지배자의 편에 섰다. 현실판 아수라와 다름없었다. 이웃의 모습을 한 다정한 동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양 프로젝트 P79로 옮기면서 출퇴근 길은 능포동 가파란 고갯길로 바뀌었다. 도보로 30여분 소요되는 길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며 언덕 저편으로 만나는 햇살을 바라보는 아침은 힘든 하루를 예고했지만 찬란했고 고요한 적막속에 잠긴 조선소는 화사한 햇빛에 안겨 기지개를 폈다. 어느덧 봄이 온 듯했는데 언덕길을 오르는 거리의 나무에 벚꽃이 핀 줄을 몰랐다. 봄이 온다고 바람이 계속 불더니 꽃잎을 휘날렸다. 꽃들은 봄과 함께 온 빗줄기와 바람에 금방 사라졌다. 하얀 색인지 회색인지 삭막한 자연의 색깔과 어울리지 않았다. 노랗고 빨간 꽃들이 메말랐던 자연에 생명을 주고 화려한 옷을 입히는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걷지 않고 출퇴근 버스를 탔다. 집 바로 앞, 도서관 앞에 출퇴근 버스가 다녔기 때문이었다.


옥수 고갯길을 넘어 한화오션 H안벽을 볼 수 있다.


한 겨울을 오롯이 조선소에서 보내고 맞이한 5월, 두모 고갯길을 넘어가면 한화 오션 북문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장승포에 사는 노동자들이 도보로, 혹은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거기 대우병원 지하엔 배치전 건강검진을 진행했으나, 1만원 비싼 비용으로 인해, 터의원이나 정의원에 밀렸다. 심지어 지하에 건강검진 센터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1층 로비가 붐볐다.


나는 정형 2외과에서 MRI 촬영을 마쳤다. 무릎 염좌라고 의사가 말해주었지만 삐걱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통증과 마치 다리를 저는 듯한 느낌 때문에 심히 불쾌했다. 그보다 조깅을 못하게 될까 봐 슬펐다. 알제리에서 일주일 전에 귀국한 아내가 자리를 지켰다. 이제 좀 괜찮아서 절뚝거리며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병원 밖에서 하늘을 향해 담배연기를 후우~ 내뱉었다. 약국들이 즐비한 정문 앞에, 웬 흑인 한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최근에 흑인들이 현장에 자주 눈에 띄었다. 특이하게도 카리브해에 면한 노예 섬이었던 아이티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세네갈이나 남아공에서도 왔고 튀니지에서 온 외노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관광비자로 왔다가 물량팀장들이 회사의 승인을 얻어 1년씩 계약을 맺고 노동할 수 있는 비자로 갱신한다고 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조선소 협력업체에 불법파견을 수행하는 물량팀장들이 책임졌다.


애석하게도 이들에겐 숙소를 제공해준다는 것 외에 복지혜택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도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마지노선인 고용보험에 들지 않았다. 건강검진 비용도 떼먹었다. 숙소비용 뿐만 아니라 산재가 발생해서 해고시켜도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다. 노동의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 기생하는 물량팀장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인간적인, 인간다운 복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노동부 지청 직원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처절하게 알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그 친구에게 왜 병원에 왔느냐고 물었다.


“소변볼 때 너무 아파. 피가 나, 현장에서 쉬지도 못하게 일을 시켜. 숨도 못 쉴 정도로 일을 시키는 게 문제야!”


이름이 사무엘이라고 했다.

그는 넋이 나간 듯 혼잣말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이 많고 조선소 밥을 먹을 만큼 먹은 나도 당하는 일인데, 하찮다고 생각하는 이 흑인에게 가해진 만행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문득, 조선하청지회나 노조가 이러한 사실을……, 맞다. 그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벅찼다. 노동부 통영지청??? 기록이나 통계가 있기는 할까?


“한국 온지 얼마나 됐고 어떤 경로로 왔어? 아이티 친구들 많던데 몇 명이나 돼? 협회나 모임 같은 건 있어?”


