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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Oct 22. 2023

우정의 문신

신경 쓰지 않아도 될까요?

오랜만에 함께 수영을 하고 카페에 갔다. 상쾌한 내 기분과는 다르게 우정이는 휴대전화 한번, 한숨 한번 하는 폼이 평상시와는 영 다르다.


우정이는 내가 예뻐하는 동생이다. 동생이라고는 하나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장사다. 장사를 하며 사람 상대를 많이 해서인지, 기질 자체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해서인지, 언제나 씩씩하고 유쾌한 그녀는 너무나 매력있다.


그녀의 몸에는 여러 개의 문신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특히 조악하기 그지없다. '차카게 살자' 급의 '우리 우정 영원히'라는 글자가 시커먼 먹으로 새겨져 있다. 친해진 뒤, 그 문신은 지우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우정이는 "머 어때요. 철 없는 시절 누구에게나 있죠. 저는 신경 안 쓰여요"라고 쿨하게 답했다.


나는 늘 "너는 고추만 달렸으면 내 이상형"이라고 말해왔으나, 두아 리파를 닮은 그녀는 사실 너무 예쁜 얼굴과 너무나 커다란 가슴과 골반, 그리고 자유분방한 마인드를 가져, 고추 없이도 섭섭지 않게 고추를 쓸 수 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그녀가 한숨을 쉬는 건 오직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뿐이라고 여겨왔다. 그녀는 한숨 대신 쏟아낸다.


"언니. 정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사연은 이렇다.


동호회 사람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남녀가 거의 반반 비율인 그 동호회는 활성화가 잘 되어있어, 본래 하기로 되어 있는 정기 모임 외에도 다양한 옵션 활동을 많이 한다.


여름휴가 시즌을 맞이해 선택한 여행지는 동남아. 커다란 풀이 딸려있는 독채를 빌렸고, 사람들은 너무나 신이 났다. 워낙 말술인 그녀는 평소처럼 실컷 술을 마셨고, 평소처럼 쾌활했으며, 그들의 술자리는 주방에서 끝나지 않고 야외 정원으로 이어졌다. 몇몇은 대낮부터 쌓은 피로로 방으로 향했고, 몇몇은 흥을 이기지 못하고 풀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당연히 후자였다. 풀장 가장자리에 술병들이 즐비한 채 그들은 밤새 물장구를 쳤고 때때로 서로에게 농을 걸며 놀았다. 그 농에는 그녀의 큰 가슴, 그녀의 문신 등 신체와 관련한 것들도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다. 동틀 녘이 되어서야 방에 들어와 뻗은 그녀를 언니들이 흔들어 깨운 것이다.


"너는 행동거지를 좀 조심할 순 없는 거니?

"어떻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애가 그 새벽까지 남자들이랑 수영복만 입고 풀장에서 깔깔대고 밤새 서로 만지고 장난치고 놀 수가 있니?"

"니 깔깔거리는 소리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겠더라"


언니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훈계를 했고, "같은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꼈다"라고 했다. 그리고 또 말했다. "남자들이 우리들에게 그렇게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어떻게 너는 그렇게 태연히 그걸 다 무너뜨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언니. 제가 그렇게 잘 못 한 거예요? 저는 오빠들이랑 풀에서 너무 재밌게 놀았거든요. 저는 남자들이 제 가슴 만져도 괜찮은데 왜 제 가슴인데 그 언니들이 수치심을 느끼고, 왜 제 몸인데 그 언니들이 단속하는 거예요?"


두아 리파가 갑자기 혼쭐난 리트리버꼴이 되어 하소연을 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 이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정아. 아무래도 앞으로는 언니들 없는데서 노는 것이 좋겠다. 너 좋아하는 대로 너 좋아하는 만큼 다 해. 근데 그 언니들 앞에선 하지 마."

   

리트리버는 이게 무슨 나도 안하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페미니즘을 뭘 알겠는가. 어쨌거나 우리 모두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지 않겠나. 그것만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냐고? 당연히 없지.


나라고 딱히 답을 아는 건 아니란다. 너도 내가 주는 답대로 살려고 물은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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