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옆모습을 보는 일

그래, 그게 인생이지

by 김지영

p. 99

인생은 짧고, 이 순간은 길다.

책에서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브 에거스의 흥미로운 생각을 읽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사람이 노래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은 그 노래를 '풀어야' 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음악도,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정체성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사랑해) 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묘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풀기 위해 반복해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대학 시절, 그리고 이십 대 후반에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는데, 그때는 정말 싸우는 심정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음악을 만나면 그걸 풀어내기 위해 밤새 음악을 들었고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들었다. 시험문제 풀 듯 한 곡 한 곡을 열심히 들었고 좋아하는 노래를 만나면 음반에다 작은 표시를 해두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취향은 바뀌고, 입맛도 달라진다.

요즘 그때 들었던 음반을 다시 들어보곤 하는데, 당연히 점을 찍는 지점이 다르다.

오래전 책에 그었던 밑줄을 이해하기 힘들듯, 오래전 점을 찍었던 곡에서 흥미를 찾기 힘들다.

그건 이미 풀어버렸으니까. 이미 다 알게 됐으니까.

대신 전에는 지루하게 느꼈던 곡이 새롭게 들린다.


또 하나 기묘한 순간은 가사를 들을 때다. 원래 가사는 이렇다.

"인생은 짧고 이 순간은 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에게 맡기자."


그런데 이 가사를 들을 대마다

"내일은 내일의"를 자꾸만 "내 일은 내일 해"로 듣고 만다.

그래, 내 일은 내일 하자.

암, 내일도 또 해가 뜰 거고, 인생은 짧고 이 순간은 길고 기니까 지금을 즐겨야지.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마음대로 생각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듣게 된 것은 아마도 이 음반의 낙천 때문일 거다.

이름부터 '하와이'인 데다 <C'est la vie>나 <놀자병>같은 노래 제목만 봐도 낙천이 듬뿍 느껴진다.


대학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와 지금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게 아마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대학 시절에는 음악을 음악으로 대했고 음악의 앞모습만 보았다면,

이제는 앞모습보다 뒷모습 혹은 옆모습을 더 유심히 보게 됐고

음악 역시 사람이 하는 거라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음악을 듣는 것은 사람을 듣는 거로구나.

결국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을 읽는 것이고, 그림을 보는 것은 사람을 보는 것이구나.


한 10년쯤 지났을 때 <C'est la vie>는 어떤 노래로 바뀌어 있을까.

그때도 삶을 긍정하면서 '그래, 이게 인생이지' 즐거운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그때는 이 노래를 다 풀고 난 다음일까.


소설가 스티븐 킹의 말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 그게 인생이지.


- 모든 게 노래/김중혁 -



나는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를테면 인터뷰, 평론, 리뷰, 각종 해설서들.


시, 소설, 음악, 춤, 그림 자체도 물론 좋지만

그것들과 공명하여 자신의 마음 속에서 빚어낸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번역이 가능한 그 풍요로운 세계가 나는 좋았다.

그리고 그 모든 해석이 결국은 '사람'을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사람도 그런 기준으로 가려 사귀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고 있다.


풀어낼 게 많은 것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풀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사랑은 언제 시작될까?

늘 앞모습만 보던 누군가의 옆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익숙한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움은

낯선 새로움보다 훨씬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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