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캠프 (Boot Camp) (2)

Integrity

by 이진규

-탁.


불이 켜지자마자 교관들의 고함이 공간을 찢었다.


“기상. 5분 안에 침상 정리, 세면, 복장 점검. 움직여!”


분명 방금 눈을 감았는데, 이미 아침이었다. 아니, 새벽이었다.


60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시에 몸을 일으키고 우왕좌왕 움직이는 통에 배 (생활관)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비몽사몽 비틀거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는 침대에서 굼뜨게 일어나지 못했고, 누군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야, 일어나.”


“빨리 움직여.”


몇몇은 나서서 주변 사람들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어제 배운 대로 이불을 접었다. 그다음은 간밤에 흐트러진 침대 시트를 팽팽히 당겼다. 특히 모서리 여분을 정확히 45도로 접어 넣는 것이 중요했다. 훈련병들은 모든 지급품을 정확히 정해진 방식대로 정해진 곳에 보관해야 한다.



‘다음이 뭐였지… 침대 다음에 세면… 그리고…?’


“1분 남았다. 빨리 움직여!”


벌써? 화장실 쪽을 보니 이미 긴 줄이 생겨 있었다. 저 줄에 들어가면 절대 내 차례까지 안 온다. 둘러보니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유니폼부터.

수납장에서 유니폼을 꺼내 바지와 셔츠를 걸치고, 부츠에 발을 넣었다.


“5… 4… 3… 2… 1! 스탑! 정렬.”


교관이 소리치자 모두가 우르르 달려와 정렬했다.

아직 침대 정리를 끝내지 못한 아이, 유니폼을 반쯤 입은 아이, 면도하다 베여 피를 뚝뚝 흘리며 줄에 서는 아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아이들까지—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다.


“이 자식은 세수를 5분을 했어. 뒤에 줄 서 있는데. 이기적인 XX.”


그 와중에 싸우는 녀석들도 있었다. 교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차렷! 차렷 자세에서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나는 눈알만 움직여서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두세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엉망이었다. 침대도, 복장도 완전하지 않았다. 묘하게 안심이 됐다.


“완료한 사람 손 들어봐.”


세 명이 손을 들었다. 교관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면도는 안 했고. 양치는 했나?”


침묵.

교관은 아이를 지나 침대를 힐끗 보았다.


“이불 접는 방법도 틀렸고.”


다른 두 명도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 짧은 시간에 면도에 세수, 환복, 이불정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Integrity는 해군의 핵심 가치다. 삼대 가치관을 지탱하는 뿌리지. 그런데 너희는 자질이 의심스럽다. 멍청한 너희를 위해 쉽게 설명해 주지. Integrity란 ‘아무도 안 보고, 아무도 안 알아줘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교관은 여유로운 자세로 쓰윽 돌아 모두를 바라본 뒤, 다시 세명을 바라보곤 말을 이어갔다.


“너희 셋은 그 integrity가 없다. 나머지는 5분 더 준다. 움직여. 너희 셋, 팔 굽혀 펴기 준비. 시작.”



나는 부츠 끈을 마저 묶고 세면도구를 움켜쥔 채 화장실 줄에 합류했다.


앞에 일곱 명. 다섯. 넷. 셋. 둘. 그때였다.


“5초… 4… 3… 2… 1! 타임. 정렬. 차렷!”


이번엔 세수와 면도까지 끝낸 아이들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은 유니폼조차 입지 못한 상태였다.


“전원 팔 굽혀 펴기 자세!”


팔 굽혀 펴기 열 개도 못하는 나는 몇 번 버티다 그대로 무너졌다 다시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재도전과 기합을 번갈아가며 받기 시작했다.


면도를 하고, 기합을 받고, 아직 침대를 못 끝낸 아이에게 몰려가 도와주다가 다시 기합을 받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반복 끝에, 교관이 시계를 힐끗 보더니 소리쳤다.


“키 순으로 한 줄. 아침 식사 시간이다.”



이동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줄이 흐트러지고 구령이 작을 때마다 우리는 멈춰서 기합을 받았다. 추운 날씨 탓에 몸에서 김이 났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식당에서 아침 식사 후, 우리 디비전은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실내 수영장이었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무엇보다 5미터 높이의 다이빙대가 눈에 들어왔다.


“… 이상 안전사항이다. 수영 능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붓캠프를 졸업할 수 없다. 영법은 상관없다. 수영할 줄 아는 인원은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남는다.”


