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결산 2023. 회사만 챙기지 말고 나도 좀 챙깁시다
새 캘린더에 2024년 업무 리스트를 작성하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습니다. 무려 6년간의 업무를 참고해서 적고 있더라고요. 2019년 8월에 무얼 했지, 2018년 3월에 무얼 했지. 그래 이 두 개랑 비슷하게 항상 봄여름 시즌에는 프로모션을 했구나. 이쯤엔 내 보스가 항상 초조한 때지. 기타 등등. 아주 이렇게 철두철미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할 때가 더 재밌는 것 같긴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열일하고 스트레스도 제대로 받아보니, 일도 잘되면 너무 기분이 좋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일종의 워크오르가슴이랄까요. 이런 저를 책망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결과를 꿈꾸는 제가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런 꼼꼼함을 발휘했음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려 2024년 월별 즐거움 캘린더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즐거웠던 일을 하나하나 꼽아 24년의 각 페이지에 끼워 넣었습니다. 재현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잊지 않을 순 있겠지요?
1월엔 무려 드라이재뉴어리 + 알파를 실천했습니다. 무려 40일이나 금주를 실천한 거죠!!
처음 해보는 큰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회사 일이라 다 밝힐 순 없지만, 어쨌거나.. 망해도 잃는 건 없다는 마음으로 덤벼보니 아주 신바람이 났습니다.
7월엔 미라클모닝을 2달이나 진행했습니다. 사실 도파민단식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실패했어요. 24년엔 꼭 해보렵니다.
저는 23년 무려 다이어트에 성공한 독한 년이 되었습니다. 약 7-8킬로를 감량한 거죠. 독기를 품게 해 준, 몸평 해준 분들께 감사와 뻐큐를 동시에 날립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연말에 너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글을 쓰고 또 읽는 사람들이 속한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24년엔 좀 자주 써보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동안 물속 세상을 아예 잊고 살았네요.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깨달았어요. 나이가 먹고 바닷속 풍경도 세월이 흘렀더군요. 저도요. 그때 느꼈던 감정에 또 더 해 나이 든 저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부력조절에 대한 것인데요, 빨리 가고 싶어서 때때로 부력을 조절하지 않고 그냥 시작할 때가 있는데, 그렇게 머무르면 타야 할 흐름을 타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너무 인생이랑 닮았어요. 때때로는 아주 작은 차이로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놀이 후의 밥은 항상 꿀맛이고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달릴 때는 두 달을 내리 30분씩 뛰었던 일이 없었는데요, 한번 뛰니 이거 중독성 갑이더라고요.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뛰면 좋겠어요.
나태해진 주말, 도서관에 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행복해지는 기분. 너무 좋더라고요. 이걸 대체 왜 안 한 거죠?
여행도 자주 다녔습니다. 국내 여행도 해외여행도 다시 뻔질나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모알보알, 도쿄, 타이베이, 수없이 많은 강원도와 경기도의 여러 명소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영어공부, 독서, 요가, 테니스, 수영, 늘 하던 루틴들도 지키려고 노력했네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가끔 너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잠시나마 풍경을 바라보게 해 주었던 전 남자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비록 또 헤어졌지만 그래도 덕분에 연애는 즐겁게 했네요. 나이 먹으니 사람 좋아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 덕분에 연애 잘했습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와 대화해야 할지 답답했습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왔을 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정신과 의사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떤 고민들은 외주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것이 확실히 낫더라고요. 친구도 가족도 아닌, 그래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나 대신 아프지 않은 당신 덕분에 정말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데도 가끔 당신을 돈 주고 만나고 싶습니다.
많은 시장과 미술관, 박물관, 허름하고 오래된 식당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절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진지하게 써 내려가는 온라인 공간들, 캠핑장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 일,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수영한 일, 자전거를 타고 팔당까지 달려 마약도너츠를 사 먹고 돌아온 일, 동생 내외와 10km 달리기를 완주했던 일, 제천의 물과 바람들, 스시와 함께 즐겼던 샴페인의 방울들, 산속 깊은 곳에서 만난 부처상들, 국립현대미술관의 익숙함, 속초의 작은 식당, 단정하고 엄격했던 카페, 절기를 잊지 않고 방어며 귤이며 블루베리쨈이며 밤졸임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자리해 줬습니다. 하나같이 뺄 수 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입니다.
올해도 쉬운 건 하나도 없었지만, 덕분에 모두 좋은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