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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Dec 16. 2017

마키아벨리를 읽으며
브라우니를 굽는 남자


"흰 쌀, 중간 밥. 흰 쌀 중간 밥."

한 여성의 목소리가 주방을 울린다.

"취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실험실을 터전 삼는 과학 꿈나무들이나

네트워킹 덕분에 사람이 신물 나는 경영학도들에 비해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한 삶을 뜻한다.


책과 노트북만 있다면

(그리고 책과 노트북을 살 돈을 벌 수 있다면)

집에서 밥을 하면서도, 아이를 보면서도,

그저 집을 지키면서도

공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책과 노트북을 가지고

집에서 밥을 한다.

취사를 시작해 주시는 여성분과

옆에 함께 있는 아내와 

백종원 씨와 함께. 




한 개그맨이 "소는 누가 키우느냐" 물었다.

소는 인문학도가 키워야지.


일억 천금을 포기한 인문학도가

소 마저 내팽개 친다면

내팽개쳐 지기 때문에.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읽더라도

나는 한 주먹의 브라우니를 구울 것이다. 

아니, 마키아벨리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군주는 누구보다 강한 외면을 가졌지만

가장 실리적인 내면을 가진 자였으니.




막상 소를 양육하는 인문학도의 삶은 

충만하고 따듯한 삶이다.

지혜가 내 손안에 있고

부엌이 내 주권 아래 있으니


그래서 멀리 타국으로 유학까지 온 인문학도는 오늘도

마키아벨리를 읽으며

브라우니를 굽는다.


이데아만 쫓는 철인왕이 아니기에.

나도 실용성 있는 존재이기에.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요리 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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