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의 불행을 바라보는 일
여동생 내외와 신나게 불금을 즐기고 있는데 아빠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일언반구 설명 없는 사진 한 장은 막냇동생의 이름과 올케의 이름이 쓰인 합의이혼신청서입니다.
아빠와 더 가까운 여동생이 전화를 겁니다.
"이게 뭔데?"
"몰라. 니들은 뭐 아는 거 없냐? 니 올케가 이렇게 사진 한 장 달랑 보내고 전화를 안 받는다."
"하여튼 부부싸움 한번 요란하게 하네. 일단 끊어봐"라고 동생에게 말했지만, 여간 찝찝한게 아닙니다.
동갑내기로 학창 시절에 만나 연애만 10년을 넘게 한 막내네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요란한 부부싸움을 하고 그때마다 우리에게 조카를 안겨줬습니다.
두 명의 조카가 혼을 쏙 빼놓는 술자리에서 올케가 세 번째 조카가 생겼다고 말했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니들은 그렇게 우리 앞에서 싸우더니 어떻게 애 만들 땐 맘도 잘 맞나 보다."
"언니. 저희는 뜨겁게 싸우고, 뜨겁게 화해하거든요."
찜질방도 아닌데 듣는 우리들은 땀이 나네요. 하여튼 아줌마는 뻔뻔한 것인가 봅니다.
또 한 번 그들이 대판 싸웠을 때, 저는 물었습니다.
"드디어 넷째가 나올 때인가?"
"언니. 묶었어요. 이제 더 이상의 조카는 없어요.'
이혼가정의 자녀로서 내 결혼 문제는 풀지 못했지만, 항상 동생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은 마치 내 성취인양 자랑하며 살아왔습니다.
보아라.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하여 비비 꼬인 연애관 사랑관을 가진 것은 아니지 않으냐. 어린 시절, 친척들은 우리가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찼고, 성인이 되고 나선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이렇게 반듯한 아이들로 성장했냐며 놀라워했지만, 우리도 정상가정 아이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저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 연애에도 이들의 삶이 적용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부모보다 형제들이 더 좋은 레퍼런스가 아니겠어요.
너무 가혹하잖아요. 태어나자 그런 가정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정 내에서 벌어진 일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큰 사회적 냉대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요새 삼분의 일이 이혼하는 세상인데 누가 이혼가정 자녀를 차별하냐. 다 옛날 얘기지"하고 말합니다만, 실제 겪은 이가 더 정확하지 않겠어요.
결혼을 고려했던 남자친구들의 부모님 중 상당수는 저희 부모님의 이혼을 못마땅해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디 사시나?", "네, 이혼하시고 한분은 시골에, 한분은 서울에 사세요."라는 말에 대놓고 못마땅한 헛기침을 합니다. "같이 사실 때 많이 싸우셨지만, 오히려 이혼하시고 시간이 지나 선지 만나진 않으셔도 서로 도우면서 그리 사셔요"라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이혼했냐고도 안 물으시고, 일단 각종 증명서를 떼오라는 집안도 있었습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거 아니고, 자유롭게 만나 연애 2년 넘게 한 남자의 집 이야기예요.
어떤 남자친구의 누나와 엄마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마타이. 우리는 네가 이혼가정에서 자랐어도 아무렇지 않단다."
"어휴 엄마. 말은 바로 해. 우리도 아빠 돌아가시고 가세 기울어서 이제 트집 잡으래야 못 잡는 거지. 뭘 받아주는 척이야"
예비 시누이의 메타인지 오지네요. 예비 시어머니는 그녀를 향해 눈을 흘깁니다.
어쨌거나 저는 결혼의 관문 앞에서 항상 뒤돌아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유는 항상 같았습니다. 이 복잡 다단한 세상을 함께 뒤엉켜 살기에 상대가 충분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저는 결핍을 메우고도 남을 더 단단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꿈꿨습니다. 저와는 반대로 독신주의자였던 두 동생들이 저보다 빨리 가정을 꾸렸습니다.
"누나 나 결혼하려고."
"너 독신주의자잖아. 결혼은 미친 짓이라며"
"응. 그런데 ㅇㅇ이가 결혼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
"그래서? 너는 전혀 원치 않고 지금도 결혼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오직 ㅇㅇ이랑 사랑하며 살기 위해 결혼하겠다고?"
저는 걱정이 됐습니다만 언제나 저보다 현명한 남동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름다운 환상에서 현실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는, 지옥을 상정하고 되려 현실 속 소소한 기쁨을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언니 우리 혼인신고했다."
"어쩐 일이야?"
"ㅇㅇ이 회사는 혼인신고서가 있어야 해외근무를 같이 갈 수 있다네"
동거만 하겠다던 여동생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혼인신고를 했고, 어느 날엔 갑자기 그저 "하지 않을 이유도 마땅히 없어서" 웨딩사진도 찍었습니다.
역시나 저보다 더 똑똑한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정말 삶에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가지며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는 일은 둘이 함께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매 순간 둘이라서 행복하지도 않을 겁니다. 미혼이라도 이 정도는 압니다.
이혼소동은 한 달 전쯤 벌어진 일입니다. 저의 우울증에 크게 한 몫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어쩌다 똥물을 뒤집어썼다고만 생각했지 그 아픔이 재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공포스러웠고, 혐오감이 몰려왔습니다. 제 파혼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것도 다 욕심이겠지요. 그렇지만 부디, 제 동생들이 누구보다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만큼은 행복만 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