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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Dec 03. 2019

마음을 나누는 법

남부 유럽 일기 1

건조하고 뜨거운 태양. 아이스크림이 순식간에 흘러내리는 유럽 남쪽의 여름.

행복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지만 아이스크림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기가 막힌 멘트에 홀랑 넘어가 행복을 입안 가득 핥고 있다. 단돈 3유로의 행복이라니!



삼시세끼. 니스에 머무는 시간은 단순하고 건강했다.


오래 전부터 건강문제로 식단을 철저하게 조절하는 에블린은 글루틴이 들어간 음식을 아예 식탁 위에 올리지 않았다. 모든 양념은 올리브오일에 소금이 전부. 재료도 모두 반경 10키로 내외에서 공수된 것. 이웃집에서 나눠준 토마토, 직접 기른 허브와 야채. 에릭이 산 위의 목장에서 직접 가져온 치즈와 요거트.  여러 곳에서 생산된 우유를 섞어서 만들어진 치즈는 좋지 않기 때문에 에릭은 치즈도 꼭 생산지가 확실한 곳에서만 산다고 했다.


아침에 에블린과 함께 태양예배를 10번 하고 하루를 시작, 여름마다 트레킹 가이드 일을 하는 에릭이 산꼭대기에 버려진 문짝으로 만든 뒷뜰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쓴다. 햇빛에 바짝 마른 빨래를 접어 개고, 오후에는 토니의 차를 타고 근교의 소도시를 한나절씩 둘러보고 왔다. 니스, 그라스, 칸, 안티베, 모나코. 모두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작고 예쁜 도시들. 골목골목을 한 두시간 걸어다니다가 카페나 바닷가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홀짝이며 앉아 있다 오는 것이 전부인 짧은 관광객의 임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다정한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에블린은 계속 마실 것을 권하고, 에릭은 과일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끊임없이 내미는 바람에 밥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식탁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간다. 건강하게 먹어서인지 따뜻한 햇살을 많이 받아서인지, 왠지 마음도 튼튼해지는 것 같은 날들이다.




볼키스는 참 다정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금세 마음을 열게 한다. 따스한 볼을 마주대면서 퉁명스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몽펠리에는 세번, 마르세유는 세 번 아니면 두 번, 니스는 두 번. 볼키스도 도시마다 조금씩 달라서 두 문화가 섞인 마르세유에서는 두번째 볼키스에서 간격을 두며, 이사람은 몇번 볼키스를 할 것인지 알아채는 요령을 배웠다.


매일 새롭게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만난다. 인사를 하는데만 한참 걸리지만 마냥 좋다. 발음이 어려운 불어는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지만 내가 이름 외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단어 하나 제대로 발음시켜보겠다고 모두 애를 쓰다가 포기할때쯤, 대신 한번 들려준 이름을 척척 맞추면 웃음이 터져나오는 이곳에서 나는 어느 가족의 재롱둥이 아기가 된 기분이다. 낯선 이 기분이 썩 좋다.  

_

소리 없이 여러 번 울었다. 마지막 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너무 늦어서 에블린과 에릭을 못볼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도 새벽에 공항으로 가니까 못보겠지,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짧은 만남과 이별에 많이 무뎌져 있었는데. 누군가를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나를 아프게 한 것이 오랜만이다.


집에 돌아왔더니 어두컴컴한 거실 식탁 위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침에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꼭 깨워주렴" -Daddy


새벽 5시에 정말 눈을 부비벼 침실에서 내려와 가는 길에 손을 흔들어주던 에블린과 에릭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또 울컥했다. 그저 서로의 앞에 서로가 있었기에 마음과 정과 음식과 웃음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어떠한 기대도 욕심도 없이. 마음을 나누는 법을 다시 배워간다. 아마 평생 배워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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