어릴 적 여름방학 두 달 동안 수영을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꾸준히 하지 않은 탓에 자신 있는 건 개헤엄뿐이었지만, 교관이 다시 한번 개헤엄을 포함해서 영법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보자.’


한 줄로 늘어선 줄을 따라가자 금방 다이빙대 코앞까지 왔다.


“여기서 뛰어내려 저쪽 끝까지 50야드를 헤엄쳐 간다.”


어느새 내 차례였다. 다이빙대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그때 문득, 안경이 마음에 걸렸다.


“Petty Officer (부사관님), 질문 있습니다. Petty Officer.”


오케이. 일단 배운 대로 ‘sandwich sentence’를 구사했다.


“뭔데?”


“제가 시력이 안 좋은데, 안경 쓰고 다이빙해도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벗어서 주머니에 넣어.”


“Aye-aye, Petty Officer!”


역시 배운 대로 대답하고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 순간—


-쓱.


교관의 손이 내 등을 밀었다. 나는 그대로 물속으로 떨어졌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물 위로 올라오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내 시력은 안경 없이는 코앞도 분간이 안 되는 정도로 좋지 않았다. 앞이 안보이자 방향 감각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수영을 해야 할지 도통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어렴풋이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저쪽이다.’


나는 개헤엄으로 몸을 틀고 전진을 했다.

그 순간—


-삐익
-삐익
-삐삐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터졌다. 두 명이 다가왔고, 그중 한 명이 뒤에서 내 목을 잡아 끌어냈다.



“와, 이 녀석, 용기는 인정한다. 저쪽으로 가.”


숨을 돌리고 상황 판단에 들어갔다.
내가 향하던 방향은 구조요원이 있는 쪽이었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허우적거리며 구조 요청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구조를 당한 것이다.


안경을 다시 쓰고 고개를 쑥인 채 교관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기초 수영 교육이 한창이었다. 아까 남아 있던, 수영을 못하는 인원들이 모여 있던 것이다.


“집중해. 힘을 빼고 물에 누워. 몸은 알아서 뜬다. 그러면 숨을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쉬어. 손은 움직이지 말고 발만 움직여. 자, 이렇게.”


이게 뭐야. 헛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수영 강사님이 보셨다면 한숨을 쉬셨을 장면이었다.


“생각보다 안 어려워. 힘을 빼는 게 중요해. 내 이름은 데이브야.”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툭 치며 말했다.

대답하려는 순간—


“누가 말해도 된다고 했나?”


교관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설명하고 싶었다. 난 수영할 줄 안다고.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어서 말없이 ‘데이브’를 바라봤다. 데이브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환장하겠네.


그렇게 한 시간을 우리는 등을 대고 누운 채 발만 움직이며 뒤로 전진하는 약식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다시 다이빙대로 향했다. 멀리서 이미 시험을 마친 같은 디비전 아이들이 보였다.


“잘 들어라. 오늘 기회는 한 번이다. 실패한 인원들은 내일부터 새벽 5시에 다시 온다. 매일 아침.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시험’이라는 단어에, 다시 이가 부딪혔다.


‘시험이 있었어? 50야드…? 그게 이렇게 길었나?’


이번에도 (교관이 밀어서인지) 줄은 금방 줄었고, 다시 내 차례였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요. 제가 시력이 많이 안 좋습니다.”


“그래? 그래서?”


“방향만 알려주시면…”


“야, 구조팀! 얘 장님 이래! 물에서 방향 좀 잡아줘!”


물에 떠있는 구조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경을 벗자 이번에도 역시 교관이 밀어서 떨어뜨렸다.


-풍덩


“이쪽이다. 쭉 가면 돼.”


물 위로 나오자 구조요원이 키득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방향을 알려줬다.


좋아, 이제 끝까지 가면 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도 1분쯤 전진하자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직 10%도 못 왔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대로면 안 된다. 또 구조당하겠어…’


막막해하던 그때 데이브의 말이 떠올랐다.


‘힘을 빼는 게 중요해.’


어둠 속에 빛 같았다. 나는 몸을 뒤집어 등을 대고 누웠다. 힘을 빼고, 다리만 움직였다.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한참을 가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도착지점이었다. 기뻐서 머리가 아픈 것도 잊었다.

물 밖으로 나오자 데이브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했어! 머리 괜찮아?”


우리는 감격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리고 교관은 그 모습을 말없이,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