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가장 어려운 순간

선택과 포기 사이에서

by 김지영

한동안은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여행에만 오롯이 주어진 6개월간의 시간.

나는 누구보다 욕심 많은 여행자였다.


북미 로드트립을 마치고 남미 배낭여행을 하는 내내

더 많은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더 많은 곳을 가기 위해

항상 안달이 나있었다.


여행 중반을 넘은 시점에 나는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코스를 3박 4일만에 부랴부랴 해치우고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다. 그 아름답다는 피츠로이 봉우리와 또레호수를 보기 위해서.


보통 이틀에 걸쳐 다녀가는 코스이지만 나는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다. 촉박하지만 서둘러 움직인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어보였다. 그렇게 하루라도 보고 오겠다고 돌아가는 버스표까지 미리 끊어 두고 출발했다.


그러나 악명이 자자한 파타고니아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나의 야심찬 계획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아침에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비바람이 쏟아졌던 것이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기적처럼 하늘에서 해가 솟아났다.

당장 가방을 들쳐 매고 뛰쳐나갔다.

저 뒤로 보이는 준엄한 봉우리들. 올라가는 중에도 구름이 꼈다가 사라졌다가 마음을 쥐락 펴락. 두근두근했던 트레킹

하지만 그때시간은 이미 오전 열 시.


봉우리와 호수,


둘 중 하나는 포기하지 않으면 도저히 오후 6시 버스 시간에 맞춰서 산을 내려올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도를 보고 다시 시간 계산을 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봉우리까지.


봉우리 근처로 갈수록 가팔라지는 경사,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색 돌바위들에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내달렸다.

내 머릿 속은 두 개 다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결과 지도에 적힌 예상시간의 반밖에 걸리지 않아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눈부시게 파란 호수를 앞에 두고 펼쳐져 있는 회색빛 뾰족한 돌산과

그 위로 피어난 무지개.


무지개가 피었다 사라지는 것을 7번 정도 보고 나니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갔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또레호수는 영영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사진으론 담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 풍경의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그제야 지금 내가 한 포기의 가치를 깨달았다.

포기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라는 걸.

한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하나뿐이기에.


이후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내 여행은 오히려 더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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