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테크 사장
*** 지오테크 사장
CEEG 엔지니어링 사무실은 알제 국제공항인 우아리 부메디앙 공항 근처에 소넬가즈 자회사들과 같이 있었다. 발주처 건물은 담당 직원을 찾아가려면 두세 명이 일하는 각각의 사무실을 방문해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탁 트인 건물 한 공간에 전체 부서가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만든 것이 아니라, 각 파트 별로 조그마한 사무실이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어 문 앞의 조그만 문패를 확인해야 했다. 심지어 문패가 없는 사무실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녀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사무실 구조와 파트 별 사무실을 찾는 것이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회사에서 각 사무실 직원들에게 전하는 선물을 주러 방문했다가 젊은 여성들이 있는 방에서도 무안을 당하고 쫓겨났다. 사무실 밖으로 여자들이 재미있다고 까르르 웃는 소리에 괜히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이 부장과 나는 계약 선불 금 15%를 받기 위해 재경부를 방문했다가 미리 선약을 잡지 않고 왔다고 쫓겨났다.
발주처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이 부장이 잊어 먹었다면서 출장을 떠난 발주처 사장이 언제 돌아오는지를 모하메드에게 물어달라는 요청을 하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곧 ‘그걸 네가 왜 알아야 해?’라는 답변이 그의 신경질 난 얼굴과 겹쳐서 돌아왔다. ‘내 업무 스타일이 아니지만 물어보래서 물어본 거야’하고 대답하자, ‘상관없다’면서도 돌아오는 날짜는 알려주지 않았다.
오후에 피엠과 함께 현대 건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오테크 본사를 방문했다. 용 부장과 함께 현장 연구소 방문한 이후, 몇 번 지오테크 사장실 방문이 있었지만 약속한 대로 진행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의록을 작성해서 방문했던 터였다. 이미 한 달 가까이 진행한 협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업체로서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고 사장의 무성의한 거짓말에 지질조사 업무는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사장과 피엠에게 줄 자료를 복사해서 하나씩 내밀었다. 피엠은 처음 사장을 보는 것이라, 간단한 소개를 시켰다. 사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눈 앞에서 직접 진행해야 현실을 알 수 있을 터였다. 더욱이, 이 부장이 발주처 공무를 직접 담당했기 때문에 지오테크 회의를 갈 때는 혼자, 무엇을 해야 할지 미션을 받고 있었다. 용 부장처럼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라 내가 혼자 가도 다를 바가 없어, 그렇게 배우는 공무는 온전히 내 책임과 배움으로 돌아왔다.
지오테크 사장은 얌전하고 귀티 나게 생긴 사람이었다. 진지했지만 지금까지 나눈 약속에 대한 회의록에 사인을 해주지 않겠다고 피엠이 보는 앞에서 말했다. 회의록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약속했던 현장 투입 장비가 공장에 아직도 세워져 있고 내일 내일 하던 장비 투입은 피엠 앞에서 다시 내일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장비 투입은 인원 투입도 동시에 이뤄져야 했기에 장비 수리기사와 보조 부품 때문에 장비가 서는 일이 없게끔 철두철미한 계획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지만 사장은 사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며칠 후, 피엠과 공무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현장 답사를 가는 길에 전문 지질조사 박사를 현장에 투입한다는 약속을 했다.
피엠에게 보고했지만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이어서 차라리, 공기를 단축시키려면 현지에 와 있는 두 한국 업체에 재계약을 맺는 방법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그들도 연구소에서 시료 채취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비슷해서 단가 차이는 나도, 최종 지질조사 결과 시간은 비슷했다. 알제리 시스템은 늦고 여유롭게 진행되었으나 한국의 업무 시스템으로 보면 거의 진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닦달을 한다고 해도 한국 업체들의 신속, 정확한 업무를 그들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해서
사실, 한 번씩 확인만 해주어도 될 것을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스스로 해결될 일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선급금과 마찬가지로 지질조사도 피엠이 오고 나서야 마침내 눈 앞에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수고하셨어요, 과장님”
숙소로 돌아오자 김 수영이 살가운 인사를 했다. 평소에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습관이 대화 중에도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회사 사무실과 숙소로 사용할 부동산 계약이 거의 끝나간다고 했다. 사무실과 숙소를 동시에 사용하는 건물로 계약을 잡아가는 듯했다. 알제리가 테러의 위험이 많고 안전에 취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숙소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업무에 효율을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프로젝트 비용 내에서 부유한 지역의 건물 하나를 전체로 임대하는 것으로 예산을 잡은 모양이었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앞으로 펼쳐질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김 수용의 러브스토리를 들었다. 알제리 제2의 도시 오란에서 시행된 비료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미츠비시와 설계, 구매, 시공, 시운전을 포함해 3조짜리 공사였지만, 대우는 그중에 7천억 정도의 시공과 옵션 품목을 담당했던 곳이었고 나는 근처 아르쥬라는 곳에서 잠깐 통역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더욱이 아르쥬의 안전 부장으로부터 채용 제의가 있었지만 삼영 기업이란 양아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연이 없었다.
“대우 건설 사람들 대우 좋을 줄 알았더니 완전 허당이었어요. 초창기 때, 컨테이너 현장에 설치해놓고 모두들 고생해가면서 연대의식은 좋았지만, 건설 현장에선 어디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그런 생활 못 견뎌서 떠나고 업무상 갑질 때문에 떠나기도 했지만 저는 어리고 관리자와 통역을 모두 담당했던 터라 모두들 잘해줬던 거 같아요.
저희 와이프는 나중에 본격적인 시공이 시작되면서 제가 면접보고 뽑아서 만났는데, 모두들 저희의 연애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요. 특히, 운전수가 많이 도와줬죠. 와이프 부모는 대학교수이고 히잡을 쓰진 않는데도 종교적인 신념이 강하고 집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죠. 저희들 결혼할 때, 오항 호텔에서 했는데 비용이 800만 원 들었어요. 소장님 이하,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잘 치렀죠.
근데, 과장님은 아랍어 잘한다고 제 처가 그러던데 어떻게 배우셨어요? 알제리 대학에서 아랍어 전공하면 좋을 것 같아요”
수용이 그렇게 말하고 푸근한 곰같이 웃었다. 알제리 여성과 살고 있어서인지 이슬람에 대한 직접 경험이 많아 대화를 주도했다.
“넌 프랑스에서 유학했어?”
“아녜요, 과장님. 저는 홍대 불문과 졸업하고 여행 삼아 파리 가봤습니다. 그때 민박집에서 만났던 40대 아줌마랑 같이 잤어요. 아줌마가 어찌나 꼬시던지 ㅎㅎ”
아직 서른도 안된 수용이 50대가 즐비한 상사들 앞에서 말하곤 추억이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