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신혼여행 직후 부랴부랴 마무리 한 논문을 제본해서 일반대학원 사무실에 제출했다.
지도교수님께도 한 부 전해드리고 집에 오니 비로소 석사 과정이 진짜 끝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뭔가 허무하기도 한 그런 느낌.
하늘도 이 허무함을 아셨던 걸까...
정확히 6개월 후,
난 또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
모든 논문이 그렇겠지만 정말 논문의 가장 힘든 부분은 논문 한 편이 나올만한 주제와 연구 질문을 찾는 것. 이제 한 학기 (그것도 쿼터제라 10주밖에 안됨) 다녔는데 뭘 새로 배우고 무슨 주제를 찾았겠나. 그래도 성적이 걸려 있고 여기저기서 압박이 들어오니 쥐어짜듯 억지로 주제를 하나 찾았다. 아니, 찾았다기보다는 강요당했다...! 한국에서 쓴 논문에서 아주 벗어나지 않는 주제지만 현재 수업을 듣고 있고 지도 교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한 주제로 한정하다 보니 별 초이스가 없었다. 주제를 정했다는 것도 "이걸 가지고 써보면 어떨까?" 정도의 아주 추상적인 수준이라 앞길이 막막하다.
내 다른 매거진 <시민 101>의 이름과 그 내용을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에 관심이 있다. 그중에서도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시민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들이 시민들의 "시민성"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관심이 있다. 정치학이기도 하고 사회학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면서 심리학이기도 한... 애매한 경계에 있는 주제다.
그래서 실제로 여러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이야기해보면 다들 하는 말이 다르다. 어떤 교수는 실증적인 연구 쪽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주는가 하면 어떤 교수는 규범적인 연구로 하면 될 것 같다고 하고. 어떤 교수는 비판이론과 해석학 쪽으로 가면 될 것 같다 하고 어떤 교수는 분석철학 쪽으로 가라고 하고. 저렇게 이야기해줘도 뭔 이야긴지도 잘 모르는데... 정말 헷갈린다.
그래서 오늘, 제일 쉽고 친절하게, 내가 뭘 쓰려고 하는지 잘 이해해 주는 교수와 만났을 때, 혹여나 기회를 놓칠까 지도교수로 지정해도 괜찮냐고 물어봐서 (섣불리/성급하게) 허락을 받아버렸다. 그는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로 쓰되 이런 이런 학자들의 글을 기준 삼아 하면 될 것 같다며 거대하고 난잡했던 나의 질문을 석사 논문 스케일로 딱 압축시켜주었다. 이런 사람은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돌진했다. 그렇게, 뭔가 큰 짐을 하나 덜어 낸 것 같아 마음이 편하기도 했지만 이제 내가 누군가를 만족시킬 만큼의 글을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써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기도 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오늘은 기분도 낼 겸 논문과 관련되어 읽어볼 만한 책들을 빌렸다.
읽을지는 미지수.
이렇게 앞으로 6~7개월간 쓰게 될 석사논문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리라!"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며 기분 좋게 일단 오늘은 주말 시작이니까 잠부터 보충하려고 한다.
참 좋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