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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Feb 11. 2020

행복한 당신의 가치

예술도 권력도 행복을 뺏을 권리는 없다


얼마 전 #MeToo는 세상에서 가장 핫한 이슈였다. 성폭력은 언제나 존재했고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Me Too Movement'가 그 당시 막 생겨난 것도 아니다. 무슨 이유로 'MeToo'는 세계적인 이슈로 확산될 수 있었을까? #MeToo라는 심벌이 말해주듯 '소셜 미디어 - 해시태그'의 공은 컸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성공적 확산의 일등공신은 '성(性)'과 더불어 '권력의 민낯'에 맞춰진 초점이다. 결과적으로 다시 '남자 vs 여자'의 진흙탕 싸움이 되면서 가능했던 긍정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시들해졌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딴 동네에 이름 모를 아저씨에게는 관심이 없다. 아니 누군지 몰라서 관심을 가질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분야의 권위자, 연예인, 정치인, 세계적인 슈퍼스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각자 다른 정도의 충격을 느끼고 그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개인사가 큰 대중적 이슈로 확장될 수 있는 요소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충분치 않다. 그들은 꽤나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반전과 실망과 질투와 분노가 복잡하게 얽히고, 끓고, 넘칠 수 있다.


대단히 존경받는 인물의 추악한 단면이 사실이라면,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돈과 명성을 얻었을까? 어떻게 몇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농락하고도 누구의 지탄도 받지 않으며 심지어 스스로도 괴롭지 않은 삶이 가능했을까?


단언컨대 권력형 성폭력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분야는 문화/예술계다. 그중에서도 아주 예술적이고 수준이 높은 예술가들 있는 'Real Field'일 확률이 높다. 이는 굳이 예술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역사 속의 예술가들과 현존하는 예술가들의 일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광기(狂人)'다. 그 광기가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라 해도, 누구나 비난할 만한 미친 짓이라 해도, 여전히 신화처럼 그들을 신비하게 만들고 그들의 작품도 더 신비하게 보이게 한다. 인간으로서의 그를 비난할수록 예술가로서의 그는 저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간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광기'는 예술가의 필수품이다. 한편으로 단지 운이 좋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인 오류일 수도 있겠고, 그것이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다른 차원의 정신세계 닿을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라면 더 나은 예술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광기'가 '예술'의 필수조건이라 해도 지금 당신이 누구를 떠올리던 그는 그냥 '미친놈'이거나 '광인' 코스프레 중일 확률이 99%다.


그럼 나머지 1%. 소위 계(界)에서 인정받는 인물.


그가 욕망의 액체가 흘러넘쳐 반 인륜적 상상을 하던, 접신을 하던, 밤새 우주를 백만 번 다녀오던 그것은 그의 능력이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자 능력일 수 있다. 누가 뭐라 하랴. 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그의 세계가 타인의 세계와 만나는 곳이다.


여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휘자가 있다. 그의 음악적 역량은 가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연습 등의 음악 활동부터 일상에 이르기까지 늘 음악에 미쳐있다. 더 나은 음악을 위해 자신이 보는 것, 들리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음악에 관해서는 마치 자신의 음악 위에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듯 거침이 없다. 여기까지는 그럴싸해 보인다. 그의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주변에는 현실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에 닿기를 원하는, 무의식의 충동과 욕구에 다다르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휘자는 맛없는 물을 집어던지고, 스텝과 단원에게 비인간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가끔 여제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내 주기 위해 팬티 안에 손을 넣기도 한다. 아무도 그의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아니 본인과 주변인 모두 그가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위대한 예술을 위해 필요한 희생들이고 그는 그럴만하니까. 예술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다.


극단적인 예시일 수도 있지만, 인류가 발전시켰다는 모든 분야의 성장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래에도 계속 그 방식은 유효할까? 또는 다수의 범인(凡人)은 한 명의 천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까?


인류가 지금에 오기까지 소수의 광인/천재들이 각 분야에서 이뤄낸 것들이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봐도 더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풍족함의 도가 지나쳐 부작용을 낳는 시대에 왔고 이제 더 이상 영웅은 필요 없다. 우리는 더 풍요로운 세계를 위해 늘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달려왔지만, 이제 사람들은 '성장'을 명목으로 '광기'를 합리화하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희생하며 이룩하는 업적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한 삶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행복한 삶을 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분야의 권위자라 해도 예외는 없어야 한다. 그가 지금 최고의 물리학자던, 음악가던, 배우던, 디자이너던 타인의 삶을 함부로 침범한다면 다 끌어내라. 존경할 이유도 보호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당신이 대단한 업적을 위해 '광인' 코스프레 중이라면,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정작 중요한 당신의 삶 또는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그냥 행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얼마나 인정받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모차르트도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행복한 당신이다.




이미지 : https://pixabay.com/ko/photos/바다-선셋-사람-실루엣-220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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