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시대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았다.'
머지않은 과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의 직업을 갖고 평생을 살았다. 한국으로 보면 불과 한 세대 정도 과거의 얘기다. 그때까지는 '직업 = 나'라는 개념이 상식적이었다. 생존을 위해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했고 일단 그 일을 찾으면 이외에 다른 일을 할만한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여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 커봐야 결국 죽는 날까지 내 분야에서 프로페셔널로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선 과거 전문가 집단과 지금의 전문가 집단의 차이를 보자.
친구와의 저녁식사에서 처음 만난 대단히 지적인 그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박사이고 파리를 연구한다고 한다. 우연히 파리의 눈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별로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것 같은 눈치였다. 결국 당연하다는 듯하는 말이 자신의 연구 분야는 어떤 특정한 파리의 왼쪽 다리에 있는 무슨 털에 있는 무슨 박테리아고 다른 부분은 잘 모른단다. 그래도 그는 훌륭한 과학자다. 누구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단지 가상의 인물을 통해 현시대의 전문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로 인한 전문가 집단의 한계를 말하고자 한다.
지금은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는, 더구나 그 목표가 세계 탑들이 모인 집단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이른 나이에 길을 정하고 경주마처럼 달려도 될까 말까 한 경쟁사회다. 다시 가상의 인물을 생각해보자. 수학을 꽤 잘하고 과학에 관심이 많은 8살 꼬마는 물리학자가 꿈이다. 인터넷을 찾아 세계적 물리학자가 되는 길을 알아봤다. 자신의 우상인 저명한 물리학자가 나온 그 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고, 가장 권위 있는 어느 잡지에 언젠가 내 논물을 싣겠다 다짐한다. 그 소년은 소질이 있고, 성실했고 운도 따랐기 때문에 인정받는 물리학자가 됐고 결국 원하는 전문가 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집단에 속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일찍 자신에게 딱 맞는 진로를 결정했고, 수많은 논문을 보며 공부했고, 운도 따랐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한 전문가 집단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면 해결될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의 해결과제들은 지식량의 문제가 아닌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차피 대부분의 정보라는 것은 공개되어 있고 인류는 모든 분야에서 나올게 다 나왔다 할 만큼 성장했다. '그 분야'에 대해서만 국한된 전문적인 지식들이 가진 영향력은 점점 줄고 전문가로서 당연했던 상식들은 오히려 깨져야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극도로 발전한 분야의 지식과 통념, 그리고 서로 다르지 않은 인생과 관점을 통해 전문가 집단의 브래인스토밍은 결국 혼자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현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융합'이 된 이유는 모든 분야들이 생존 본능적으로 선택한 돌파구가 같은 지점으로 모였다는 방증이다.
'약 500년 정도 미친 듯이 만든 벽들을 다시 허물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