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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Dec 25. 2023

생각할수록 너도 맞다

중용은 개뿔

나는 대개의 경우 양비론자이거나 양시론자다.


그리고 양비론, 양시론은 세상에서 가장 설득력 없는 의견일 것이다. 심지어 대학 입시에 논술이라는 게 있던 시절에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태도가 양비론, 양시론이었다. 말하자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이도저도 아닌 태도라는 거지. 무조건 확실한 한쪽을 고르고 철저히 그쪽 편에 서서 날카롭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내 의견이 어떤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쉽게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 유리했다. 시험이라는 게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살다 보니 이게 시험만 그런 게 아니고 삶이 그러더라. 세상에서 인정받고 힘을 얻으려면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내가 확실한 색깔을 보여줄수록 그것이 수월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치 같은 것이다. '너도 맞고 나도 맞는데 같이 잘해보자'같은 태도를 보이는 정당은 어디에도 없다. 죽어라 '너는 틀리고 나만 맞다'라고 해야 결국 내 편이라는 게 모인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이 유치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치가 결국 인생의 축소판인 걸 어쩌겠나. 결국 우리의 인생도 포장지만 몇 겹 더 덮었을 뿐 다를 게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내 편 붙어라!'를 말할 땐 '이런'이 너무 복잡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일단 확실한 색깔이 있는 큰 정당에 소속되어야 하고, 내 편이 될 만한 사람은 목숨 걸고 지켜줄 듯 말하고, 상대편은 쓰레기로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대야 한다. 대중들은 나대다가 욕이라도 먹는 사람을 뽑는다.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을 뽑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정치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아는 영화들을 다 떠올려보라. 운동선수나 감독, 예술가나 디자이너, 사업가나 혁명가 아무래도 좋다. 아무 영화나 진짜 멋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려 보라. 그들은 마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신념을 갖고 자기의 의견을 밀고 간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개무시를 하기도 하지만, 그 대상이 조연이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너도 맞고 나도 맞아'는 없다. 내가 맞아! 이렇게 안 하면 난 절대 안 해! 이게 아니면 다 틀린 거야! 넌 생각하지마 생각은 내가 하니까!  


실세를 가진 사람들의 그런 모습들은 카리스마나 프로페셔녈이 되고 실패한 사람들의 그런 모습은 독단이나 고집이 된다. 그러나 최악은 양비양시론자다. 사람들은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른다. 재미가 없으니까.


혹자들은 중용은 양비양시와는 다르게 중립을 지키되 정확하게 올바름을 실행하는 용기라는데, 그렇게 해석하면 큰 문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 또는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며 반대와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사실은 내가 편협하거나, 이기적이거나, 탐욕적이어서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히틀러도 전두환도 자신이 공정하고 바르며 용기 있게 행동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정의롭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더 힘없는 양비양시론자로 계속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지 미친척하고 날뛰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오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사진출처 : <a href="https://kr.freepik.com/free-photo/3d-knife-stuck-in-a-wooden-table-in-a-grunge-brick-room_1270693.htm#page=2&query=knife&position=42&from_view=search&track=sph&uuid=be5b0fd5-7de8-436e-9260-30a374da9309">작가 kjpargeter</a>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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