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제일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제의 나는 놀랍도록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지난 주말 신바람 나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곧 이런 따사로운 기분도 물러가고, 좀 있으면 '세상은 살만한 것'같은 기분을 한순간에 잡칠, 그리고 '무슨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만도 꺾을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행복이나 만족감도 그대로 누리기 힘든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전화는 친구의 부부 싸움 이야기였다.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다소 심각한 이야기다. 마지막 예외가 사라짐에 따라, 주위에 멀쩡한 부부는 모두 돈이 많고, 멀쩡하지 않은 부부는 모두 돈이 부족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얼마 남지 않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사랑이나 봉사로 메우려니 자꾸 지친다. 사람은 항상 같을 수 없다. 차라리 돈이 더 변치 않는 가치일 거다.
그래 돈을 벌러 가자. 평상시 같은 월요일이다. 오전은 업무 보고 미팅을 마친 후 업체 미팅을 하느라 다 보냈다.
길어진 오전 일정 덕에 사무실에 돌아오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팀원들 업무에 피드백을 주다 보니 점심을 걸렀다. 팀 미팅은 생각보다 길어져서 오후 4시까지 쫄쫄 굶는 신세가 됐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길게 늘이는 미팅에 시간이 아까워서 다리가 덜덜 떨렸다. 피드백은 냉소적이 된다. 일의 부산물이 자기혐오가 되는 순간이다. 어디서 좋은 사수/상사를 만난 적도 없는데도, 나는 직장에서의 성마른 내가 꼴 보기 싫다.
퇴근하고는 요가 수업에 갔다. 요가를 시작한 이유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사라지게 할만큼 놀랍지는 않았으나, 근근이 살 수 있게 할만큼 효과적이다. 그걸로 충분하진 않을뿐.
밤에는 황당하게도 잠깐 만났던 데이트 상대가 꿈에 나타났다. 현실 속에선 의미도 없는, 너무나 잠깐 스쳐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가 왜 꿈에 나온단 말인가. 꿈을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의 꿈인데? 하고 나에게 물었다.
이런 일에 WHY를 생각하는 건 무의미하다. 내 무의식 저편에 있는 그 녀석이 뭐? 길가에 떨어진 새 똥에도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모든 게 너로 인한 것 같은가. 너는 네 꿈조차 컨트롤할 수 없다. 인생에는 WHY가 아니라 HOW가 필요하다는 말이 더 절실히 다가온다.
살아가는데 왕도가 어디 있고, 실수나 실패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기억하지 않을 뿐. 그러니 꾸준히 뚜벅뚜벅 걸어야지. 경로이탈할 때마다 머리 두들겨가며 계속 걸을 수밖에. 지나친 자책도 독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 존재일까. 아니. 그도 다른 면에서 바보짓을 반복하는 인간일 뿐이다.
어제의 우리는 바보 같은 짓을 더러 했지만, 나는 어젯밤 귀찮음을 물리치고 장롱에서 꺼내 맞춰 놓고 미리 걸어둔 한 벌의 옷을 꺼내 입고 나왔다. 어제의 나도 내 안에 있지만, 오늘 나의 결심도 함께 하고 있는 거다.
모두에게 그런 하루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