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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Mar 14. 2021

나는 무조건 서울대 경영학과 갈 거야!

마지막 회

누구에게나 성향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성향을 나누는 기준 또한 수 없이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지문(指紋)이 다르듯 완벽히 같은 성향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뭐 개인의 성향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언어라는 오류에 빠져 마치 깨끗이 나뉘어 보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고, 그중 가장 착각에 빠지기 쉬운 대상이 '나'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나'라는 존재가 인식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정의(定義)를 당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정의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살아가는 내내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나'에 대해 또는 '나'를 통해 무엇을 끊임없이 재단하고 평가하고 정의한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인지, 키가 큰 사람인지, 머리가 작은 사람인지, 돈이 많은 사람인지, 논리적인 사람인지, 미감이 좋은 사람인지,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인지 따위의 것들을 끝도 없이... 


그 정의라는 것이 절대 의미 없거나 바보 같은 짓은 아니다. 그러나 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런 이유로 나는 대충 독일로 오는 그 시점부터 '나'로 정의되지 않은 것들을 '나'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관심도 없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일들을 하고, 절대 안 배울 것 같은 공부를 했다. 예전에는 하지 않던 표현을 하고, 표정을 하고, 행동을 했다. '나'라는 존재를 좀 더 균형 있게 만들어 보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을 것을 채울 수 있었지만 또 그 한계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일까? 왜 예술의 정의를 다시 하고, 미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고, 세상을 보는 기준과 '나'라는 정의를 달리 해봐도 왜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에 갇혀 있는 느낌일까?


일부러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지고 사는 폐인 같은 예술가나 지식인의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방랑자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사는 스스로의 모습이 뿌듯한 사람도 있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SNS에 퍼 나르는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때로는 누군가는 이해 못할 모습일 수도 있고, 그렇게 남들이 인정 안 하는 모습이라 스스로는 더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 세상의 다수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쉽게 착각에 빠지지 않을까? 

   

나는 내가 인정하고 싶은 내 모습만 인정한다는 사실.


내가 답답했던 건 인정하지 않아서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돈을 벌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나의 공연을 홍보하는 것과 더 유명해지고 싶은 나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내가 참 멋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의 내가 될까 봐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될까 봐, 내가 너와 같은 일을 하는 이유는 너가 그런 일을 하는 이유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잊을까 싶어 내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주로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내 모습일 확률이 큰 것 같다. 


물질적인 것, 누구나 다 원할만한 것에, 자본주의가 유혹하는 무엇을 욕망하는 건 너무 쪽팔리잖아!!! 



"먹고살라면 이런 것도 해야지." "공연하니까 귀찮아도 홍보해야지."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이런 식의 일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순수하게 작품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나'였나 보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인정을 해야 되는지도 몰랐던 내 욕망을 인정하게 된 것은 일종의 '믿음' 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위 속물 같아 보이는 내 안의 모습을 인정해도 내가 걱정하는 그런 모습의 인간은 절대 될 수 없는 게 '나'라는 것.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인정할 때 내가 누구인지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제대로 봐야 내가 보는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사는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


그런 믿음으로 나는 나의 서울대 경영학과에 가기로 했다.


나는 반드시 서울대 경영학과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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