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소

수영은 못하지만 해군입니다.

by 이진규

“야, 행운을 빈다.”


“?”


“공군(Air Force)? Chair Force? 모병관 아마 자리에 없을걸?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우리들도 1년에 한두 번 얼굴 볼까 말 까야. 그리고 운 좋게 만나서 계약해도 1년 넘게 대기해야 입대할 수 있어. 그러지 말고 우리 해병대는 어때? 다음 주에 들어갈 수 있는데.”


“…”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매번 다른 요일, 다른 시간에 갔지만 공군 모병관은 늘 자리에 없었다.


공군은 지원자가 충분해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예 모병관을 만나기조차 어려울 줄은 몰랐다.


건물에서 나와서 입구쪽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 멍하니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막상 모병소까지 오니 마음이 동요했던 참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적응…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 입대가 최선일까?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이번엔 불안감이 밀려왔다.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루하루가 아까운데, 군대 말고는 다른 계획도 없었다.

막막함에 한숨만 나왔다.




- 똑똑똑


누군가 차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창문을 내렸다.


“진(Jin)? 진 맞지? 어떻게 지냈어?”


순간 놀랐다. 누구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예전에 취업박람회에서 봤잖아. DC에 있는 가게. 맞지? 잘 왔어.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그의 이름은 라오(Lao)였다.

필리핀계 미국인, 해군에서의 계급은 Petty Officer 1st Class라고 했다.


“지난번에도 내 소개한 것 같은데… 너 기억 못 하지? 그때 완전 관심 없어 보였는데. 하하. 자, 들어가자!”


끌려가듯 모병사무소 안으로 들어서자 벽 곳곳에 붙어있는 항공모함, 구축함, 잠수함, 전투기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내 자리야. 여기 앉아. 음료수 좀 줄까? 소다랑 물이랑 있어. 뭐가좋아? 아니, 둘 다 마셔.”


라오는 음료를 내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아, 내 이름 기억해서 놀랐어. 원래 사람들 이름 다 기억해?”


“하하, 나 사람들 잘 기억 못 해. 그리고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구.


그런데 믿기 힘들겠지만, 몇 달 전에 취업박람회에서 네가 우리 부스 쪽으로 다가올 때 뭔가 느낌이 있었어. 너는 전화번호도 가짜로 적고 군대에 관심 없어 보였지만… 또, 이상하게도 이후에도 계속 마음이 갔어. 네가 올 것 같았어.”


가만히 듣고있던 옆 자리 모병관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야, 이 세일즈맨아. 너 완전 피라미드 영업 같았어. 얘 말 믿지 마. 모병관 말 다 거짓말이야.”


“너도 모병관이잖아.”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군인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때 번호 틀리게 줘서 미안해. 나 정말 군대 들어갈 생각이 없었어. 사실 지금도 모르겠어… 그런데 이것밖에 길이 없는 것 같아.”


가벼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다른 모병관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


나는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라오는 한참을 진지하게 들은 뒤 담담히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인 업하라고 설득하고 싶은데… 네 마음 이해해.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 내가 어떤 질문이든 대답해 줄게.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 이야기 들려줘서 고맙다.”


30분 정도 수많은 질문을 했다.

공군에 지원하려고 왔다는 것도 털어놓았고,

해군이 더 힘들지 않은지,

무엇보다 수영을 못하는데 괜찮은지 물었다.


“하하, 수영 못하는 해군 많아. 걱정 마.”


라오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앨범을 꺼내 사진들을 보여줬다. 항해를 나가면 6~10개월씩 출장을 가기도 한다고 했다.


해군은 넓은 바다를 누비며 여러 나라를 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 부산 사진, 일본 후지산 기념품을 보여주면서도

힘든 점—당직근무, 선상훈련, 부족한 잠, 가족과의 시간—도 솔직하게 얘기했다. 자기는 아이가 넷인데 넷 중 두 명은 태어날 때도 못 봤다고 했다.


“연락 기다릴게. 언제든 마음이 정해지면 연락 줘.

질문 생겨도 연락하고.”


모병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모처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좋은 모병관을 만난 것도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 그냥 빨리 입대하겠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라오였다.


“진,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한데… 생각해 보니까 이틀 후에 ASVAB 테스트가 있어. 너도 한번 재미 삼아 봐 볼래? 물론 이거 봤다고 바로 입대해야 하는 건 아니고,

점수 보고 공부해서 다시 볼 수도 있어. 입대 결정은 아직 안 해도 되니까 부담 없이.”


ASVAB은 군 입대 희망자가 치르는 시험으로,

기초 학업 능력과 직업 적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렇게 나는 이틀만에 준비도 없이 시험을 봤다. 다행히 시험 난이도는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며칠 뒤 또 전화가 왔다.


“진, 지난번 시험 결과 나쁘지 않더라. 축하해. 점수가 안되서 입대를 못하고 있는 후보생들도 많거든.


이번에 전화한 건… 내가 다음 주에 MEPS 가는데 너도 같이 갈래? 부담갖지말고. 이번에 세 명의 입대 후보생들과 함께 가는데 너도 시간되면 같이가서 어울리면서 궁금한 것들 자연스럽게 물어봐도 돼.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아.”


MEPS(Military Entrance Processing Station)는

입대 희망자가 신체검사, 서류작성, 직업 선택, 계약, 입대 날짜 확정, 선서까지 하는 곳이다. 모든 브랜치가 같은 곳에서 같은 절차를 거친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모병관에게 하기 어려웠던 질문들이 있었고, 라오 말대로 진짜 입대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것 같았다.


차에서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MEPS에 금방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나는 하루종일 신체검사를 받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러 다른 방으로 갔고 나는 안내대로 대기실에서 모병관들과 앉아있었다.


라오가 다가와 말했다.


“진, 어떻게 생각해? 이런 상황 만들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 하지만 언젠가는 선택해야해. 어때? 생각해봐. 여기서 바로 이어갈지, 아니면 미룰지. 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할게.“


나는 멍하게 앉아 천장을 바라보곤 상황을 정리했다. 답을 내리기 힘들었다. 머리가 아팠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것같았다.


그대로 한시간쯤 지나고 라오도 자리를 비우고 시간은 늦어져가던 무렵, 옆에 앉아 있던 육군 모병관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만나서 반갑다. 몇 살이야?“


“…21살.”


거짓말이었다. 나이를 세살이나 깎아서 말했다. 육군 모병관이 하는 잡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내 나이에 떳떳하지 못할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창피했다. 내가 싫었다.


그래, 더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아무것도 안하고 집안을 핑계로 피해자인척 하는건 여기까지만 하자.


“… I’m in.“


이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직업 선택.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최소기간만 채우고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라오가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며 SK(Store Keeper)를 추천했다. ‘배에서 마트 운영하는 일’ 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PX병 같아 보였다. 오, 그거면 무조건 해야지— 물론 나중에야 알게 됐다. 라오가 말한 건 다른 직업이었고, 내가 선택한 SK는 보급·물자·장비 주문·창고 운영·재무기록을 총괄하는 업무로 PX병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선서를 마치고 ‘5개월 뒤’ 라는 입대 날짜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자려고 누워서 하루를 되짚어보니 참 긴 하루였다. 설렘과 걱정이 몰려왔다. 군대라니…


하지만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절박함에 집중했다. 언젠가 내 나이를 남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2009년 4월 8일, 나는 가방 하나를 메고 집을 떠나 모병관들의 환호를 받으며 부트캠프가 있는 일리노아에 Great Lakes를 향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