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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Nov 14. 2023

당신은 굽는 쪽인가요?

고깃집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185cm가 넘는 큰 키에 눈코입귀가 모두 큼직하니 잘생긴 얼굴, 회색 반코트와 터틀넥이 잘 어울리는 늘씬한 그는 역시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던 장신미남, 우리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형수는 형님 대체 뭐가 맘에 들었어요?”

“우리 외할아버지를 닮았어요. “

그의 후배들은 나와 8살이나 차이가 나는 내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며 폭소를 터뜨렸고, 내 친구들은 오지콤이라 날 놀렸지만 나는 외할아버지를 닮은 그가 좋았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실 때면 항상 슈퍼에 들러 야채맛크래커 3개를 사 오셨다. 외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온전한 내 것 하나를 먹고 싶었던 어린 삼남매의 마음을 헤아리실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고 자상하셨다. 아니면 종합과자세트 골판지 상자가 코디를 해친다고 여기는 그저 세련된 분이셨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를 닮은 그도 먹는데만 집중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 걸까? 그는 고기를 적당히 잘 구워 내 하얀 밥 위로 얹는다. 밥그릇에 양념이 묻는걸 아주 싫어하는 나는 내색하지 않고, 쌀밥이 다시 하얘질 때까지 거뭇한 고기 기름이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다.


“오빠도 좀 먹어요. 나는 많이 먹었어. 내가 구울게요”하면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마타이나 많이 드셔. 나도 먹고 있어”


어딜 가든 그는 굽고 자르고 나는 입만 벌리고 새끼새처럼 받아먹으면 그만이다. 나이 마흔이 넘고 나선 우리 엄마도 그렇게는 안 해줬다.


그가 나에게만 그랬다면 아마도 그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어디서나 그런 사람이었다. 내 친구들의 밥 위에도 고기를 얹어주기 일쑤였고, 그의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선 모든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술과 안주를 살폈다.


술과 고기뿐이 아니었다. 그는 단골 주점에 가면 알바의 앞치마 끈을 등 뒤로 가 고쳐 묶어주고 술 취한 선배의 아내들을 제 등에 업어 집에 바래다주기 일쑤였다.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그의 지나친 친절은 깻잎 떼주는 꼴조차 눈뜨고 보기 싫은 내 심기를 거스르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인 것을.


처음 발을 들인 식당에서도 모든 테이블 위의 음식을 5초만에 스캔하고 그집의 시그니처가 뭔지 대번에 알아차리는 그를 나는 5년간이나 모르는 식당이 없는 남자라 여겨왔다.


곰과 여우가 서로를 잘 보완할 것 같으나 곰은 곰의 마음, 여우는 여우의 마음으로다.


몇 번의 다툼과 헤어짐, 그의 갑작스러운 암 투병, 회복 후의 재결합까지 우리는 불화와 화해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거창한 일을 겪어내고도 우리는 결국 첫 만남 5년 만에 완전히 헤어졌다.


서로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무던히도 자행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답이 뭐냐 물어보는 여자와 끝없이 암묵적 이해를 요구하는 남자의 대화는 애가 타고 답답하다.


5년이 넘는 시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실 난 아직도 헷갈린다. 한 걸음 더 한 걸음만 더 서로에게 다가서면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합일의 순간은 오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사랑하는 대신 자기 복제를 요구하는 우리만이 남았다. 


결국 '나'로 남은 우리, 언젠가는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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