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봐도 잘 분석한 보고서가 왜 까이는 것일까
Q)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벤치마킹도 하고 인터뷰도 해서 멋진 기획안을 만들었지만 까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의 노력이 담긴 이 보고서가 통과될 수 있을까요?
보고서는 지원부서 업무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래서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통 인정을 받습니다. HRD부서도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보고서를 쓸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보고서는 교육과정 개발/교육과정 운영/교육과정 실시 보고서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이 HRD담당자의 주 업무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죠. 담당자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분석작업을 하면서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거야"하는 큰 포부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나름대로 잘 작성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만은 않습니다. 팀장에게 몇 번씩 커트당하면서 좌절하기 십상이죠.
그렇다면, HRD담당자는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요. 사실 이 내용은 HRD담당자가 아니고 일반적인 보고 상황에도 대부분 적용될 수 있으나, 특히 HRD담당자에게 적용되는 내용 위주로 몇 가지 Tip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HRD담당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HRD담당자 A씨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외부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분명히 이번 차장 진급 교육에는 코칭 리더십이 가장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본인이 판단하여 팀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특히 교육생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결과를 도출했다는 부분을 강하게 어필을 했습니다. 허나 A씨의 팀장은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서 코칭 리더십 교육을 듣고 왔지만, 차장급에게는 영 맞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A씨는 데이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보고하였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자리에 돌아오면서 분해서 혼잣말을 합니다. "요구분석 백날 하면 뭘 하나 결국 지마음에 안 들면 안 할 거면서..."
HRD담당자는 프로그램의 엔드유저인 교육생을 생각하면서 항상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담당자가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은 바로 팀장이라는 점입니다. HRD담당자의 1순위 고객은 팀장, 2순위 고객은 CEO(또는 상위 결재자, 3순위 고객이 바로 교육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도 자신의 팀장을 통과하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실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CEO의 한마디에 열심히 기획한 내용도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때 HRD담당자들이 좌절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잘 조율해서 최종 아웃풋을 도출하는 것도 담당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HRD담당자는 요구분석을 한 결과까지만 도출하여 조직장에게 보고만 하면 그다음 단계는 조직장이 선택할 부분입니다. 윗사람이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실무자가 할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도 노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HRD담당자들이 본인의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프라이드가 높아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회사란 곳에서 책에 나오는 이론처럼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항상 정치적인 것을 고려해야하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HRD부서의 팀장은 HRD를 계속하던 사람이 아닌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전문적인 용어를 마구 섞어가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면 이해가 어렵겠죠. HRD담당자들은 자신들이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를 자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에 팀 회의에서 어떤 분이 AC/DC를 보고서에 언급했다가 혼난기억이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보고서에는 전문용어는 자제하고 최대한 쉬운 내용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보고 장면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써도 상관없습니다. 특히 업체 미팅 때는 전문용어를 좀 써줘야 얕잡아보지 않더군요.
분량과 형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고자가 간략한 보고를 원하는 스타일이면 핵심 정보로 1~2장의 보고서만 작성하고, 필요시 백데이터만 제공해도 충분합니다. 보고자가 풀 패키지 보고를 원하는 스타일이면 컨설팅 회사처럼 모든 데이터를 보고서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스타일 모두 겪어봤지만,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팀장의 의중만 파악한다면 보고서를 쉽게 작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논리적 정합성이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보고서의 논리가 탄탄해지고 보고서 작성 스킬이 향상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근 조직책임자가 꽂혀있는 관심사도 중요합니다. HRD부서장들은 보통 CEO가 직접적으로 시키거나 윗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러한 관심사를 무시하고 본인의 생각대로만 업무를 추진한다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겠죠. 조직책임자가 실적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팀원의 역할입니다. 다만 HRD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서장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HRD담당자는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보고하는 타이밍, 선호하는 보고 스타일(대면/이메일), 보고자의 성격 등도 당연히 고려 대상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는 한 가지 진리의 명제가 있습니다. 바로 "보고는 보고서의 내용보다 보고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입니다. 제아무리 잘 써도 팀장과 관계를 잘못 유지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트집 잡힐 것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소소한 실수는 그냥 넘어갈 것입니다. 보고 내용, 보고 스킬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일단 사람 관계를 잘 만들어 놓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를 악용해서 능력도 없는 사람이 관계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