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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Oct 24. 2023

톰 하디가 싫은 중학생 L

이거 실화냐

16세 인생 최대 망신 ㅇㅈㄱ.

정우가 롤이나 한 사바리 땡기러 고고하자고 할 때 주짓수 제치고 갈걸 그랬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뉴스를 보다가 말했다.

"너 주짓수 좀 배워라"


뉴스에 엄마가 아빠보다 좋아하는 톰 하디 아저씨가 나왔다. 드디어 그 인간도 사고를 쳤구나. 기쁜 마음은 자막을 보자 사라졌다. "톰 하디, 주짓수 챔피언 등극... 깜짝 출전에 우승까지". 이제 그 인간은 신이다.


엄마는 저렇게 지저분하게 생긴 남자가 좋으면 저런 남자랑 결혼할 일이지. 왜 아빠랑 결혼하고 맨날 톰 하디만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아빠랑 나도 키는 크니까 저렇게 태닝하고 근육이 우락부락해지면 여자들이 좋아해 줄까. 톰 하디만 좋아하는 엄마가 짜증 난다.


내가 초딩이었을 때 엄마는 나랑 극장에 갔다가  <매드 맥스>를 보고 톰 하디에게 반했다. 덕질은 같은 반 여자애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이 든 여자들도 덕질을 한다는 걸 엄마를 통해 알았다. 외국계 회사에서 외국 시간으로 일을 해서 그런가 같은 나라 같은 집에 사는 우리가 뭘 먹는지는 몰라도 톰 하디가 어딜 가고 누굴 만나 뭘 했는지는 꿰고 있다.


외국 배우들 중엔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 많다. 키아누 리브스, 빈 디젤, 애쉬튼 커쳐... 다 늙은 근육맨이다. 나 같은 돼지 찐따도 주짓수를 하면 그렇게 변할까. 에바다. 그만큼 늙어도 안될 거다. 맨날 헬스장에 가는 아빠만 봐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주짓수 도장에 등록했다. 유튜브에서 설인아 누나가 주짓수 하는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 반 애들 중에 설인아 누나처럼 예쁜 사람은 없다. 화장만 떡칠해서는 설인아가 될 수는 없다.


설인아 누나처럼 도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가 우리 도장에도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도장에 나오는 여자애들은 다 나 같은 찐따다. 쟤들도 연애하긴 글렀다.


도장에 가면 몸풀기 운동을 10분 이상 한다. 거미처럼 손발을 매트에 대고 빠르게 기거나, 각양각색의 포즈로 구르는데 조금만 해도 땀이 난다. 그래서 나는 보통 하는 척 하고 관장님이 안 쳐다볼때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서브미션을 배울 때다. 상대방의 관절을 꺾거나 동맥을 압박해서 기절시키는 동작을 하면 항복을 받는다. 기무라를 배운 다음 날은 정우에게 써먹었다.


겨우 두 달 짼데 클라스 ㅇㅈ.


기술을 배우고 나면 실력이나 체급이 비슷한 사람과 대련을 한다. 내 상대는 주로 새로 들어온 고등학생 형들이다. 내가 다른 중학생 보다 커서 그런 것 같다.


보통은 내가 한번 기술을 걸고, 형들이 기술을 한번 걸고 나면 끝나는데, 어떤 형들은 내가 기술을 걸 때 끝까지 안 넘어가고 버틴다. 내가 조금만 더 도장에 다니면 형들쯤은 금방 이길 수 있을 듯.


오늘은 도장에서 못 보던 누나를 봤다. 설인아를 닮았다. 지난달부터 왔다는데 왜 못 봤지. 관장님이 "혜인 씨"라고 불렀다. 앞으로 누나의 성은 설 씨다. 설혜인. 누나가 도복이 잘 어울려서인지 괜히 설렌다.


관장님은 대련 시간에 나랑 누나를 짝지었다. 이제까지 다른 여자애들하고 대련을 한 적은 없는데 나보고 설혜인 누나랑 대련을 하라는 거다.


“에이 어때. 한참 누난데~“


보아하니 누나가 대련할만한 초보가 나밖에 없다. 이런 개이득. 티 내지 말아야지. 누나 옆에 서서 일부러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 명은 바닥에 등을 대고 두 다리로 상대의 허리를 묶는 클로즈 가드를, 다른 한 명은 번쩍 일어나서 허리에 묶인 클로즈 가드를 풀어내는 기술을 연습한다.


설혜인 누나가 먼저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는 내 허리를 누나의 다리로 감는다. 아. 근데 어떡하지. 몸이 이상하다. 나대지마. 이 녀석아. 당장 누나의 다리를 풀어내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온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는데 일어나려는데 일어나려는데 일어나지 말아야 할 녀석이 자꾸만 일어난다. 이대로 일어나면 들키겠다. 누나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정은 진지한데 묶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아 몰라 탭탭탭탭.


항복을 외치는 불꽃돼지를 보고 관장이 웃으며 걸어온다. 누나가 봤으면 어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도복 상의를 있는 대로 당겨본다. 설인아. 아니 설혜인 누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누나.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도장을 나와서도 빨개진 얼굴이 돌아오지 않는데 누나가 저 앞에 걷고 있다. 누나가 나를 알아보기 전에 다른 길로 가고 싶은데 길이 같은 방향인가보다.


내가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자꾸 걷다 서고 또 걷다 서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20분이나 누나 뒤를 따라 걸었다. 누나는 아주 천천히 걷는다. 꼭 다리가 아픈 사람 같다.


누나. 왜 그래요. 내일 안 나오는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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