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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2. 2019

노동자들의 갑질

대우조선해양 2: 서로 도우면서 사는 줄 알았다.

 


 반장이 말했다. 어제 그 친구들이 물량 팀장과 반장에게 이른 모양이었다. 혈연인지 지연인지로 엮여 있는 친구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현장에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아무 말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의 뒷담화가 노골적으로 이어졌다. 힐끔거리면서 흠을 잡아 흉을 보는 게 분명했다. 흉 보는 거야 나름 큰 즐거움일 수 있으니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흉이 더 한심해졌고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내 팔자야 어떻든 저런 마인드의 소유자를 만나는 건 불행한 일이었다.

 같은 숙소를 쓰는 기술자 하나가 반갑게 막걸리를 들고 찾아왔다. 방 인원이 방 세 칸에 거실 포함해서 7명이 사용했다.


“아따 형, 그러지 말어! 처음부터 다 알아봤으. 형의 버릇을 어떻게 고치겄으!”


 같이 방을 쓰는 나이 어린 기술자가 의기양양하게 일당 얘기와 더불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버릇 얘기를 했다. 자기는 원래 기술자로써 17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그냥 속 편하게 15만원 받기로 하고 이 팀에서 배관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들이 반말에 인생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일당 많이 받는 게 완장인지 기술자로써의 자부심이 상대의 나이와 경력을 무시하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처음 작업 시, 그가 알려준 대로 작업을 마쳐 놓자 뒤따라 점검을 하러 다니면서 꼬투리를 잡는 게 경사지게 설치를 하지 않았다고 사람들 앞에서 훈계를 하기도 하던 친구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하는 짓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간단한 일들은 경험이 중요할 뿐이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란 것을 알자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는 삼성 중공업에서 프를루드 프로젝트의 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 메니저를 했다고 했다.


 에이전시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인물들도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휴대폰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 보여주자, 나를 보고 '이 사람이 에이전시 전무'라고 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자였다. 그런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무슨 흉을 보는지 그들끼리 의기투합해 나를 왕따 시키는 일에 열성이었다. 그럼에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사수인 동환과 함께 궂은 일은 다 맡아 하고 있었다. 평소에 형, 형 하면서도 한 번도 먼저 아는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을 잘했고 조선소의 규정을 한 번도 어긴적이 없이 틀림 없이 수행했다. 그 뿐만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모두 일 하나는 틀림없이 완벽하게 수행해서 회사와 물량팀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동환은 부지런하고 착했다. 깊이 생각해서 한 번 해도 될 것을 두 세번씩 다니면서 혼자 바빴다. 내가 나이가 많은 탓인지 대부분 시키지 않고 혼자 일했다. 내가 멍하니 서서 뭐해야 하는지 물어도 혼자했다. 우리에겐 배관 서포트 설치하는 일이 맡겨졌고 좁고 협소한 곳에서 둘이 움직이기에도 불가능한 곳에서 낑낑거렸다. 한가해지면 휴대폰을 꺼내 보다가 동환이 짜증을 부리면 후다닥 미안하다면서 주머니에 넣었다. 동환이 모두 다 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휴대폰을 보다가 쿠사리를 먹곤 다시 넣곤 했다. 그러나 내 잘못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동환이 그러는 것을 이해하고 미안했다.


 나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자신들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자기를 도와줄 조공이 오면 군대에서 쫄따구 다루듯 사람들을 대했다. 거의 모두가 그것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행했다. ‘이거 해’, ‘저거 해’를 시키고 턱짓으로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 오라고 시켰다. 나이나 상대를 봐가며 약하다 싶으면 못되게 굴었고 갑질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그렇게 시켰다. 그것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귀가해서도 하는 얘기들은 온통 작업에 관련되어 자신은 완벽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써,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곧 조선소에서 '쟤는 안돼' 로 끝났다.


 자신들의 가치는 오롯이 자신의 수고로만 오는 것이지 붙잡아야 할 동아줄도 라인도 있을 수 없이 오롯이 자신의 실력과 일당이었다. 숱한 사람들이 바뀌어도 자신은 일 잘하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소에서 살아남아 일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가치였다. 집을 샀다거나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렇게 떠돌면서 갑질을 일삼았다. 조선소에서 갑질을 일삼던 자들은 육상 플렌트나 건설현장에서도 똑같았다. 심지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노동부에 민원이 부당해고와 일급 미지급, 착취로 들끓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 근절될 리가 없었다.


대우조선해양 내, 밖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그들은 스스로 완벽했기 때문에 머리 숙여 아첨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반항을 하면 안 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서로 고수라고 알아봐주고 인정해주었다. 조선소는 그들의 가치를 백퍼 활용했고 때가 되면 버렸다. 그리고 때가 되면 새로운 사람들과 돌아와 개 같이 일했다.


