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오전 10시 50분.
석사 과정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특별함은 없었다.
종이 울리지도, 박수가 울려 퍼지지도, 학사모가 날아다니지도 않았다.
여전히 기말 페이퍼가 남아있고 여름 동안 작성해야 하는 졸업논문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 시카고 대학에서 정규 수업을 듣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마음은 들더라.
그동안 이 곳에서 9개월 동안 9개의 수업을 들었다.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의 학문적 고향인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사상을 공부한다는 큰 기대를 품고 왔지만 지난 9개월은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한 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A가 나오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될 줄 몰랐고 내가 영어를 이렇게 못하는 줄도 몰랐다. 이제 조금은 여기 기준에 맞춰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되니 이제 졸업이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섭섭한 9개월이 아니었을까. 내 부족한 능력에 섭섭하고 내가 받은 성적에 섭섭하고 벌써 끝났다는 것에 섭섭하고.
그래도 많이 배웠다. 막연히 멀리했던 학자들의 글을 읽었고 고대정치사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좁은 틀에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학계의 구조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해 배웠다. 마지막 학기에 들은 글쓰기 수업은 내가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시카고에 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실보다 득이 훨씬 많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게 아쉽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자원이 너무 많아 도저히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 다 경험해 볼 수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 또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또 할 것 같다 (그땐 더 잘해야지).
서로 여름을 잘 보내라는 덕담과 함께 교실을 빠져나오며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서로 여름의 계획,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시카고에 남아서 논문을 쓴다고 한 반면 누군가는 영국으로 박사학위를 따러, 누구는 카타르에 있는 집으로 간다고 했다. 세계 곳곳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짧은 1년의 시카고 생활을 뒤로한 채 각자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된 곳으로 다시 떠난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될지, 나는 무엇을 하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지만, 이 거대한 인구 이동의 시기에 나도 어딘가로 떠나게 되겠지.
졸업논문까지 끝이 나면
그제야 지난 1년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