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답사
다음 날, 소장 포함 공구장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현장 답사를 떠났다. 지오테크에서 지질 조사 전문 박사를 현장에 투입한다는 날이었다. 토목공사 현장까지는 쉬지 않고 거대한 아인 자다(Ain Zada) 댐을 지나 댐 이름과 같은 조그만 마을이 있는 현장까지 세 시간이 꼬박 걸렸다.
김 도화의 인솔로 우리는 마을을 지나 포클레인과 몇 대의 차량으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아직 아무것도 설치되지 않은 현장에 들어섰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지대엔 무릎까지 올라오는 밀 밭과 함께 개 양귀비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
소장은 멀리 우리가 지나쳤던 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서 ‘이 자리에 임시 사무실을 설치하라’고 용 부장에게 지시하곤 현장에 오면 오줌을 싸야 한다면서 바지춤을 내려 광활한 대지 위에 오줌을 갈겼다. 구릉지대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차가운 4월의 바람이 황량한 대지를 휩쓸었다.
더운 나라라고 생각했던 알제리, 아인 아르낫 공항에서 멀지 않은 조그만 마을의 골짜기엔 놀랍게도 얼음이 녹아 개양귀비 꽃이 즐비한 평원에 비해 질퍽한 대지를 밟고 올라온 지오테크 현장 직원들과 간단하게 인사했다. 그들은 추위에 떨어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도 눈이 오는 아프리카라니 놀라운 세상 아닌가!
현장 지질조사를 책임지는 젊은 지질 전문가 아드난과는 몇 번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지오테크 연구소에서 기술 연구원에게 화를 냈던 이유로 그는 만나자마자 화를 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일과를 잘 알았기 때문에, 부장이 늦도록 회의를 마치지 못해 나도 짜증이 나 있었다며 사실은 부장에게 화를 낸 것이었다고 사과를 했다.
“너도 한국 사람들과 같이 일해 봐! 저녁이고 뭐고, 자정이 되어서도 보고서 작성하고 남은 업무 처리한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눈치 봐야 하니까! 아드난, 그래도 너처럼 존잘 생긴 놈을 만났는데 악수는 하자, 하비비(여자가 남자에게 '내 사랑'을 말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말할 때는 '하비바티') 응?”
그가 금방 개구쟁이처럼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됐다. 지질학 박사를 만나 언덕 반대편에 포크레인과 트럭이 작업 중인 발전소 자리 아래로 그들과 함께 현장 아래로 내려갔다. 황토색 지층들이 켜켜이 쌓인 곳에 도착한 박사는 파헤쳐진 땅을 보면서 갑자기 흥분해서 발걸음을 빨라졌다. 얼굴이 상기되고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아지며 흙을 만지더니 과도한 제스처로 땅에 대한 예찬을 시작했다.
“오오오! 알라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땅을 보십시오! 이 지층에 층층이 쌓여 있는 역사를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마치 춤추듯이 과한 그의 제스처와 눈빛, 쏟아내는 말들이 그가 정상인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공구장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그의 광기 어린 땅의 예찬을 들으며 지오테크의 현장 엔지니어 아드난을 바라보면서 ‘이게 뭐냐?’고 제스처로 물었다. 그가 어깨를 움츠리고 손바닥을 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오테크 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그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지오테크는 도대체 한국 업체를 뭘로 생각하는 걸까! 나도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고 공구장들에게 돌아갔다.
밀밭 사이, 밭두렁 길 위에 지천으로 핀 개양귀비 꽃의 장관은, 모네의 '아르장뜨이의 양귀비 꽃'을 연상케 했다.
알제리 지질 조사업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제리에 터를 잡고 있던 대우건설로부터 소개받은 세 업체 중에 고심 끝에 고른 업체라는 정보를 들었었다. 다른 업체들의 수준도 알만했지만 이런 업체에게 지질 조사를 맡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다. 아니, 원체 수준의 정도가 그래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올리다 만 건물 옥상에 솟아난 철골처럼, 좀처럼 공사를 시작하면 끝낼 줄 모르는 그들의 프로 의식의 표현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언제나 말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 알제리라고 한국인들은 입을 모았다.
처음 알제리에 도착하고서 임했던 프로젝트가 '알제리 동서고원고속도로 프로젝트'의 지질조사 업체였는데 500km 구간을 다니면서도 틀림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한국인들과 알제리인들의 조화를 보아왔고, 채취한 시료는 한국인 관리와 현지 지질 전문가와 함께 연구소로 보내 철저하게 관리하던 것에 비해, 지오테크는 너무도 상식 밖이었다.
일행은 오래 머물지 않고 현장을 떠나 알제로 복귀했다. 소장 이하, 공구장들이 서울 본사로 복귀해야 날이 왔고 나도 비자 만료 문제로 며칠 후 복귀할 예정이었다. 알제리에 처음으로 진출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글로벌 업체가 직원 파견을 하는데 1개월짜리 비자를 준 것을 아마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업무 방식을 잃어버리고 현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 동화되어, 회의를 통해 정보를 나누고 취합해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조직의 힘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의 골짜기는 양치기 목동들에게 천국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