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내 맘대로 베스트는?
올 한해는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목표인 100권의 절반인 50권을 겨우 채웠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목표 권수를 채우려다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마땅한 몇 권의 책 때문에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오늘은 그 책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무순위입니다)
https://music.youtube.com/watch?v=1nml-_YE2OU&si=3UFQwrGd2qIzsgPF
요즘 유행처럼 많이 쓰는 말이 트라우마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부끄럽지만 큰 생각 없이 많이 써왔는데요, 주디스 허먼은 전쟁, 성폭력, 테러, 재난 등을 겪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아주 힘있고, 단정하게 전달합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특히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말을 온전히 듣고, 믿어줄 때, 그 힘을 바탕으로 사람은 다시 삶으로 사회로 이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이 아닐까 합니다.
2. 매튜 룬, <픽사 스토리텔링>
저는 직업이 작가는 아니지만, 직업 때문에 글을 많이 쓰는 편이긴 한데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지대한 관심 대비 스토리텔링 기법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초기 픽사 작품들의 열성적인 팬이지만, 픽사의 작품들을 해체해서 볼 생각은 못했는데요, 그 안의 스토리텔링 기법들을 소개하는 픽사 스토리텔링은 픽사의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원칙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3.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는 인간의 미래,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오늘을 살아가나요? 우리가 계속 지더라도 평범하고 다정한 미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 달까지 갈 수 없어도 갈 수 있다는 듯 걸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처음, 저에게 좋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랫동안 절망했습니다. 훈련을 통해 가져보려고 했지만, 올해는 실패했습니다. 올해는 김연수의 글로 버텼습니다.
4. 에르베 르 텔리에, <아노말리>
올 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 책을 꼽자면 단연 아노말리입니다. 책을 읽을 때 저자에게 너무 무시당하면 마조히스트가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을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작가가 만들어놓은 덫 안에서 마구 두들겨 맞고 나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이 책은 무조건 타인과 함께 읽고 난 후 감상평을 나누시길 권합니다. 독서모임을 큰돈주고 신청해서 딱 한권 이 책을 읽을 때 참석했는데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5. 김해서,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우울한 글은 사랑하기 참 힘들지만, 한 인간이 철저히 고독하게 내면의 불안과 투쟁한 후 쓴 글은 사랑하지 않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 우주의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있을 때 조차 자기의 누울 바닥을 만든다는 것을 김해서의 글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주 센티멘탈을 느끼지만 감정놀음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은데요,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네요. 내면으로 침잠하며 자꾸만 안락한 공허 속에 빠지고 싶었을 때, 외면으로 눈을 돌리게 해준 김해서의 글에 감사합니다.
6.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느꼈을 때 만난 은유의 글은 정말 내가 글 같은 글을 쓰고 있지 못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쓰고 싶은 글과 쓸 수 있는 글은 참 멀리도 있었는데요, 고작 이렇게 살아내며 써도 되는 말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은유의 글은 진정한 연결은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대체 난 무얼 쓸 수 있고, 무엇을 쓰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어느 정도는 답을 주었던 책이었습니다.
7. 오노레 드 발자크, <나귀가죽>
인간사에 대한 묘사가 너무 치밀해 도무지 옛날 책 같지 않은 것이 고전이 맞네요. 발자크의 나귀가죽 덕분에 욕망과 불안 속에 힘든 현대인 하나가 또 목숨을 부지했는데요, 작가는 모르겠지요?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인지하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네요. 만약 욕망과 불안 속에 힘들지만 도무지 비소설이 말하는 남의 목소리는 마음을 위로하지 않는다 싶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연애에 실패하신 분 강추!
8. 김지효, <인생샷 뒤의 여자들>
저는 자주 인스타그램 속의 여자들 때문에 슬펐습니다. 때때로는 화려하게 꾸미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르는 여자들이기도 했고, 때로는 저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는 온라인속에 우리를 이런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졌을 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풀어낸 작가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좋았습니다. 현대 사회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누가 더 알고 싶지 않겠어요?
올해도 책 덕분에 버텼네요. 내년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