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화
순간의 감정을 여과없이 쏟아내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난 성격이 원래 솔직해. 돌려 말하는 거 딱 질색이야.'
어른이 돼서도 저런 말을 부끄럼도 없이 하는 사람들 또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가 노는 물에서 꽤나 영행력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은 커리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혹은 인기가 생기면 생길수록 그들의 '막말'은 점점 잔인해진다. 거침없는 행동이 그들에게 불패의 공식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위로부터 '아무개 교수님 카리스마 쩐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형님' '역사의식이 투철한 지식인' '남들과 다른 진정한 신앙인'같은 전사(戰士)나 투사(鬪士)의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인간에 대한 존중도 없고 생명에 대한 존중도 없이 육두문자나 다름없는 날 것의 표현들을 쏟아낸다. 심지어 요즘에는 서양의 그것을 좇아 비아냥거림의 어법이 투쟁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현상까지 있는 듯하다. 마치 '너네같이 멍청한 애들 상대로 진지하고 싶지도 않아. ㅋㅋㅋㅋㅋㅋ'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동조의 댓글을 덧입혀 준다. 그 수가 많을수록 쉽게 집단이 형성되고,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자연스럽게 권력이 생겨나고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일종의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이것이 정치고 엔터테인먼트다. 그들은 그렇게 성장해 왔고, 그렇게 해야 더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욕하는 것도 어그로를 끄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화난 기색도 없이 비아냥거리면서 그들을 열 받게 할 자신이 있다면서...
그 그룹들이 느끼는 본인들의 모습은 자유를 위한, 정의를 위한, 평등을 위한 투사쯤인 듯하고, 그들의 주장에 쌍수를 들고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멍청하고 용기 없고 권력에 숨어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진영이나, 프레임이나, 의견을 가진 집단이던 끼리끼리 모여서 낄낄거리고 비아냥거리고 막말을 나누면서 자위하는 모습에 완벽히 오버랩(Overlap)되는 장면들이 있다.
그들은 정의를 외치는데 나에게는 N번방 사건이나 학교 폭력에 관한 텍스트나 영상들을 대면할 때와 전혀 다름이 없다. 그들은 목표물(사람/집단)을 정하면 옷을 벗기고, 오물을 먹이고, 강간하고, 가지고 놀고 시시덕거리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제3자가 사건을 접할 때는 이미 슈레딩어의 고양이 상자가 열린 시점이라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들에게도 강력한 명분이라는 게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얼마나 잔인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잊을 만큼 충분히. 명분은 무섭다. 스스로의 행동이 정의가 되고 종교가 되면 무슨 말을 해도 잔인해진다.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끝도 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에 앞서 성숙한 사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사람들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잘못된 방향을 가다가도 선회할 수 있지만, 그럴싸한 명분과 분노로 가득 찬, 미성숙한 사람들이 이끄는 세상은 설사 그 주장이 꽤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해도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또 다른 권력자를 낳을 뿐이다.
성숙한 인간의 되어가는 길의 일종의 증명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가 보이는 '언어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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