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Oct 22. 2023

반페미니즘적인 페미니스트들

저항하는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전 페미니스트거든요. 근데 지금 너무 반페미니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이게 저를 너무 힘들게 해요. 제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반년 전 안면윤곽수술을 한 그녀는 타 부서 팀원이다. 이 회사에서 내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두 번째다. 잠시 바라본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그녀들은 하나같이 몹시 날씬하고 예쁘다. 톱 여배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쿵쾅쿵쾅이라니, 당치 않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이 말은 좀 어색하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차별적인 대우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페미니스트이겠지만 원하는 바를 제대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또한 이를 표현하여 다듬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다소 구차하고 무책임하여 구리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또한 표현해 볼 생각조차 없었다니.


근데 그게 나였다. 나는 생활인으로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었고 때때로 남성에 동화했으며 자주 체기를 느꼈다.


첫 번째 페미니스트는 내부서 팀원이다. 외근 갔던 그녀는 방송사 PD와 싸웠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다가 그 PD가 "요즘 여직원들 문제"라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고 한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따지고 드는 통에 밥도 술도 같이 못 먹겠다", "어쩌다 농담하나 할라치면 발끈하고 일을 크게 만들며, 니 거 내 거 따지는 것만 잘하지 막상 일도 잘 못한다"라고 했단다.


내 팀원은 "불쾌한 얘기인지도 모르고 식사 시간을 망치는 이들이 시대착오적인 마인드로 일은 제대로 하겠냐"며 되받아쳤고, PD는 내게 전화를 했다. "어디서 그런 기본이 안된 애를 보냈냐"며.


그녀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꼰대들 거지 같은 말쯤 태연하게 넘길 때도 되지 않았나. 일을 그렇게 좀 똑똑하게 해 보지. 왜 늘 자기 싫은 것만 칼같이 방어하는지. 일을 그르친 그녀에게 화가 난다.


혼란스럽다. 나는 여성혐오자인가. 뭐긴 뭐야. 직장 상사지. 나는 상황에 따라 옷을 바꿔 입었다. 소개팅에 나가서는 내가 돈을 내는 게 편했지만, 남편은 나보다 돈을 잘 벌길 바랐다. 꾸밈노동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깝지만 늘 예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미디어의 역할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패션, 미용성형, 안티에이징 트렌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환경파괴적인 기업은 어떤가. 위험천만한 생산공정은 어떤가. 너무 복잡하다. 나로선 풀어낼 수 없다. 무력해진다.


나는 여성이다. 어쩌다 보니 미용성형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우리는 성형수술을 했다. 성형수술이 반페미니즘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산업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이 상당 부분 반페미니즘적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른 산업에 종사할 때도 회의감은 있었다. 그때도 나는 열심히 일했고, 내 일을 사랑했다. 애초에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세상을 꿈꾸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을 감정이다.


설득업에 종사하며 타인들이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때때로 나의 의견과 다른 일을 타의로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저 행하진 않는다. 그때야말로 여성 직업인으로서 자존심이 꿈틀 한다. 인류에 시대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까지, 적어도 내 생각에 근접해질 때까지 수정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절반은 내 패배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필요 없다. 우리의 가치는, 얼마나 잘 기업가의 생각을 구현해내는가에 있지 않다. 더 좋은 세상이 되도록 수정하고 의견을 내는일, 그것에 내 일의 가치를 두며, 그렇게 나의 정체성을 통합한다,


언제까지 나는 스스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게 될까. 내가 여성임을 자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나는 여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정의 문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