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

잔디가 자라는 소리와 다람쥐의 심작박동 소리를 듣는 일에 대하여

by 김지영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영혼만이 감각을 치유할 수 있듯이 감각만이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감각을 깨우기 위해선 느릿느릿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그리고 빈틈없이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잔디가 자라는 소리와 다람쥐의 심작박동소리까지 들릴 것이다.
늘 그렇듯이 가장 빠른 자가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친 채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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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는 단 하나,

'느려지는 것'이었다.


벼르고 별렀던 여행에서 나는 그토록 느리고자 노력했지만 원하는 만큼 느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일상의 속도와는 비교할 것도 못 된다는 걸 알았다.


여행의 시간은 확실히 느리게 간다.

부러 애쓰지 않아도 눈 돌릴 때마다 닿는 새로운 것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나의 감각을 깨우고 연장시켰다.



한달 반의 여행을 다녀온 지 한달 반,

비슷한 한달 여의 시간


을 돌이켜 보지만

기억을 불러오고 곱씹는 속도는 놀랍도록 다르다.


여행에서의 하루가 백장의 사진과 천가지 순간들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또렷히 재생된다면

일상의 하루는 그저 하나의 숫자로, 흐릿하게 조각난 순간으로 스쳐갔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곱씹고, 감상하고,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일상을 살면서 삶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여행할 때보다 훨씬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그러기엔 너무 게으른 사람이라,
애써, 차라리,

여행을 떠나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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