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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띠깐 박물관에서 싼 삐에뜨로 광장까지

- 7박 8일 서유럽여행 (03/25)

여행은 준비가 참 맛인가? 아니면 정리하는 것이 참 맛인가?


여행은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이 참 맛이다. 그래야 여행 맛이 배(倍)가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바띠깐 박물관에서 싼 삐에트로광장까지 여행을 정리하는 의미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이전에 이어서 '벨베데레의 뜰'부터 시작한다. 바띠깐 박물관의 벨베데레의 뜰에 보이는 감동 첫 번째가 라오콘(Laocone) 조각상이다. 라오콘은 아폴로(Apolo)를 섬기는 트로이의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군의 목마를 트로이 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살해당했다는 신화가 있다.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당해 죽으려고 하는 라오콘과 두 아들의 마지막 고통과 격노를 표현하였다. 사진으로 보고 감상 각자에 맡겨보자. 그런데 '오른팔이 펼쳐진 라오콘'과 '오른팔이 꺾인 라오콘' 두 조각상을 함께 비교할 수 있다. 그 차이는 뭘까? 이것이 오늘의 숙제! 대부분의 관람객은 이 2.4m 높이의 조각상 앞에서 높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사진설명 : 라오콘 상. 오른쪽 아래 사진에서 라오콘의 오른팔 모양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의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차이점. 여기에 미켈란젤로가 등장하면 얘기는 간단히 풀린다.]


그 다음 길목에서는 사지 없는 토르소(Torso) 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토르소는 기원전 1세기 그리스의 아폴로니우스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발굴자는 미켈란젤로. 그는 대목욕탕 터에서 발굴하였는데, 인체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술학도들은 360도를 거푸 회전하면서 조각품에 심취하고......

[사진설명 : 아폴로니우스의 토르소. 바띠깐 박물관 소장]


그 다음은 어마어마한 대리석 욕조를 보게 되었다. 원형전시관(Sala Rotonda)에 들어서면 로마 황제의 두상과 그리스 로마에 나오는 신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전시된 목욕장은 전시관 가운데 둥그런 접시 모양의 대리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는 네로의 궁전에 있는 목욕장인 오뜨리꼴리 목욕장 유적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관광객들의 키와 비교하면 가히 그 크기가 짐작된다. 바닥은 모두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는데, 색 있는 대리석을 그림 그리듯 깔아놓아 가히 그 정성과 예술적 감각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이 모자이크는 닳아도 닳아도 그림과 색상이 변함없다고 하니 수천 년을 견딘 모양이다.

[사진설명 : 맨 위 왼쪽 위의 사진은 바닥을 색 있는 대리석으로 모자이크로 만들어 장식한 것의 일부분. 맨 아래 왼쪽 두상은 부리아스가 조각한 [제우스의 두상]


씨쓰티나 예배당으로 연결되는 복도에 카펫이 걸려 있는 회랑이 있다. 아주 낡은 카펫들은 유화가 벽면을 장식하기 이전 시대에 높고 넓은 벽면을 장식하는 귀한 장식품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 '아찌라 회랑'에 전시된 몇 개의 작품을 사진으로 기억을 되살려 본다. 이 카펫들은 이름 그대로 색이 다른 양털을 촘촘히 짜서 만든 것으로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높고, 역사적으로도 귀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바띠깐 박물관의 '아찌라 회랑'에 걸린 카펫들. 오른쪽 위의 카펫은 예수가 부활하는 장면을 카펫으로 표현한 것이고, 왼쪽 아래는 이탈리아의 고대 지도가 카펫을 통해서 표현된 것이다. ]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듯 긴장이 풀려가는 박물관의 수많은 예술품에 취해서 더 이상의 감흥이 새롭게 살아나지 않을 때, 새로운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이 나고, 좁은 공간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선 장면이 연출되었다. 바로 씨스띠나 예배당(Capella Sistina)이다. 크고 훤칠한 이탈리아 직원들이 사진기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와, 어찌 되었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종교적 감동이 교차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이 가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공황상태로 바뀌었다. 어둠 침침한 씨스띠나 예배당에 감탄의 소리가 메아리쳐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었다.


