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이벤트 어디까지 가봤니
오늘이 수능날인지도 몰랐어요. 15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수능 한번 다시 볼까 싶을 정도로 대학 명패가 삶에 차지하는 비율이 컸는데, 어느덧 그런 것 따위 다 상관없어질 정도로 삶의 시작점에서 멀리 와버린 기분이네요.
수능날하면 다들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보온도시락? 엄마들의 기도? 끝나고 허탈했던 기억? 친구들과 앞으로 뭘 하고 놀까 고민하던 일? 졸업 전까지 했던 아르바이트?
제 수능날의 기억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무려 수능날에 제 여사친에게 고백을 받았습니다. 이 문장엔 별 문제가 없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저도 여자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수능 시험이 끝나고 시험장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녀에게 고백을 받았습니다.
"마타이. 사실 나 너를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좋아했어. 알고 있었니?"
이건 뉘앙스가 우정 얘기가 아닌 건데 말입니다. 알고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낯선 상황 앞에 도망이 마렵습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계에 진학했던 그녀와 자주는 만날 수 없었지만, 각기 다른 교복을 입고 대학로의 음악감상실에 가서 엑스재팬의 노래를 들었던 일은 선명히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녀는 히데도 아니고 요시키도 아니고, 저를 좋아했다는 말이네요.
왜일까요? 저는 예쁘지만 그녀도 예쁜데요, 저는 공부를 제법 하지만, 어차피 수능도 망친걸요, 저는 당황하여 갑자기 저를 왜 좋아한다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만, 그녀의 바로 이어지는 말에 고백받자마자 차인 꼴이 되었습니다.
"놀라지 마. 이젠 아냐. 나 애인 생겼어. 여자야. 이제 같이 살 거야"
그녀의 놀라운 고백은 그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일에 인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원인을 따질 수 없는 사건들 투성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살아가지만, 그때는 집에 와서도 계속 왜 내 친구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에 골몰했습니다.
친구에게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건물 지하에 큰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싸우던 날입니다. 엄마는 커다란 짐가방을 싸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친구는 멀찌감치 가파른 계단을 위태로이 오르기 시작하는 엄마를 보고만 있습니다. 어쩐지 무력감을 느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친구와는 다르게 다섯 살짜리 동생은 엄마의 다리를 붙듭니다. 엄마는 꽉 찬 양손 대신 발을 밀어 동생을 제 몸에서 떼어냅니다. 동생은 그대로 한 두 바퀴를 굴러 친구의 발 옆으로 떨어집니다. 친구는 동생을 바라보다 그제야 제 처지를 깨우칩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몇 년 후 간통죄로 옥살이를 합니다. 친구는 몇 년간 동생과 단둘이 살아갑니다. 공부를 잘하던 그녀는 자연스레 실업계로 진학합니다.
친구의 애인을 만났습니다. 음성을 듣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남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며 우리를 좋은 곳에 많이 데려갔습니다.
"주차비 내기 싫으면 차를 끌고 다니지 말아야지"
불법 주차 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 이렇게 멋진 어록도 남깁니다.
나이가 먹은 저는 어느덧 살아가는 데 있어 성적 정체성보다 경제적 정체성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 생각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이재용이 게이가 되는 것이 거지랑 사랑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달까요.
저의 꼬리를 무는 생각과는 별개로 제 친구는 20여 년간의 동거를 청산하고, 지금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습니다.
변하는 것이 어디 강산뿐이겠습니까.
그나저나 너 나를 좋아하긴 한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