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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Feb 12. 2018

08 [유학 일상] 시카고에 눈이 오면

눈이 오면 치킨이지

어제와 그제, 이틀 연속 눈이 왔다.


"하얀 눈이 우리 마음도 하얗게 씻어줄 것 같아요~"식의 눈이라기보다는 "폭설로 인해 중부 지방에 극심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외출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식의 눈이 왔다.


덕분에 나는 금요일에 잡아놓은 교수님과의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루고 하루 종일 라디에이터 앞에서 밥 먹고 책 보고 영화 보고 놀았다. 몇 시간에 한 번 씩 건물 관리자가 삽으로 눈을 퍼내는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굳이 창문 밖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밖에선 폭설이 내리는 중인데 나는 라디에이터 앞에 앉아 따듯하게 간식 먹고 책 보는 그 기분이 좋아서. 뭔가 보호받는 기분이랄까? 


근데 토요일 아침에 석사 프로그램 동기 형과 같이 머리도 자를 겸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한인 마트에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려면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눈 다 치우려면 꽤 오래 걸릴 텐데.... 그래서 바람도 쐴 겸, 미리 저녁에 치워놓기로 마음먹었다. 장갑을 끼고 길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패딩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근데...



생각보다 눈이 엄청 많이 왔네...그나마 우리 건물을 관리해주는 형아가 감사하게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은 만들어 주셨다. 눈도 옆으로 다 치우고 염화칼륨(?)까지 뿌려서 깔끔하게. 근데 아쉽게도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질퍽임의 연속이었다.


사진으로는 별로 심해보이지 않아서 뭔가 억울하네


아무래도 시카고는 매년 폭설이 지겹도록 오는 동네이니 만큼 제설 작업 하나는 정말 확실하다. 그런데 제설 작업의 문제는 길 한가운데 쌓인 눈을 다 인도 쪽으로 밀어버리는 식의 작업을 한다는 것. 그래서 제설차가 지나가고 나면 나 같은 길거리 주차인들은 두 배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얼른 돈 벌어서 차고 있는 집에 갈 수 있길 희망해본다.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인도를 뚫고 나와보니 차는 이런 상황.



삽이라도 미리 준비를 할 걸 그랬다. 가진 제설 도구라고는 유리창에 얼음 깨는데 쓰는 조그마한 브러시 하나. 이걸로 차 위에 50센티는 쌓인 것 같은 눈도 다 치우고 차 움직일 수 있게 근처에 눈 까지 다 퍼내야 했다. 나약한 나의 팔로는 감당하기 힘든 작업...



중간중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들고 뭔가 답이 없네?라는 강력한 느낌도 받았지만 꾸역꾸역 치웠다. 누가 치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ㅠㅠ 옆 길은 아예 다 눈으로 막혀 있어서 건너가서 반대쪽 눈 치우려고 거기 길 까지 다 만들고... 암튼 허약한 몸을 이끌고 아주 큰 고생을 했다. 


장장 40분에 걸쳐 눈을 치우고 다음날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기념 삼아 사진을 남겨 보았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밤 새 눈이 또 왔다 ^^

이번엔 주말 아침이라 인도도 안 치워놓은 건 덤 ^^







여담.


차 다니는 길은 귀신같이 잘 치워 놔서 아침에 한 20분 걸려서 차 한 번 더 치우고 무사히 마트도 미용실도 잘 다녀왔다. 다녀오는 길에 Crisp라는 한국식 치킨집도 다녀왔다. 교촌 허니콤보 비슷한 맛인데 닭 크기가 한 5배는 되는 듯. 정말 맛있었는데 과하게 양이 많아서 둘이서 한 마리 다 못 먹고 남겼다. 그래도 치킨 덕분에 한 시간 넘게 눈 치운 게 새삼 뿌듯했다. 이래서 치킨이 소울푸드인가? (소울푸드는 남부 흑인 음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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