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Assumptions)

Michael Close

by 마술하다 야초

관객의 무의식적 가정을 활용한 마술 설계


기술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며, 마술사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관객의 가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앞서 2부(69페이지)의 장 전체를 할애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그 개념을 바탕으로, 마이클 클로즈가 제시하는 '관객이 마술사를 볼 때 하는 7가지 가정'을 살펴보고, 나아가 그 잘못된 가정들을 활용하여 어떻게 기적과 같은 마술을 설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을 공유하려 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창의성의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창의성이란, 그 본질을 파악하고 작동 방식을 설명하려 할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 속성이 있지요. 저는 창의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회의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도 마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이 에세이를 셀 수 없이 다시 읽었으며, 클로즈의 '일곱 가지 가정'은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새로운 해법을 찾는 데 여러 번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정은 모든 속임수의 핵심입니다. 사실 저는 가정이 없다면 속임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마술을 선보일 때, 우리는 관객에게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 정보를 제공합니다. 관객은 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특정 '가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을 관객이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상황의 진실을 감추는 우리의 기술에 달려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관객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정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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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제가 카드를 거짓으로 섞는다고 해봅시다. 만약 그 동작이 진짜 섞는 것처럼 보인다면, 관객은 덱이 완전히 섞였다고 가정할 것입니다. 제가 소품을 관객에게 건네주며 확인시켜 준다면, 관객은 그 소품에 아무런 장치가 없다고 가정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확인시켜 줄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가정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지나친 강조는 오히려 가정이 주는 이점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카드 섞는 동작을 과하게 의식시킨다면, 관객의 가정은 의심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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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평범한 밧줄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가정은 우리가 무언가를 애써 강조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할 때 가장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카드의 비닐을 뜯고 새 카드의 봉인을 해제하는 제 행동을 관객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카드 덱이다'라는 가정은 저절로 형성됩니다.


가정은 속임수의 원리를 감추는 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관객은 자신이 세운 가정을 바탕으로 트릭의 비밀을 풀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가정이 틀렸다면 (그리고 관객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비밀을 파헤치려는 모든 논리적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관객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몇몇 가정들이 올바른지 의심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의심받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지나치게 강조했던 가정들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확신으로 바꿀수록, 관객이 그 타당성을 의심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유일한 설명이 '마술'이 되는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여기서 저를 매료시키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관객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공연에 가져오는 가정'이 존재할까 하는 점입니다. 만약 그런 가정이 있고 우리가 그 가정이 틀리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관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과 정반대의 길로 들어서게 되므로 그야말로 경이로운 마술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가정이 우리가 가장 덜 강조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관객 스스로 잘못된 가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도구를 가장 교묘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런 잠재의식적 가정이 존재할까요?

네,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미 그중 일부를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정리한 목록을 보기 전에, 잠시 이 책을 덮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어떤 종류의 트릭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분석력이나 관찰력과 상관없이) 해법을 재구성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까요? 여러분에게 매우 익숙할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 목록의 첫 두 항목입니다. 계속 읽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세요. 저와 다른 답을 떠올리셨다 해도, 그것 역시 훌륭할 겁니다.


1. 트릭의 방식은 언제나 동일할 것이다 (고유한 절차 가정)


제 목록의 첫 번째는 '하나의 트릭은 언제나 같은 절차를 따른다'는 가정입니다. 관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트릭이 항상 A에서 B로, B에서 C로 가는 정해진 길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극히 타당한 가정이지만, 만약 트릭이 선형 구조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특정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요? 관객의 근본적인 가정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런 가정을 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트릭의 재구성은 불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개의 결말, 즉 '아웃(outs)'을 포함하는 모든 트릭에서 발생합니다. 트릭을 끝내는 방법이 두 가지 이상이라면, 해법을 알아내는 것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가장 유명한 다중 절차 트릭은 다이 버논의 '설명할 수 없는 트릭'입니다. 이 루틴에서 마술사는 예측을 먼저 한 뒤, 관객이 그 예측된 카드에 도달하도록 절차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즉흥 연기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다면, 관객의 무의식에 깔린 '절차는 하나'라는 가정이 깨지면서 그 어떤 설명도 불가능해집니다.