사무엘은 친구가 불러서 여행 비자로 왔다고 했다. 회사와 계약하고 노동 비자로 바꾸고 6개월이 됐다고 했다. 그냥 일하기도 바쁜데 같이 지내는 친구가 아니면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했다.

나는 휴식때 여행을 다니며 위안을 삼으라 위로를 건넸다.


거제 문화예술회관과 유람선 선착창과 더불어 해성중고등학교와 거제 대학교뿐만아니라 대우병원이 있었다. 두모동 고개에선 장승포의 좁은 해안과 세계 제2의 조선소를 관망할 수 있었다. 거제대로 길을 따라 가면 지세포를 따라 거제 해안을 한바퀴 돌면, 옥녀봉에서 북병산을 끼고 노자산과 가라산, 망산의 아기자기한 산등성이와 짙은 옥 빛 바다와 함께 와현 해수욕장, 구조라, 망치 몽돌, 흑진주 몽돌 해수욕장과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바람의 언덕이 나타났다. 바다를 배경으로 삶을 영위하는 거제도의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여유롭게 빈둥거리면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일운면 옥림 데크길


호랑이 굴


2012년, Inpex의 해양프로젝트 Ichthys 프로젝트에 부흥이라는 업체의 배관 팀에에 처음 일하면서부터 인연을 맺게 된 대우중공업(DSME)이 한화오션으로 23년 5월 공식적으로 바뀐 이후, 현장은 확실하게 삼성중공업의 길을 가는 듯했다. 현장은 감시와 통제가 극에 달했다.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정형화된 생산의 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처럼, 즙을 짜듯 행동과 시간을 쥐어짰다. 10분간의 휴식 동안 흡연장에 모인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시간 외 흡연하는 자는 경위서 및 재발장지각서를 제출, 두번째로 일주일 잔업 특근 금지, 3차 적발 시 작업장 퇴출의 불이익을 준다고 시시때때로 단톡에 올렸다. 심지어 협력업체 대표는 휴식 시간동안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단속하며 지켰다. 10분 휴식동안 내려갈 수도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내려와 휴식하지 못하게 지키면서 사진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한화에서 제공하는 안전화 외에 사제 안전화를 신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단톡에 올렸다.


작업 현장에서 하선하는데 10분 정도 소요되니 작업 중에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시는건 불가능했다. 다시 올라오려면 간이 엘베를 타야 하는데, 워낙 줄이 길어 제 시간에 올라올 수 없으니 하선 자체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여유를 부리며 담배한대 피며 커피한잔 마시고 올라오면 30여분 소요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협력업체 이하, 물량 팀 소속 반장들은 최선을 다해 휴식 시간 10분을 지키려 애썼다. 부유식 생산 저장 하역 설비인 거대하고 복잡한 이 최첨단인 배를 FPSO라 불렀고 평균 길이가 300미터에 달했다. 사무실에서 출근 체크를 하고 승선을 위해선 3개의 리프트를 타고 오르거나 도보로 올라 모임장소까지 찾아가려면 기본 20분이 소요됐다. 본격적인 업무 5분 전에 새마을 운동 체조가 시작되면 아직 승선하지 못한 인원들은 체조가 끝날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안전요원들이 지켰기 때문에, 마치 지각한 것처럼 욕을 얻어먹었다. 조선업이 몰락하던 2017년 전엔 아침 모임시간을 30분 앞당겼었고 문제가 되자 15분, 다시 5분으로 줄여 앞당긴 거였다.


협력업체는 시종시간 준수를 위해 점심시간 포함, 아침 모임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사무실에 보고하고서야 움직였기 때문에 하선을 위해 리프트에 도착하는 시간을 퇴근 시간에 맞추었다. 문제는 점심 시간이었다. 12시에 하선해서 빠른 걸음으로 식당에 도착하면 길게 늘어선 줄에 맞추어 밥을 먹고 나면 이미 30분이 훌쩍 넘어 다시 돌아가기 바빴다. 여유를 부리며 담배를 피거나 커피를 마실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노동부가 이 점심시간을 공식 휴게시간이라고 답변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불과 몇 년 전엔 점심 끝나고 45분에 오후 인원체크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밥을 먹는 것도 사치였는지도 몰랐으니, 오전 4시간 동안 10분 휴게시간을 주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안락한 작업환경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노동력 착취를 위한 시스템만이 하청에 재하청에 있었다.


