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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Feb 12. 2020

전문가 시대의 종말 1

우리는 원래 태생이 멀티다

40만 년 전에 나뭇가지를 문질러서 불 지피고 살던 시절, 한 소년이 나뭇가지를 문지르다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올려본다. 그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생각한다. '저 우주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커서 천체 물리학자가 될 거야!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osmic microwave background)을 연구하고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우주여행도 할 거야!'  


저 소년의 꿈에 왠지 미안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사실이 아니다. 그는 그 정도의 논리도 지성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런 분야나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 존재는 있고 단어는 없는 것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기원전 367년 아리스토텔레스라는 17세 소년은 입시 준비에 한창이다. 목표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라는 명문 사립학교, 지원학과는 대충 물리학, 형이상학, 생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천문학, 화학, 철학, 미학, 시학, 연극, 음악 등을 동시에 공부하는 학과였다. 입시에 성공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약 20년 동안 학생도 하고 선생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는 40만 년 전 상상처럼 어이없지는 않다. 단지 그 당시에 '입시'나 '명문 사립'같은 개념은 없었고 저런 학과들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사실에 가까우니 말이다.  


호모 에렉투스나 기원전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1475 - 1564) 역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고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그 이후 인류는 지금까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을 개별 학문으로 분리하면서 전문화 작업에 몰두하고 각 분야를 심화했다.


과거의 그들은 어떻게 저 많은 것들 동시에 배울 수 있었을까?


첫째로, 이 당시 특정 분야가 축적한 정보량이 지금 보다 현저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에 걸쳐 남이 써놓은 논문이나 책을 보며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둘째로, 그들은 꽤나 천재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남긴 작품과 저서들, 자료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뿐이었을까? 아카데메미아는 플라톤이랑 아리스토텔레스 이외에도 많은 학생과 선생이 있었을 것이고, 미켈란젤로와 동시대를 사는 꽤나 많은 사람들 역시 그와 비슷하게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기진 못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 형이상학, 건축학, 생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천문학, 화학, 철학, 미학, 시학, 연극, 음악 같이 엄두도 안 나게 다른 그리고 많은 분야를 엮고 버무리면서 공부하고 일했을 것이다. 일부 천재에게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라 그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인물들이 세운 혁혁한 성과들도 무명씨들과 함께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축적된 방대한 정보량은 우리 세대에 와서 줄일 수도 없고, 천재성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니 배제하자. 하지만 세 번째 이유는 우리 시대에 가장 유의미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았다.'





이미지 : https://pixabay.com/ko/photos/동상-가스-마스크-호흡기-91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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