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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Mar 26. 2021

멍청하면 가서 공부를 해야지 어디서 아가리를 놀려!

마지막회

어릴 때 '부모님들은 자식이 거짓말하면 다 안다'는 말을 안 믿었다. 아주 어릴 때는 몰라도 고등학생 무렵부터 다 큰 어른이나 다름없는데 때문에 알 길이 있나. 그러나 부모가 되어보니 지금은 그 말에 꽤나 신뢰가 간다. 물론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식은 더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가고, 부모가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한 것마냥 모든 것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아이와 보낸 시간만큼, 사랑하는 만큼 말하지 않아도 강력히 연결된 신호 같은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학창 시절,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어떤 이슈에 대해 부모님과 핏대 올리며 얘기할 때 부모님은 토론보다 '나'라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았었겠다. 당신의 의견을 논리와 지식으로 관철시키려는 노력보다 '우리 아들이 왜 저렇게 생각할까?''저런 생각들이 우리 딸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걸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 그렇게 의견을 내기에 조심스러웠던  부모님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몇몇 철학과 교수님과도 언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마 꼰대 같은 교수들이 별 능력도 없고 토론도 못하면서 무슨 철학을 가르치나 했었다. 근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언쟁이라기보다 거의 나 혼자 얘기하고 그분들은 크게 대꾸하지 않은 것 같은 기억이다. 물론 꼴 같지 않아서 대꾸를 안 했을 수도 있겠고, 나의 태도가 토론을 할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 말을 아꼈을 수도 있다. 나이가 차서 비슷한 상황을 반대로 겪고 하고픈 말을 참아보니 알겠다. 그들 역시 할 말이 없지는 않았겠구나. 


사업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장은 원래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을 잘해야 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7년이라는 기간 내내 가장 많이 생각나는 말이기도 하다. 비단 사장이라는 자리에 국한되는 얘기도 아니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말을 아껴야 하는 순간과, 아껴야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 또는 어떻게 언제 말하는 것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너무나 중요하다. 어떠한 말들은 안 하니만 못하고, 어떠한 말들은 오롯이 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감수하고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것은 '언어의 무게'다.



적어도 내가 아는 훌륭한 어른들은 막말을 하지 않는다.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말들로 자신의 세력을 모으려 애쓰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개, 돼지나 벌레처럼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생각한다면 말을 아끼고, 꼭 말을 해야 한다면 격을 갖추고 이야기한다. 물론 때로 아주 노골적인 표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도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고상하고 고매한 척하는 가식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대단한 사람들 얘기도 아니다. 이건 그냥 상식이 있고 평범한 대다수 어른에 대한 얘기다. 우리의 부모님이고, 선생님이고, 옆집 아저씨고, 친구 얘기다. 사실은 훌륭한 어른들은 아주 많다. 그리고 평범하다. 단지 말을 아끼고 있을 뿐.


시끄럽게 종을 치고, 사이렌을 울리고, 칼을 휘두르고, 옷을 벗고, 큰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로 맞추고 거친 말을 쏟아 내는 것에 속지 말자. 그들은 진짜 어른이 아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erzebet prikel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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