협력업체는 자신들의 회사에서 일할 계약직을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뽑지 않았다. 고용24나 공식 사이트를 통해 채용하는 정규직이나 계약직은 프로젝트 계약직에 연봉 협상인 반면, 실질적인 업무를 도맡아 하는 현장 인력들은 모두 조선업 채용 밴드나 당근 알바, 일다오와 같은 어플을 통해, 일용직 물량팀장이 채용했다. 물량팀장은 개인사업주로 등록하고 인원을 채용하거나 인력 사무소를 통해 신규 인력을 소개비 1만원씩 주고 공급받았다. 결근이 잦거나 근무에 불충실하거나 사내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해고했기 때문에, 실제 채용과 해고 업무는 모두 물량팀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계약서도 예전엔 하청 업체를 통하다가 이제는 개인사업주인 그들이 직접 작성하거나, 심지어 계약서 작성 없이 현장에 투입시켰다. 그들이 강력한 사업주로 떠오른 이유는, 4대 의무 보험 가입 없이 3.3% 세금만 공제했기 때문에, 고용보험에도 들지 않았고 채용된 인력을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켜 차익을 빼먹었다. 또한 실업급여를 받으며 현장 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배치 전 건강 검진비용, 숙소비용, 3개월 이내 퇴사자 의류비용 갈취 등은 노동부도 잘 알고 있었다. 2014년 검진비용 및 숙소 비용 착취 신고 후, 벌금 및 근로기준법 위반을 받은 물량팀장이 여전히 착취를 일삼았다. 노동부가 현장 감시를 나오면 노동자들은 단톡을 통해 노조와 한화가 패트롤을 돈다고 알렸다. 주의 내용은 사제 안전화 금지, 휴게 시간외 흡연 금지, 안전고리 체결 철저 등을 올리며 걸리면 노조가 작업 정지 명령을 내린다고 노조를 탓했다. 알고 보면 세상 편한 것이 노동부 직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량 팀장 하나가 사람들을 채용하며 배치전 건강 검진비를 해쳐먹어도 해당 물량 팀장에게 경고해 검진비만 돌려주게 했다. 협력업체에 공고문을 발행해도 채용 당사자가 업체가 아니므로, 아무 소용없는 일을 한다고 세금을 받아먹고 있는데다, 현장에 나와 노사와 짜고 치며 발생한 문제에 대해 노조 탓을 하거나 협력업체에 개선 공고를 하면 끝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H안벽 생산센터


나는 대우 병원을 나와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현장으로 들어가 지원센터로 갔다. 한화오션 안전책임자, 한화 노조, 협력업체 대표와 Saipem CM 스테판을 만날 목적이었다. 안전 본부가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정문 생산센터로 들어갔다. 그곳에 대부분의 선주사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에, Saipem 안전매니저와 한화의 P79 안전매니저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떠나버린 선주 사무실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안전이 적혀진 사무실을 방문했더니 회의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한화 안전 책임자를 만나러 왔다고 전했더니 이리저리 전화를 하던 직원이 나를 데리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잠시 기다리면 회의를 끝낸 담당자가 내려온다고 했다. 이렇게 친절한 직원에게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거절했다. 혼자 커피를 시켜 자리에 앉으니 곧 담당자라는 사람이 내려왔다. 자신을 안전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물량팀 소속이고 현재 무릎을 다쳐 산재요양 기간이라고 말하며 현장에서 일어나는 통제와 규정위반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했다. 팀장은 새겨들었다.


