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umane
“Lee, 5번째 General Order(보초 일반 명령). 말해봐.”
Marlinspike 사건 이후, 나는 RDC(Recruit Division Commanders)들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었다. 특히 RDC 중 리더였던 시니어 치프(E-8) 루미스는 내가 보초를 설 때마다 한 번씩 다가와 질문을 던지고 기합을 주곤 했다.
“Senior Chief, the 5th General Order is, to quit my post only when properly relieved, Senior Chief.”
아버지뻘 되는 시니어 치프는 겉으로는 엄하고 냉정했지만, 눈빛과 목소리에서 묘한 인자함이 느껴졌다. 마치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다.
“너무 쉬운 걸 물어봤군. 두 번째 General Order. 말해봐.”
“Senior Chief, the 2nd General Order is, to walk my post… in a military manner… keep, 아니 keeping alert……”
당황한 나머지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
“keeping always on the alert, 그다음엔?”
“……”
“등산자세(Mountain Climber), 준비.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태생적으로 내향적인 나에게 관심을 받는 상황은 너무나 가혹했다. 내 이름은 하루에도 수십 번 불렸고,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두 배의 기합을 받았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편, 언어의 장벽과 성향 차이로 힘들어하는 나와는 달리 대부분의 훈련병들에게 어려웠던 것은 단체생활과 수직적 문화, 그리고 부조리함이었다. 미국에서 자란 훈련병들에게 RDC의 말이 곧 법이고, 훈련병은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의 관계는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의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힘들어했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문화, 한 사람의 실수로 모두가 기합을 받는 단체 기합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자라온 나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체벌이나 선후배 간 부조리가 일찍 사라졌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 교육 환경에서 자란 밀레니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낯선 현실이었다.
입소 후, 다섯 번째 주 어느 날이었다.
내 옆 침대 2층을 쓰던, 미시간에서 온 Kosher라는 친구가 있었다. 첫인상은 자신감 넘치는 에이스였다. 하지만 한 번 지적을 받은 뒤 RDC에게 이름이 각인되자 반복적으로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의 반응이었다. 기합을 받을 때마다 화가 난 듯 RDC를 노려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싸하다 싶던 어느 날,
“이건 정말 비인간적(inhumane)이야! 엿이나 먹어!”
RDC가 다가오자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다른 훈련병들이 말리고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RDC 중 한 명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지만, 시니어 치프가 침착하게 미소까지 보이며 그를 제지했다. 이후 헌병이 호출되었고 Kosher는 연행되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RDC에게 듣기로는 붓캠프를 마치지 못하고 퇴소하면 기록이 남아 맥도널드에서도 채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Kosher를 걱정했다. JROTC 출신의 에이스였던 Wood는 자기 책임이라며 눈물까지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는 과장된 이야기였다. 이런 경우 범죄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과가 되지 않으며, 일반적인 백그라운드 체크에도 남지 않는다. RDC들이 훈련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압박 멘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Kosher를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숨 막히게 빠듯한 훈련 일정 속에서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기상 시간 10분 전이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나 서로 도우며 준비를 마쳤다. 기상 시간이 되면 이미 라인에 서 있었다. 샤워 시간도 이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여유 있게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RDC들이 점차 샤워 시간을 늘려준 덕이 컸다. 물론 시간을 늘려줬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수도 없이 기합을 받았지만,
우리에게도 ‘군기’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