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니
붓 캠프(boot camp)가 있는 일리노이를 향하는 일정은 험난했다.
우리의 여정은 먼저 MEPS가 있는 버지니아 포트 리(Fort Lee)에 도착해,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에 두 명씩 배정되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 결국 꼬박 밤을 새웠다.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잠 좀 잤어?”
“아니, 전혀. 가슴이 뛰고 긴장돼서 하나도 못 잤어. 넌?”
“나도.”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이동했고,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자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여덟 명 남짓이던 우리 그룹은 공항에서 유니폼을 입은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집결지로 이동했다.
“전화기를 소지한 인원은 저쪽 테이블에 반납하고, 이쪽 줄에 합류합니다.”
공항 내 집결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줄을 맞춰 바닥에 앉아 있는 수많은 입소자들이었다.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들을 들어보니 텍사스, 워싱턴, 플로리다, 하와이, 뉴욕 등 출신 지역도 제각각이었다. 안내를 맡은 조교들의 태도는 친절했던 MEPS의 스태프에 비해 훨씬 딱딱해져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지시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피를 말리는 기다림이 무려 세 시간. 마침내 한 조교가 다가와 영혼 없는 말투로 지시했다.
“자, 이쪽 줄부터 저쪽 줄까지 한 줄로 서서 나를 따라옵니다.”
4월의 시카고 날씨가 추워서이기도 했겠지만, 위아래 이가 자꾸 딱딱 부딪혔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비슷하게 긴장한 표정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긴장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안내를 따라 공항 건물을 나오자마자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 공항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모두가 말없이 앉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한 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시작이네…”
오헤어 공항에서 해군 붓 캠프가 있는 그레이트 레이크스(Great Lakes)를 향해 버스가 달리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군대라니.
한국처럼 누구나 가야 하는 ‘의무복무’가 아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라온 미국의 청년들이 ‘자원’해서 들어오는 곳이 미군이다. 그런 자원병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나 가야 해서 누구나 모이는 한국에서도 가혹행위와 괴롭힘이 문제라는데, 내 성격에 미국 군대라니.
영어에 자신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마지막으로 운동을 한 게 고등학교 체육 시간이었을 정도다. 팔 굽혀 펴기 열 개도 버거웠고, 3분만 달려도 헥헥거리며 주저앉던 체력으로 내가 군대라니.
“내려! 건물로 들어가서 정렬! 빨리빨리 움직여! 걷지 말고 뛰어! 두 배속으로 움직여!”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유니폼과 움직임이 칼같이 정돈된 험상궂은 교관들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욕설이 절반이었다. 빨간색 로프를 어깨에 두른 Recruit Division Commander, RDC—신병 교육 조교들이었다.
“이 라인에 맞춰 정렬! 차렷 자세로 선다!”
바닥에는 의도한 것인지 바닥 디자인의 일부인지 모를 라인이 그어져 있었고,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에 줄을 맞춰 섰다. 몇몇은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아마 내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제 훈련병이다. 입대를 결정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분명 잘한 선택이다. 하지만 입대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해서 군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앞으로 8주 동안 너희는 Sailor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이 중 몇 명은 낙오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스스로 포기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고, 시험에서 탈락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후회되거나 싫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타고 온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가도 좋다.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연한 말들이었지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의무복무제인 한국과 달리 자원입대 체제인 미군 입장에서는 훈련에서 모두를 통과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문제가 있는 훈련병을 하루라도 빨리 걸러내는 것이 군에 이득인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어…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끝난다고…”
며칠 전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그래, 한국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버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내 능력을 증명해야 졸업할 수 있다.’
교관의 말이 끝나자 우리는 안내에 따라 전화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초. 잘 도착했다는 말만 하고 끊으라는 지시였다. 이어서 다음 방으로 이동하자 ‘NAVY’라고 적힌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박스를 지급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입고 온 옷과 소지품을 모두 박스에 넣는다. 이 박스는 집으로 배송될 것이다.”
각종 지급품과 유니폼을 받은 뒤, 다음 코스는 이발소였다. 줄을 서서 한 시간 넘게 대기하던 중, 인상이 짓궂어 보이는 교관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옷도 주고 밥도 주고 머리도 잘라주니까 좋지? 그런데 당연하지만 너희가 받은 유니폼과 지급품은 공짜가 아니다. 전부 월급에서 차감된다. 이발도 마찬가지다. 7불이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이 붓캠프 이발소가 내게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그때 들었던 생각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와… 이분들은 5초에 7불을 버시네.’
이발은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자리에 앉으면 진공청소기가 연결된 클리퍼로 머리를 몇 번 밀고 끝이다. 이발을 마치면 모두가 스님 수준의 삭발이 된다. 이 과정을 마치자 우리는 모두 같은 모습이 되었다. 차림새도 머리스타일도 전부 같아졌다.
이후 메디컬 수속과 예방주사를 한 번에 일곱 대쯤 맞고, ID 카드 사진을 찍고 나니 드디어 첫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그렇다. 붓 캠프의 첫 훈련은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던 것이다. 나는 줄을 서 있다가 졸음에 못 이겨 서서 꿈까지 꾸며 졸았다.
아침 식사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동시에 앉고, 동시에 일어나며, 허락된 음식과 음료만 섭취할 수 있었고 식사 중 대화는 금지였다.
식사 후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각종 체크인을 진행하다가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하고, 또다시 지시를 따라 이동하다 보니 오후가 되어 ‘배(ship)’라 불리는 생활관으로 안내되었다.
‘배’는 커다란 직사각형 공간이었다. 네 면에는 이층 침대가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약 60명이 이곳에서 잠을 자고 훈련을 받는다. 입구 쪽에는 교관들의 사무실이 있었고, 한쪽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문이 하나도 없었다. 큰일을 볼 때조차 프라이버시가 없었다.
교관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모든 지급품을 60명이 동일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침대 시트 역시 정해진 방법대로 설치한 뒤 저녁 식사를 위해 정렬했다. 베이스 안에서 생활관과 식당, 훈련 시설 간 이동은 모두 열을 맞춰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적과 기합을 받는 것은 당연히 훈련의 일부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배로 돌아오자 교관이 소리쳤다.
“샤워 시간이다. 내 기준 오른쪽에 있는 인원 전원! 7분 안에 샤워하고 나온다! 움직여!”
서로 눈치 보는 데 10초, 샤워 물품 챙기는 데 30초, 줄에 합류하며 또 10초, 수건을 두고 온 걸 깨닫고 다시 돌아가 10초…
“$%&^@들아, 여기가 호텔이야? 샤워, 면도, 양치까지 다 끝내고 나오지 못하면 실패다! 빨리 움직여!”
우리는 정신없이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뛰어들었다. 샤워장이라고는 중앙에서 사방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기둥이 고작 두 개 있는 방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몸에 최대한 물을 많이 묻히고 서둘러 샤워장을 나왔는데 이때 이미 5분은 훌쩍 넘었다. 면도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7분 끝. 정렬.”
샤워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누 거품도 못 씻어낸 아이도 있었고, 아예 샤워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아이도 있었다. 서둘러 면도하다 얼굴을 크게 베어 피를 흘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단체 기합을 받고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했다.
“취침.”
마침내 교관은 불을 끄고, 완벽한 동작으로 ‘뒤로 돌아’를 선보인뒤, 배를 나갔다.
나는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들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붓 캠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