"사제 안전화 금지 지시하셨나요?"
"안전 규정에 위반되지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한화 직원들에겐 사측에서 지급한 안전화를 신으라고 권유합니다.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사고 시, 사제품일 경우, 개인 책임도 묻습니다."
"휴게 시간외 흡연 금지 지시합니까?"
"지정된 흡연 장소 외 흡연을 금한다는 공문을 내리고 관리합니다. 다른 지시는 없습니다."
"흡연장이 작고 협소합니다. 휴게 시간 10분만에 너무 몰려서 위험한데, 휴게시간은 말 그대로 휴게여야지 담배한대 피우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합니다. 그런데 하선을 금지하고 커피 마실 시간도 없다.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노조와 협의를 통해 정한 휴게시간이다.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
"직장내 괴롭힘은 안전의 영역이 아닌가?"
"생산 관리의 영역이다."
"업체 변경을 할 때, 의무적으로 일주일 이상 대기하고 필히 안전교육을 다시 받아야 하는가?"
"MD1 건물 2층 신뢰관, 상생협력 및 인사 팀에서 담당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업체가 변경되어 정보 변경을 해야 하므로 필히 안전교육 후 교부하게 되어 있다. 절차이며 며칠 간은 필요하다. 대신 같은 업종에서 변경할 시, 안전교육은 필요치 않다."

팀장은 거부감 없이 친절하게 답변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바로 아래 노조사무실을 방문했다. 10여년 전에 한번 방문해서 현장 프로젝트 개선책을 전달했던 적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직원들 사이로 가서 현장 규정과 휴게시간과 퇴근 시간에 대한 질문을 했다.


"휴게시간 10분, 퇴근 시간 6시 노사단체교섭을 통해 적용되었다고 하던데, 노조도 딱 시간 정해놓고 10분 만에 담배피고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남들 다 5시에 퇴근하는데, 왜 하청노동자들은 6시까지 의무적으로 일해야 하나요?"
"10분도 피 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성과고 노동자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항상 추가시간을 원한 결과입니다."
"80~90년대 피 터지게 싸워 이룬 성과는 30년도 넘었습니다. 이미 세계 최고가 된 지 오랜데,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조의 단결된 힘이 하청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선하청지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화 협력업체 일용직 노동자들은 노조의 혜택을 받지 못하나요?"
"우리가 경찰들에게 피 터지게 얻어터지고 지도부 도망 다닐 때, 그들은 우릴 비웃고 혐오스럽다고 손가락질했었죠. 우리가 쟁취한 권리를 그들은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노조가 쟁취한 권리는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노조가 사측의 입장에서 하청 일용직들에게 권력으로 군림하려는 의도로 들립니다. 휴게시간, 퇴근시간만 제대로 챙겨도 조선소에 대한 이미지가 좀 바뀔 것 같은데요, 교섭해볼 의도가 없습니까?"
"합의한 휴게시간과 퇴근시간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청 일용직은 하청지회에서 챙길 일이죠."
"말씀을 들어보니, 다른 노조나 세력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 같습니다."
"30분 휴식이나 5시 퇴근은 과한 요구입니다. 바쁘니 이제 가보겠습니다."
"노조 전체의 생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


H생산센터 4층에는 협력업체 사무실과 탈의실이 자리했고 5층에는 해양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선주사와 한화 실무팀들이, 6층에는 그 중에도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P79의 선주 Petrobras의 사무실이 따로 있고, 시행사인 Saipem과 한화는 같은 사무실을 썼다. 우선 4층 협력업체 사무실에 대표실이라고 적힌 곳을 찾았다. 대표와 총무, 여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표는 무릎을 다친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산재처리는 하기로 했다고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또 얘기하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고 했다. 산재처리는 해주되 해고한다는 뜻이었다. 산재처리는 회사에 불이익이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출퇴근 관리와 업무 도면, 업무 지시 관리를 수행하며 각 물량팀장들에게 할당량을 지시하는 협력업체는 요즘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도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 모두 물량팀장의 이름으로 계약을 했고 물량팀장의 회사 이름으로 급여를 지불했다. 엄격하게 재하청이 금지된 조선업에서 제조업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명백한 불법이 지배하는 조선소는 노동부의 묵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됐다. 누더기로 남은 법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Inpex 시절, 안전매니저 파스칼, 쟈끄, 삼성 Martin Linge에서 일한 크리스토프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리고 있었잖아!”


대뜸 스테판이 이렇게 말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복도 쪽 의자로 향했다.