그들의 습성을 조선소는 너무나 잘 알았고 노조나 의식 있는 노동자들의 적이 되었다. 전지전능한 협력업체의 관리자들이 자신에게 준 일당이라는 능력과 직·반장이라는 완장은, 노조를 적으로 삼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모욕을 주었다. 인간적인 굴욕은 물론, 가치까지 저하시키는 만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용접사와 다른 배관사가 나를 갈구는 일에 힘을 합쳤고 팀장과 연관된 사람들도 합쳐 나를 몰아 내는데 열성이었다. 내가 개의치 않자, 온 몸에 문신이 있는 조폭 출신이 칼을 들고 자는 밤에 찾아왔다. 웃으며 돌려 보내자 또 칼을 들고 찾아왔다. 그와 어울렸던 몇몇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조폭 출신을 좋아했다. 내가 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므로 왜 화가 났을까 대화로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만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자로 계속, 왜 지각했는지, 왜 결근했는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조져 버리고 싶지만 너 좋아하니 참는다.]


 그가 깡 소주를 까고 벌컥벌컥 마시더니 내게 대들었다. 화가 난 그의 말은 이랬다. 자기는 용접사고 일당도 많이 받는데 조공인 내가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기본이란, 아침 조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오후 조회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논다는 것이었다. 또한 방청소를 하지 않고 배관사가 하는 말에 토를 달고 나이 많은 노릇을 하려한다는 것이었다. 용접사와 다른 배관사, 협력업체 안전까지 연관되어 있었다. 안전과 함께 둘이 죽이 맞아 히히덕거리면서 넷이 모여 흉을 보았다. 용접사가 비록 약쟁이에 조폭 출신이긴 해도 마음에 들었던 친구였다. 그런 그에게 내가 무슨 실수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또 칼을 들고 숙소를 찾아왔다. 웃통을 벗자 그리다 만 용 문신이 드러났다. 밤이면 숙소에서 영어 공부를 하던 나는 그가 공부용 탁자를 칼로 찌르며 광분하는 눈길에 약을 한 흔적이 보였다. 눈을 까 뒤집고 무릎을 꿇고 하는 행동이 비이성적이었다. 그날 밤, 두 번이나 찾아왔다. 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그의 모든 언행을 무시했다. 그러나 나는 2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팀은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 인민재판하듯 그들과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비판했고 기술자가 나와 같이 일 못하겠다고 안전과 협력업체 관리 모두가 그 행위에 동의했던 터였다. 결국 팀장이 나를 잘랐다.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뱃살이 쑥 빠져 바지가 흘러 내렸다. 열심히 일한 것에 만족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열심히 살을 뺀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와 그들의 의식이 그렇게 달랐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의식과 삶을 존중했다. 그들의 수고를 통해 가족을 보필하고 가장으로써,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한다는 것이 삼성중공업이나 현대 중공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조건이나 환경이 훨씬 나았다. 첫 번째는 출퇴근 차량 운용이었다. 삼성은 차를 놓치면 곧 결근하거나 택시를 타야했지만 대우는 작업 시간 전까지 차량이 운용되었고 넉넉했다. 퇴근을 위해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나와 줄을 서야할 이유도 없이 퇴근 차량이 넉넉했다. 다음은 식사였다. 삼성은 풀만 먹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큰 뚝배기 그릇에 고기를 담궜다 뺀 것 같은 국물이 나왔지만 대우에서는 넉넉하게 나왔다. 생선도 넉넉하게 먹었고 고기도 야채보다 많았다. 마지막으로 급여였다. 물량팀으로 일해도 한번에 협력업체 이름으로 떨어지는 반면 삼성중공업은 이중으로 지급됐다.


 한국의 빅 3 조선소엔 전설처럼 떠도는 얘기가 있었다. 돈은 현대에서 벌고 밥은 삼성에서 먹고 일은 대우에서 하라는 그 말은 누군가 만들어 낸 얘기같았다. 대우의 음식이 푸짐하고 인정이 넘치는 것에 비해 삼성의 밥은 깔끔하기만 할 뿐, 온갖 채소로만 만들어진 그야말로 풀들의 잔치였다. 삼성중공업과 계약을 맺었을 캐터링 하청업체 삼우 캐터링의 밥 값을 노동자가 1.000원씩 내야 하는 것도 착취가 아니라 갈취였다. 처음에는 300원인가 급여에서 공제하던 것을 이제는 대놓고 천 원을 뗐다. 부자들의 하루라도 일을 쉬면 입에 풀칠을 해야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갈취를 삼성은 즐겼고 노동부는 눈감고 아웅하고 있었다.


풀 뿐인 삼성의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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