2. 쇼는 지금 시작된다 (공연 시작 시점에 대한 가정)


두 번째는 '쇼는 내가 지켜보는 지금 시작된다'는 가정입니다. 우리가 무대에 오르거나 테이블로 다가갈 때, 관객은 쇼가 이제 막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쇼가 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면 어떨까요? '사전 작업(Pre-show work)'은 바로 이 가정을 이용해 설명 불가능한 현상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결국, 쇼의 일부가 당신이 지켜보기 시작하기도 전에 일어났다면, 해법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겠습니까?


3. 트릭은 여기서 끝났다 (공연 종료 시점에 대한 가정)


이전 가정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트릭은 클라이맥스에서 끝난다'는 가정입니다. 트릭의 절정에 도달하면, 관객은 마술사의 역할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사실 다음 트릭의 시작이라면 어떨까요? 잘 짜인 다단계 루틴에서는 이 가정과 이전 가정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한 트릭의 끝처럼 보이는 순간이 사실은 다음 트릭의 준비 과정인 것입니다.


또한, 이 가정을 활용하여 트릭이 끝난 후에 우리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단서를 바꾸거나 관객의 기억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접근법이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탐구할 가치가 있는 비옥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4. 마술사는 혼자일 것이다 (독립성에 대한 가정)


네 번째는 '마술사는 혼자 일한다'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 덕분에 보조자나 바람잡이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관객은 기본적으로 마술사와 자신이 서로 다른 팀이며, 마술을 위해 관객을 속이는 공모자는 일종의 '반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관객이 조수의 역할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당신이 보여주는 다른 모든 마술은 신뢰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꼭 공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조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스토랑의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는 아주 귀중한 비밀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가정과 결합될 때 더욱 그렇습니다.


5. 우리는 방금 만났다 (사전 정보에 대한 가정)


'마술사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라는 가정 또한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낯선 사람들의 테이블에 다가가 공연할 때, 그들은 당신이 자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를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했거나, 은밀하게 테이블을 '탐색'하여 정보를 얻었다면, 기적적인 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6. 그렇게까지 번거로운 일을 할 리가 없다 (노력의 한계에 대한 가정)


저는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저렇게까지 번거로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가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반인 친구들에게 '암기 덱(memorized deck)'의 원리를 설명했을 때, 그들의 반응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카드 덱 전체의 순서를 외우는 데 시간을 쏟는다는 생각 자체를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런 해법은 그들의 머리에 떠오를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7. 마술사의 실수는 진짜 실수일 것이다 (완벽성에 대한 가정)


마지막 예시는 '마술사의 실수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라는 가정입니다. 관객은 공연자가 실수를 없애기 위해 수없이 리허설을 하며, 따라서 공연 중 발생하는 실수는 진짜 실수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누가 일부러 실수를 연기하겠습니까? 관객이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실수를 역이용할 수 있습니다. 후안 타마리즈의 '시선 교차 스위치'가 훌륭한 예입니다. 이 기술은 공연자가 소품을 어느 주머니에 뒀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실수를 하는 척하는 연기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지나친 강조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사소한 실수는 설득력 있지만, 큰 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실수로 당신의 20달러 지폐를 태워버렸네요! 이제 어떡하죠?")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


저는 우리가 잠재의식적 가정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무궁무진하며, 이제 막 그 수면 위를 살짝 엿본 것에 불과하다고 확신합니다.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가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호흡을 분석하는 것과 같아서, 의식하는 순간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더 많은 예시가 발견되고 더 강력한 마술이 개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론만으로는 마술사들을 흥분시키기 어렵습니다. 마술사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결국 '트릭'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대부분의 루틴은 잠재의식적 가정을 핵심 원리로 사용합니다. 몇 가지를 배워서 일반인들에게 직접 공연해보고, 그 반응을 관찰해 보시기를 제안합니다. 만약 그 경험이 여러분의 열정에 불을 지핀다면, 우리 모두는 새로운 발견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workers-5-1-450x450.jpg 마이클 클로즈 (Michael Close) 『워커스 5 (Workers 5)』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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