“밀폐구역 감독관에 지원한 ‘한’이 탈락했어. 힘좀 쓰지 그랬어? 배 떠나기 전에 서로 알아두면 좋았을걸!”
“한 이력서 전달해주고 잘 부탁한다 했는데, 우리 패트리엇을 배신했네!”


며칠전에 같은 외인부대 출신 ‘한’의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현장에서 보니 채용이 끝난 모양이었다. 한은 삼성중공업과 화화 오션을 다니며 비계 감독관을 전문으로 했다. 성격과 괄괄하고 업무 처리도 시원해서 선주 쪽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탈락했던 것이다. 스테판은 프랑스인들 중에, 지방이 거의 없는 완벽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몸매와 건축 매니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군인 같은 인상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르세유 출신으로 외인부대 본부가 있는 오바뉴와 가까웠고 말이 잘 통했다.


“세일어웨이 정해졌어? 그때, 판넬 클리닝이나 프로젝트 좀 남은 거 없어?”
“10월 말이면 다 끝나. 세일 어웨이 기간동안 200여명 승선하고 싱가폴, 마이요트 거쳐 3개월간 브라질까지 예정됐어”


“저런, 한화와의 소송은 잘 돼 가?"

“무슨 소리야?”
“시종시간과 휴게 시간 등으로 Saipem에서 소송 건다고 매일 문자 보내. 물론, 오렌지 즙 짜듯 생산량을 위해 압박한다는 건 알지만!”
“맨날 회의한다고 한국 시스템에 진저리가 나긴 한데, 너희 작업 시간은 인권유린 아냐? 중국에서 모듈 작업할 때도 그러지 않았는데, 한국은 중국보다 못해!”


한국이 중국보다 못하다니 깜짝 놀랐다. 프랑스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이 중국보다 싫다고 했다. 진의가 궁금했다. 현장에선 한국인 관리자든 감독관이든 중국에서 제작한 모듈은 모두 문제투성이라고 했다. 도면대로 추후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중국 제작 모듈과 한국에서 제작된 도면이 맞지 않았고 특히 전기, 계장이 심각하다고 했다. 전기를 모르는 사람도 현장에서 보면, 연결되지 않은 덕트와 전선관이 수두룩했다. 어쩌면 중국에서 비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주무르고 항모를 건조하며 미국을 추격할 때, 우리나라는 주술에 기대어 쿠데타를 모의, 시행했고 비리와 부패를 위해 대기업들이 정부에 줄을 섰다는 진실이었다. 저가 공세 이전에, 급격한 중국의 IT 발전이 어느정도까지 왔는지, 국뽕과 중국 혐오에 취한 한국이 알수 없던 술꾼 독재 시대 3년이 가져온 결과랄까...


“중국은 이전에 너희들이 알던 나라가 아냐. 조선소 시설뿐 아니라, 역량도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돼. 앞으로 한국은 경쟁력을 잃게 될거야!”


스테판의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어쩌면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기엔 중국의 발전을 놀라워하던 프랑스 친구들의 찬사와 경고는 오랫동안 남았다. 곧 수행하게 될 비너스 프로젝트에 들어올 프랑스 토탈사에도 이전에 왔던 안전 매니저 파스칼은 중국으로 간다고 했다. 아내가 한국인이고 여기에 집이 있음에도!


“알았어. 한국 떠나기 전에 옥포에 내가 추천한 집에서 술 한잔 하자구!”


사무실을 나오려다 한화오션 의장팀장을 만났다. 보통, 전무, 상무, 부장으로 내려오던 계급체계가 팀장 이하로 바뀐 모양이었다. 나는 의장팀장에게 휴게 시간 10분 이외 흡연, 퇴근시간 6시, 의장팀에서 지시했냐고 물었다. 팀장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의장팀장의 직권으로 휴게시간 30분, 5시 퇴근을 지시할 수 없냐고 제의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그가 받았을 질문 중에 가장 황당하고 어이없었을 질문은 곧장, 하청업체 대표를 거쳐 물량 팀장에게 전해졌다. 물량 팀장, 이도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고 반장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저녁에 장승포 도서관 앞에서 뵐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