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열심히 씻겨보았습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목욕탕을 찾았다. 꽉 막힌 실내 공간에서 하는 목욕은 비염인을 숨 막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비염인은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설 때 코끝에 닿는 상쾌함만을 아로새겨왔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Thoai Cao님의 이미지 입니다.
게다가 지난주부터 몸에서 때가 밀리지 않았던가. 내 발이 닿은 요가매트에 각질이 허옇게 일어났다. 이번주엔 기필코 때목욕을 하리라. 큰맘 먹고 전문가에게 2만 5천 원을 내고 세신도 받으리라 결심했다.
초등학생 때 살던 집에는 욕조가 있었다. 다섯 식구 중 욕조를 제 기능 그대로 가장 잘 쓴 것은 나였다. 욕조는 내 한 몸을 누이기 적당한 사이즈였고, 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느긋하게 들어앉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엄마는 물값 아깝게 자꾸 목욕을 하려고 든다고 자주 퉁박을 주었고, 나는 욕조는 있는데 왜 목욕은 안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 다음으로 욕조를 자주 쓴건 엄마다. 겨울철이 되면 엄마는 욕조를 포함 욕실 전체에 다라이를 배치해 배추 100 포기를 절였고, 욕조는 엄마에게 배추가 좀 많이 들어가는 메인 다라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욕조를 집안에 두고도 한 달에 한 번씩 대중탕으로 삼 남매를 이끌고 목욕을 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마는 삼 남매에게 때때로 등짝 스매싱을 날려가며 차례로 삼 남매의 검은 때를 밀었다. 고학년이 되어서야 제일 나중에 밀면 엄마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아낸 나는 어떻게든 뒷 순서가 되려고 꾀를 부렸다. 나에게 엄마와의 목욕은 등짝스매싱과 때 밀며 얻은 찰과상으로 아픈 기억만 가득하지만, 엄마에게 삼 남매와의 목욕은 때가 부르면 해야 하는 거친 노동이었을 거다.
자기 때는 제대로 밀 힘도 남아있지 않을테니 억울해서 엄마는 목욕값을 받았어도 모자랐을 거다. 그때 엄마는 성인 1명의 목욕값을 냈을까. 아니면 취학아동인 내 것까지 2인은 냈을까. 단칸방에서 세 아이를 낳고 기른 우리 엄마의 악착같음을 생각해 보면 철판 깔꼬 성인 1인 것만 냈지 싶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된 우리 엄마와 다르게 나는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나 엄마가 되지 않았으므로 오로지 나 하나만을 씻겼다. 목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구석구석을 문지르다 가끔 등 한가운데가 가려운 느낌이 들 때는 엄마의 손맛이 잠시 그립기도 했으나, 등짝 스매싱의 기억이 다시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엄마는 그렇게 내 등을 성심성의껏 온 힘을 끌어내어 밀었는데도 나는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지 않고, 되려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남자친구만 그립다. 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하는 걸까. 나는 이내 그는 없고 엄마는 여전히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해 본다.
아참 나는 아빠도 있다. 아빠에게는 덕구온천이 있다. 울진 최고의 핫플레이스 국내유일 자연용출 온천이다. 거창하나 막상 대욕장 안에 들어가면 다른 대중탕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씻고 나면 살갗이 매끈해지지만 효험은 가성비의 영역이 아닌가. 내가 원하는 것은 가심비다. 눈이 소복이 쌓인 숲 속에 자리한 노천 온천탕에 앉아 숨 막히지 않는 온천욕을 호젓하게 즐기는 것.
오랫동안 그린 노천탕의 로망을 잊게 된 건 그녀 덕분이다. 골목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허름한 목욕탕이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도 없는 숨겨진 호수에 홀로 온 것 같이 탕 안에 걸어 들어왔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수건을 척척 접어 욕탕 가장자리에 대고는 바로 베개 삼아 천장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눕는다. 그러고는 이윽고 눈을 감고 편안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녀를 보자마자 느꼈다. 그녀에겐 이곳이 아키타고, 닛신칸이겠구나. 내가 오늘 신령의 목욕을 보았구나.
현실로 돌아온 나의 몸은 20분째 몸을 불리는 숨 막히는 신세다. 대기판에 내 락카번호 219번을 적어놓았으나, 내 위로 대기명단엔 320 성인 2명(선불완료), 328, 178 성인 2명(선불완료), 429... 순서를 기다리는 까마득한 선배님들이 가득하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보아야 하는데... 오늘도 때를 밀지 못하면 나는 요가매트 위의 대왕 지우개다.
발가벗고 때밀이 아줌마 앞을 수없이 서성거리고 발을 동동 구른 덕분일까. 좌측 때밀이 아주머니가 나에게 윙크를 하시며 "먼저 누워요~" 하신다.
누군가에게 내 알몸을 맡긴다는 것이 늘상 거북하고 겸연쩍은 것이라 여겼던 나는 어디에 갔는지, 2년 만에 세신사 아주머니의 손동작에 맞춰 열심히 돌아눕는 나는 성실한 현실주의자다.
과거의 세신은 사포로 피부를 미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대패로 나무를 미는 느낌이다. 간만에 만난 좋은 재목에 세신사 아주머니도 신이 나신 모양이다. 서로가 좋은 거래였음을 확신한 나는 때밀이가 끝난 후 절로 허리 숙여 배꼽 인사를 했다.
오늘의 세신은 호사이자, 치료이자, 구원이로구나.