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는 말한다. 향은 고요하게 피어난다고

새로운 시작

by 이소연 Teana Lee


바질은 따뜻한 햇살 아래서야 향을 내고,

로즈마리는 메마른 흙에서도 기어이 가지를 뻗는다.

나는 그런 허브 같았다.


하동에서의 시간을 접고,

어느 날 나는 차와는 거리가 먼 땅에 발을 디뎠다.

누구도 차를 찾지 않던 그곳,

유동 인구조차 드물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던 외진 동네.

그래도 나는 그곳에 찻잎을 심었다.

나의 티 전문 카페.


그 시작은 조용할 틈 없이 시끌벅적했다.

카페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불쑥 들어온 할머니가 물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여?”

할아버지는 턱짓하며 웃고 갔다.

“미쳤네, 여기다 이런 걸 해?”


그 말들이 처음엔 웃겼다.

그러나 비슷한 말이 반복될수록,

나의 웃음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날 나는 웃는 얼굴로 문을 닫고,

텅 빈 가게 안에서 조용히 울었다.


나는 이미 ‘시작’이라는 물에 잠긴 찻잎이었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물릴 수도 없었다.

“이제부터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그 무렵, 나는 아버지와의 연까지 끊은 상태였다.

AK그룹과의 상품 개발 계약으로 어버지와 운영하던 회사를 나와 내 모든 기반을 내려놓았다.

브랜드 키우는 건 고된 일이라며 걱정하던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단 하나, 내가 믿는 차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혼자였다.

직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픈한 카페를 혼자 꾸리고,

납품일이 되면 차를 들고 거래처로 향했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멈추면 죽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남은 삶,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부지런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카페 근처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오후가 되어 학교가 끝나면

엄마들이 하나둘 카페로 들어왔다.

조금 뒤에는 아이들이 카페 문을 열고 외쳤다.

“엄마~!”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울었다.

웃는 얼굴로 차를 내리면서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는 언제나 저릿했다.


나는 그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일만 했다.

울지 않기 위해 손을 더 빨리 움직였고,

멈추면 생각날까 봐 쉬지 않았다.


그렇게 한 계절, 두 계절을 지나며

차의 향처럼 내 삶도 천천히 우러났다.


그러나 시간이란 건 참 신기하다.

도망치던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들어

조금씩 다른 색을 입힌다.



7년이 지났다.


이제는 방과 후 아이들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는 먼저 이름을 불러준다.


“하린아, 오늘은 뭐 마실래?”

“은우야, 오늘 피곤해 보인다?”


그리고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티와

작은 간식을 건넨다.

언젠가 내가 그리워하던 장면이,

이젠 내 손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엔 낯선 손님들이었던 그들은

이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카페는 매출표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공간이 되었고

나는 다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허브는 늘 말한다.

“향은 고요하게 피어난다.”


지금 나는,

내 안에서 피어난 그 향을

조용히, 그리고 담담하게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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