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이어트 쫌 좋아하네?
변절자가 된 기분이라 조금 민망하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새 모이만큼 먹는 이들을 혐오했었다. 왜 먹지도 못할 만큼 음식을 시키고 책임감 없이 포크를 내려놓냐고 멱살을 잡고 싶었다. 한 번은 “우리 아빠 농부야. 나 음식 남기면 죄책감 느껴.”라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 아빠는 날라리 농부라 음식을 맨날 썩혀 버린다.
피골이 상접하게 마르고도 맨날 살걱정 하는 이들이 싫었다. 운동한답시고 헬스장에서 하루 종일 살던 전남친도 싫었다. 타인까지 싸잡아서 외모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모두 같은 몸이 되자고 하면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무슨 일 있어? “, ”어머 너 예뻐졌다. 살도 빠진 것 같고 “ 보이는 대로 입으로 옮기지 말자고 백번을 다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다이어트를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외모지상주의 거부하고 싶었는데…
한술 더 떠 요즘 나는 다이어트를 좋아하는 나머지 함께 다이어트하자고 모두에게 조르는 지경이다. 다이어트 전도사가 따로 없다. 마음속 불편함은 어디 가고 내가 이러고 있나.
유아기에 앓은 장염으로 물똥만 싸느라 오랫동안 꼬챙이처럼 말라 우리 엄마의 애간장을 태웠다는 나는 토실토실 젖만 물리면 하루 종일 칭얼거리는 것도 없이 잠만 잘 잤다는 동생과는 달리 신경도 예민한 아기였다. 이러다 애 잡을라 싶었던 엄마는 물어물어 나이가 지긋한 명의에게 데려갔고, 당시 불법적으로 거래되었다는 양귀비 열매를 먹고서야 겨우 토끼 똥을 싸는 아기로 다시 태어났다.
계속 꼬챙이처럼 마르게 뒀으면 요즘 트렌드에 맞는 뼈말라가 될 수 있었는데 왜 양귀비 열매 같은 건 먹여서 변비를 달고 사는 통통이를 만들었냐며, 내가 좀 덜 떨어진 게 어릴 때 먹인 마약 성분 때문은 아니냐며 엄마에게 가끔 농담을 하긴 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그냥 뒀으면 여전히 나는 말랐을까, 생명만 겨우 부지하고 살았을까.
서른 살이 되기까지는 다이어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피자 두 판에 콜라 한 병을 맛있게 먹어치우고도 다이어트 걱정을 하지 않는 대식가인 나를. 고등학교땐 동생과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 일고 여덟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기도 했다. 대식가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무엇이 두려워 먹지 못하는가 자매들이여.
그러나 결국 마감날만 달랐을 뿐, 모두에게 성장호르몬 공급 중단은 오는 거였다. 삼십 대에 들어서 잦은 식사미팅, 회식, 운동 부족, 스트레스까지 겹쳐지자 나의 체중은 70kg까지 한정 없이 늘어났다. 일찌감치 후덕한 인상을 얻었고, 건강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번째 다이어트를 했다. 지하철역 두 정거장, 거의 매일 10킬로를 걸어서 한 달 반 만에 58kg까지 감량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늘씬하고 가벼운 나의 몸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가벼운 몸이 주는 가뿐한 마음, 몸을 놀리는 것에 부담이 없을 때의 자유로움, 물론 이후 몇 년에 걸쳐 요요가 와서 몸은 유지할 수 없었지만 그때의 기분만은 생생하다.
그리고 몇 번의 자의 반 타의 반의 다이어트 성공과 실패, 그리고 지금 나는 새로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영양소가 풍부한 신선한 음식을 먹고, 몸에 좋지 않은 습관을 돌아보고,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몸은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인데, 왜 나는 이제껏 내 몸을 무시했을까. 세상에 내 몸, 내 마음,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 것들을 돌보는 것은 나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자, 또 엄청난 축복이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행복하다.
아침이면 체중을 재고,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서 구석구석 바라본다. 체중은 때로 불어있고, 때로 줄어있지만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올라갔으면 이제 내려오면 된다. 내려왔으면 이제 올라갈 일 있지만 다시 또 내려갈 수 있으니 괜찮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칭찬하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만사 엮자고 엮으면 못 엮을 게 없겠지만 몸이야말로 나의 정신, 그리고 이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매개 아닌가. 저랑 같이 다이어트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