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함께한 여정

찻잎처럼 가볍고 단단하게 5화

by 이소연 Teana Lee


한국에 아직 티 블렌딩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나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모하다’고 불렀고,

누군가는 ‘그게 되겠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팔리지 않아 쌓여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가던 어느 날, 나는 다짐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고,

화개라는 산골에 살고 있었으며,

배울 곳도, 팔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고립된 현실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내가 사용할 차를 직접 만들 수 있어.

내 곁에는 깨끗한 자연이 있고,

관심받지 못하는 전통 차니까 경쟁도 덜하지.


내 나이는 어리지만,

트렌드를 읽는 감각과

무서울 만큼의 열정이 있어.


그래, 해보자. 시작해 보자.

설령 안 되더라도,

나는 그 과정 안에서 반드시 성장할 거야.”


그건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결단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순간, 모든 시간

꽃과 약초, 향과 맛, 효능, 추출 온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마른 잎을 만지고, 꽃과 과일을 말리고, 향을 맡고,

조합을 바꾸며

나는 하루하루 블렌딩에 온전히 몰입했다.


세상은 몰랐지만,

나는 매일 차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나는 외로운 전사였고,

조용한 혁명가였으며,

무엇보다 자기 삶을 직접 빚어가는 창조자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도 나는 여전히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고민의 장르와 스케일이 다르다.

이제는 아파도 회복이 더 빠르고,

상처받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찻잎처럼 단단해졌다.


사막 한가운데 혼자 던져진 것만 같던 시간도 있었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나 혼자 남겨진 듯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묵묵히, 끝까지 참고 견디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차를 만들며,

삶을 다시 블렌딩 하며.


나는 지금 이 기록들을 남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는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조용히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

조용한 확신이 되어주기 위해서.



세상은 여전히 나를

무시하기도 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돌을 쌓아 디디고 더욱 우뚝 선다


나는 나를

과정 속에서 배우며 자라는 사람으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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