씨스띠나 예배당은 미켈란젤로라는 천재 예술가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씨스띠나 예배당은 길이 40m 폭 13m 그리고 높이가 20m에 달하는 직사각형 구조. 교황의 선출과 중요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상황에서는 의자 등 모든 집기가 치워져 있고, 또 당연히 치워져야만 할 정도의 관람속도가 갑자기 빨간 신호등을 보인 듯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벽화와 천장화는 그야말로 압권, 아쉬운 것은 20m 높이의 예배당 천정화를 어두운 자연조명에 의지하다 보니, 눈이 휘둥그레 할 뿐 세세하게 그 감동을 곱씹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어두침침한 예배당 안은 제재하는 직원들의 고함에 아랑곳없이 간간이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일본 NHK의 후원으로 9년간 복원 과정을 거쳤다고 하는데, 어두운 천장화를 실감할 수 없어서 겨우 책자를 통해서야 벽화와 천장화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다고들 했고, 성능 좋은 나의 카메라조차 제 색감의 벽화를 재현하지 못했다. 물론 씨스띠나 예배당의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은 일본의 NHK가 가지고 있다나? 모두 33폭의 그림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예술혼이 그대로 담겨 있고, 종교를 막론하고, 가장 오랜 시간 머물게 하는 명소와 명작임에 틀림이 없었다.

[사진설명 : 씨스띠나 예배당의 내부 벽화면 천장화. 맨 아래의 사진은 성경의 창세기 중에서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이다. ]


다음을 찾은 곳은 싼 삐에뜨로 대성당. 삐에뜨로 하니까 무슨 발음 표현이 된소리를 강조하는가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나, 이탈리아 사람들의 발음을 충실히 반영해 보고자 하는 의도일 뿐 다른 흑심은 없다. 아무튼, 삐에뜨로는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피터(Peter)이다. 초대 교황이기도 한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언덕에 1500년 대초에 건축이 되어 약 120년에 걸쳐 건축이 된 곳이라고 한다.


초대 교황을 기린다는 의미로 이렇게 초호화 성당을 짓다니.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성당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았고, 그것이 종교개혁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수많은 건축자재의 출처가 로마시대 유적이었다는 비판도 있었으니 가톨릭의 수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사진설명 : ① 포르따 싼따(Porta Santa) 성스러운 문이다. 25년마다 돌아오는 성년(聖年)에만 열린다고 하는데 오는 2025년이 성년이고, 그때가 되어야 열린단다. 중앙문 우측에 있다. ② 싼 삐에뜨로 대성당에 들어서서 보이는 웅장함이다. 길이만 187m에 달한다. ③중앙문을 들어서 우측에 있는 삐에따(Pieta)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주 젊게 조각되어 있다. 대리석을 너무도 섬세한 조각한 것에 대해 모두 감탄한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장소 ④ 정신없는 어떤 이가 망치로 성모 마리아의 코를 부순 적이 있었단다. 그래서 단단히 유리 울타리로 관람객과의 벽을 만들어 놓았다. ⑤ 싼 삐에뜨로 동상. 이곳에 관람객들은 줄을 길게 늘어선다. ⑥ 싼  삐에뜨로의 발을 손으로 문지르면 행운이 온다는 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덕분에 발등은 많이 닳아 있었다. 발등이 다 닳기 전에 한 번 가보시길...]


대성당 맨 안쪽에 멋진 청동기둥이 나타난다. 이른바 베르니니의 청동 기둥.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 기둥을 만든 베르니니는 재료를 빤떼온에서 떼어 온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우르바누스 8세를 위한 기념비가 나타난다. 이 또한 베르니니가 만든 것으로 빛이 통과하는 것은 대리석을 얇게 갈아붙인 것으로 유리에 채색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녕 성령이 하늘에서 빛과 함께 내려오는가?

[사진설명 : 위의 사진은 베르니니의 청동 기둥, 아래 사진은 베르니니의 우르바누스 8세를 위한 기념비 역시 베르니니의 작품]


싼 삐에뜨로 성당을 마지막으로 싼 삐에뜨로 광장으로 나왔다. 하늘은 아직 잔뜩 흐렸다. 오벨리스크가 우뚝 선 광장에는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었고, 더욱 성령 충만에 몰입된 가톨릭 신자들은 성물(聲物) 가게로 총총히 발길을 빨리했다.

[사진설명 : ① 꾸버릴까. 싼 삐에뜨로 대성당의 맨 꼭대기. 이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란다. 이곳에 오르려면 537개의 계단을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는데 로마가 한눈에 보인단다. ② 스위스 근위병. 왜 스위스인들만 근위병이 될 수 있는지도 여행담 중에 하나이다. ③ 교황의 집무실. 오른 쪽에서 두 번째 방. 불이 꺼졌다. ④ 우측 기둥이 오벨리스크다. 따로 찍은 사진이 없어 필자와 동행인이 있는 사진으로 처리]


나는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꾸리는 짐이 카메라다.


혹자는 진정한 여행을 카메라를 놓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대화는 마주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과 같다. 대화를 위해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전화 없이 살 수 없는 현대인을 생각해보라. 내 모자란 기억력을 도울 수 있는 카메라가 있어서 더욱 생생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남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없는 여행은 전화 없이 세상과 소통해야 인간답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바띠깐에서 싼 삐에뜨로 광장까지 사진기가 없었다면 어찌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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